에디트 피아프를 기리며
풀랑크. 폴랑 혹은 뿔랑.
아마도 클래식 매니아가 아니라면 분명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는 프랑스의 작곡가겸 피아니스트이다. 어려서부터 음악 애호가였던 부모 덕분에 쉽게 음악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청년기에는 젊은 작곡가 모임인 <6인조>에 몸담으며 음악적 역량을 다졌고, 신고전적 기조를 이어 나갔다.
풀랑크의 즉흥곡 15번
우울함과 슬픔에도 정도가 있다. 깊이나 밝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풀랑크의 즉흥곡 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15번은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처럼 깊고 무겁고 어두운 곡은 아니다.
구슬프긴하지만 또 발랄하고도 청명하기까지 하다.
곡의 첫머리부터 시작되는 주제곡은 중반부에 나오는 단 두번의 변조를 제외하면, 단조의 멜랑꼴리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지독히도 고독한 한 사람이었다.
우울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한 사람의 단조로운 인생. 그리고 찰나와도 같은 장조의 행복이 두 번 지나가고 더욱 깊어지는 고독감.
그리고 곡을 시작할 때와 같은 주제곡이 되풀이 되면서, 단정하고 고요한 장음 두 번과 함께 마무리 된다.
에디트 피아프의 찬란한 인생을 기리는 헌정곡
사실 이 곡은 풀랑크가 프랑스의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위해 바치는 오마주다.
에디트 피아프는 프랑스의 유명한 가수였다. 곡예사였던 아버지와 거리의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디트 피아프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우울한 유년기는 음악적인 예술성으로 발현되었고, 우연히 한 카바레에서 노래를 하며 인기 몰이를 하게 된다. 게다가 장 콕토가 그녀의 음악을 감상한 후 르몽드지에 컬럼을 쓰고나서, 더욱 유명해 진다.
그리고 이브 몽탕을 비롯한 남성들과의 로맨스를 거치며 더욱 깊고 풍부한 감성을 실어 라비앙로즈, 사랑의 찬가 등 여러 히트곡을 부르게 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잇따른 교통사고와 약물 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결국 삶의 끝자락에서는 인기도 사랑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풀랑크의 즉흥곡 15번에서 등장하는 두 번의 변조는 가수로서의 성공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녀의 인생에서 찰나와도 같이 지나가 버렸고, 결국은 그녀 혼자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다.
삶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찰나와도 같은 행복과 기쁨에 함께 버무려져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두 번의 장음으로 표현된다.
가장 어두운 삶과 가장 화려한 삶을 모두 경험했던 가수의 죽음 치고는 너무나도 무미건조한 마무리가 오히려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곳이라도 구슬픈 주제곡이 다시 울려퍼질 것 같으면서도, 땅 속 깊이 꺼져버리는 장음 두 번의 마무리 때문에 두 번 다시 주제곡을 들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한 묘한 기분.
풀랑크 즉흥곡 15번 다단조 - 에디트 피아프를 기리며. 백건우의 연주로 감상.
Poulenc : Improvisation No.15 In C minor FP.176 - Hommage A Edith Pi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