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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풀랑크 즉흥곡 15번 다단조 FP.176

에디트 피아프를 기리며

by 고요

풀랑크. 폴랑 혹은 뿔랑.


아마도 클래식 매니아가 아니라면 분명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는 프랑스의 작곡가겸 피아니스트이다. 어려서부터 음악 애호가였던 부모 덕분에 쉽게 음악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청년기에는 젊은 작곡가 모임인 <6인조>에 몸담으며 음악적 역량을 다졌고, 신고전적 기조를 이어 나갔다.



풀랑크의 즉흥곡 15번


우울함과 슬픔에도 정도가 있다. 깊이나 밝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풀랑크의 즉흥곡 중에서도 마지막 곡인 15번은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처럼 깊고 무겁고 어두운 곡은 아니다.


구슬프긴하지만 또 발랄하고도 청명하기까지 하다.


곡의 첫머리부터 시작되는 주제곡은 중반부에 나오는 단 두번의 변조를 제외하면, 단조의 멜랑꼴리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지독히도 고독한 한 사람이었다.


우울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한 사람의 단조로운 인생. 그리고 찰나와도 같은 장조의 행복이 두 번 지나가고 더욱 깊어지는 고독감.


그리고 곡을 시작할 때와 같은 주제곡이 되풀이 되면서, 단정하고 고요한 장음 두 번과 함께 마무리 된다.



에디트 피아프의 찬란한 인생을 기리는 헌정곡


사실 이 곡은 풀랑크가 프랑스의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위해 바치는 오마주다.


에디트 피아프는 프랑스의 유명한 가수였다. 곡예사였던 아버지와 거리의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디트 피아프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우울한 유년기는 음악적인 예술성으로 발현되었고, 우연히 한 카바레에서 노래를 하며 인기 몰이를 하게 된다. 게다가 장 콕토가 그녀의 음악을 감상한 후 르몽드지에 컬럼을 쓰고나서, 더욱 유명해 진다.


그리고 이브 몽탕을 비롯한 남성들과의 로맨스를 거치며 더욱 깊고 풍부한 감성을 실어 라비앙로즈, 사랑의 찬가 등 여러 히트곡을 부르게 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잇따른 교통사고와 약물 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결국 삶의 끝자락에서는 인기도 사랑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풀랑크의 즉흥곡 15번에서 등장하는 두 번의 변조는 가수로서의 성공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녀의 인생에서 찰나와도 같이 지나가 버렸고, 결국은 그녀 혼자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다.


삶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찰나와도 같은 행복과 기쁨에 함께 버무려져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두 번의 장음으로 표현된다.


가장 어두운 삶과 가장 화려한 삶을 모두 경험했던 가수의 죽음 치고는 너무나도 무미건조한 마무리가 오히려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곳이라도 구슬픈 주제곡이 다시 울려퍼질 것 같으면서도, 땅 속 깊이 꺼져버리는 장음 두 번의 마무리 때문에 두 번 다시 주제곡을 들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한 묘한 기분.



풀랑크 즉흥곡 15번 다단조 - 에디트 피아프를 기리며. 백건우의 연주로 감상.


Poulenc : Improvisation No.15 In C minor FP.176 - Hommage A Edith Pi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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