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한 기다림, 고도에 이르는 길
■ 내용
아무 것도 없는 텅빈 무대 위 고독한 마른 나무 하나가 전부인 무대 장치. 별다른 소품이나 배경없이 극은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로만 채워진다.
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고도를 기다려 온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가 정확히 누군지 몇시에 만나기로 했는지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 조차 모르고 일방적인 기다림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에스트라공은 매일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잃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그 때 마다 에스트라공에게 그와의 약속을 상기시켜준다.
그들이 매일 같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포조와 럭키가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며, 오랜 세월이 흘러 그들과 다시 조우했을 때는 포조는 눈이 멀고 럭키는 말을 못하게 된다.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의 어느 밤, 소년이 그들을 찾아와 고도가 내일 찾아 올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더 이상 삶의 동기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에스트라공의 허리띠로 자살을 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고도가 오기로 한 내일, 그 내일엔 꼭 튼튼한 밧줄을 가져오리라 다짐한다.
■ 등장인물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에스트라공에게 끊임없이 주지 시키는 인물. 현실보다는 이성을 추구한다.
에스트라공: 매번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잊어버리며 신발도 자주 잃어 버린다. 항상 블라디미르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조른다.
포조: 독재자처럼 럭키를 노예로 부린다. 시력을 잃고 나서는 돈으로 삶의 편리를 추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적어질 수록 시간 관념이 없어진다.
럭키: 포조의 노예로 모자를 쓰지 않으면 생각을 할 수 없는 수동적 캐릭터다. 극의 후반부에서는 말을 못하게 된다. 그러나 럭키는 원래 주체적으로 살 던 사람이 아니므로 말을 못하게 되었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저 맞거나 넘어졌을때 신음소리를 못내게 된 것 뿐. 나이가 많고 노쇠하며 포조의 모든 짐을 지고 다닌다.
소년: 고도가 내일 온다는 소식을 전달한다. 극에서 유일하게 모자를 쓰지 않았으며 이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므로 소년이 단순한 전달책임을 나타낸다.
■ 반복되는 행동
고도를 기다려야지
(고도를 향한 기다림의 반복성, 그리고 블라디미르의 믿음이 굳건함을 의미)
우리 당장 목이나 매자
(자살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에스트라공의 대사)
습관은 우리의 모든 이성을 무디게 하지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가 반복적인 습관으로 굳어졌음을 의미)
위의 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와 목을 매려는 행위는 습관처럼 반복된다.
그 외에도 등장인물들이 반복하는 행위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삶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한 행위들이다.
에스트라공 - 신발을 잃어버리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로 고통을 느낌. 그리고 항상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함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 함을 주지시킴
소년 - 고도의 소식 전달
■ 포조와 럭키의 등장
1막
긴 포승줄에 묶인 럭키. 커다랗고 무거운 트렁크에 접이식 의자, 음식이 담긴 바구니 등 짐을 잔뜩 들고 있다. 포조는 채찍을 휘두르며 럭키를 노예처럼 부린다. 그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보고는 잠시 멈추어 나무 앞에서 음식을 먹기로 한다. 시계를 보며 6시간 동안 고독히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며 이들을 만나 기쁘다고 한다.
그리고 포조가 먹고 난 고기의 뼈다귀를 에스트라공이 주워 먹으려하자, 원래 뼈다귀는 럭키의 몫이라며 그의 의중을 물어보라고 한다. 에스트라공이 뼈다귀를 먹어도 되는지 묻자, 럭키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에스트라공은 망설임 없이 뼈다귀를 갉아 먹는다.
포조는 식사가 끝난 뒤에도 시간에 민감하게 굴며 정확한 시간에 따라 계획된 삶을 살려는 의지가 보인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잡동사니를 모두 가지고 다닌다.
또한 포조는 항상 럭키가 자신의 눈을 속이려 든다고 의심을 한다. 그러나 럭키는 나중에 그가 장님이 되고도 곁에 머문다.
그러나 계속되는 구박에 럭키는 흐느끼고 그를 달래주려다 에스트라공은 오히려 걷어 차인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은 정해져 있지.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는 울음을 멈추겠지. 웃음도 마찬가지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 고통이나 즐거움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이치에 따라 무작위로 주어짐, 부조리)
포조는 이렇듯 인간은 부조리에 처해 있으므로 시대를 원망할 필요도, 그렇다고 예찬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며 인간은 감정적으로 유한함을 알린다.
인간 스스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이므로 구원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2막
다시 만났을 때, 포조는 눈이 멀고 럭키는 말을 잃었다. 럭키에 부딛쳐 넘어진 포조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갈등한다. 그 사이 포조가 도와주면 돈을 주겠다고 하자, 그 값을 흥정하는 둘. 결국 이백프랑에서 합의를 하고 그를 일으키려다, 진창에 빠지고 만다.
*
산모는 무덤에 앉아 출산을 하고, 빛은 잠시 동안 비추고, 곧 다시 밤이 오지
(찰나와 같은 인간 삶을 비유)
눈이 멀기 전에는 회중시계를 갖고 다니며 시간에 집착했었던 포조는 시계와 시력을 잃고난 뒤, 시간 관념이 없어진다.
언제 자신의 눈이 멀게 되었고, 럭키가 벙어리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질문을 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어느 날 자신이 장님이 되었고, 어느 날 럭키가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어느 날 둘다 귀머거리가 되어, 어느 날 우리가 태어난 것 처럼, 마찬가지로 어느 날 죽게 될거라 답한다.
이 극은 태어나 구원(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한정된 기쁨과 슬픔을 맞이하며 노쇠해가는 인생의 과정을 나타낸다.
2막에서 주인공들과 재회할 때 바로 어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나이가 들어 세월이 빨리가는 것 처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 소품의 상징
모자와 신발을 신기 전 안을 살피고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것은 모자와 신발이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도구이므로 남의 흔적을 털어 내려는 행위이다.
-모자
지성, 정신, 이상을 의미한다.
럭키가 속사포처럼 사색을 입밖으로 표현하게 된 것도 모자를 썼을 때 뿐이며 극 중 유일하게 모자를 쓰지 않은 소년은 전달책, 즉 메신져의 역할만 수행하므로 자신의 생각이 없는 존재다.
주인공들은 서로 모자를 바꿔쓰기도 하는데 이는 사고의 유연성을 나타낸다.
- 신발
육체, 고통, 현실을 의미한다.
에스트라공은 매일 누군가에게 얻어 맞고 신발을 바꿔치기 당한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므로 발에 맞지 않아 항상 고통을 느낀다. 때문에 신발은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현실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고통은 타인으로부터 유발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으로부터 기인된 것도 있다. 블라디미르는 매번 신발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신발을 벗어버리는 에스트라공에게 "자기 발이 잘못된 줄은 모르고 신발 탓만 한다."라고 핀잔을 준다. 고통스럽다고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 수도 없으니 우리에게 고통은 숙명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에스트라공이 작은 신발으로 인한 상처가 곪아 썩자 예수처럼 맨발로 다닐거라는 얘길하는데, 블라디미르는 밤사이 또 누군가 바꿔간 신발을 가져다 주며 신어보라고 한다. 약간 큰 사이즈라 넉넉히 잘 맞는다. 삶을 버리려는 친구에게 의지를 북돋워주는 장면이다. 신발은 삶을 상징하므로 신발을 벗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블라디미르는 계속 신발을 신어보라고 권한다.
■ 고도의 의미
극에서는 성경, 예수, 죽음 앞 사도들의 태도,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도가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을 적어보자면 고도는 곧 구원을 뜻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도(godot)의 이름을 보고 신(god)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고도라는 캐릭터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신 자체라기보다는 신으로부터 행해지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포조와 럭키가 각각 장님과 벙어리가 되어 길바닥에 넘어질 때에도, 에스트라공이 매번 신발로 고통을 받을 때도 신은 곁에 없다. 소년은 고도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말한다. 양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고도가 신은 아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현실세계에서 실현한 것 처럼 고도 또한 절대자의 명령에 따라 죽은 이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죽음, 구원의 전제
신은 죽기 전엔 만날 수 없는 존재다. 구원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구원 받기를 갈망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두 주인공은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자주 한다. 맞지 않는 신발처럼 삶은 고통스럽고 갑갑하며, 기다림처럼 인생은 헛되고 무료하다. 하루 하루 버티는 것은 습관 이상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길은 구원밖에는 없다는 결론 하에, 고도가 온다는 내일, 더 튼튼한 밧줄을 준비하여 구원의 전제인 죽음을 실행하려하는 것이다.
아마도 소년이 전해온 전령에 확신을 얻은 탓에 항상 미수로만 그쳤던 자기 살인은 '내일' 제대로 행해질 가능성이 크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구원의 척도가 되므로 그들의 오랜 기다림은 신실한 것으로 받아 들여져 마침내 그리도 원하던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종교적으로는 기존 삶의 선행이나 공로 대신 가장 마지막까지 믿음을 가진 자만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구원의 의미는 다양하나 보통 죄로부터의 구원이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죄는 유한성을 띄고 스스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절대자의 은총이나 도움을 통한 구원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아무도 오지않고 아무도 가지 않는 따분한 인생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구원 뿐이라 생각하므로 오십년이 넘도록 고도를 기다린 것이다.
■ 인물 탐구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리고 포조와 럭키는 각각 내면에 내재된 심리를 나타낸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 통제와 순종 사이에의 갈등
우리는 자신의 능력보다 월등한 목표를 세워 그를 이루기 위해 고통받는다.
상황에 따라 피지배자로서 순종하다가 지배자가 되어 통제하려 들기도 한다.
결국 네 인물은 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에스트라공 - 포조가 먹고 버린 뼈다귀를 주워 먹고 금화를 구걸(현실 추구)
블라디미르 - 에스트라공의 구걸 행위를 말림(이상 추구)
럭키 - 포조의 요청(춤춰! 사색해! 정지! 등)을 모두 들어 준다.
포조 - 곁엔 럭키 뿐임을 알지만 항상 의심하며 무리한 것을 요구한다. 복종을 또다른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이므로 항상 복종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극을 보는 내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극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어떤 독실한 신도가 구원에 이르기까지 의심과 믿음을 반복하다가 결국 구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