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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31.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0 마르셀의 추억

추억이 미화되는 이유

아름다운 배경, 마르셀의 회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 해 여름(전편인 마르셀의 여름)을 그리워 하며, 다시 돌아갈 날 만 기다리는 어린 마르셀.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받아쓰기 시간에도 그 해 여름의 매미소리와 무화과 향을 떠올리느라 집중하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나고,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로 호출을 당한다.            

뒤이어 듣게된 장학생 선발 대회에 대표로 나가게 됐다는 소식은,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것 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은 고강도 집중 훈련을 받아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구 간기름을 비롯한 온갖 특식을 차려주며 마르셀의 체력을 끌어 올렸고, 휴일인 목요일까지 학교에 나가 선생님들과 특훈과도 같은 공부를 했다.

빠듯한 일정에 지쳐가던 마르셀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겨울 방학때 별장으로 가기로 했다는 것.

가족들은 분주히 여행용품을 챙기고, 무사히 기차에 오른다. 개인 소유의 성을 가로지를 수 없어 6키로를 걸어 돌아가는 길에서 마르셀은 리리를 떠올린다. 그 순간 거짓말 처럼 눈 앞에 나타난 리리. 그 추위에 속눈썹까지 얼어가며 마르셀을 기다린 것이다. 추위를 피해 별장 안으로 들어간 가족은 벽난로에 불을 붙여 훈훈함을 더한다. 마르셀은 벽난로 안에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황금빛 머리를 가진 파랑새의 비상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13가지 디저트를 먹는 풍습상, 어떤 종류의 디저트가 식탁위에 올라갔는지 어머니의 '교육'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모부가 찾아온다. 아이들은 이모부가 가져온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이모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다.

짧게 머무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마르셀과 리리. 마르셀네 가족은 다음 방학을 기약하며 별장을 떠난다.

텅빈집.
그리고 부활절에 다시 돌아온 그들.

스튜에 넣을 백리향을 따러간 마르셀은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벨롱으로 가야하는데 길에 큰 거미줄이 쳐져있어 못가겠다고 말하고, 마르셀은 흔쾌히 거미줄을 걷어 준다. 벨롱까지 데려다 달라는 소녀의 부탁(명령에 가까운)에 마르셀은 백리향도 뜯어야 하고, 리리 대신 덫에 걸린 동물도 처리해야 해서 거절하고 만다. 그러나 결국 소녀를 데려다 주기로 결심하고 둘은 수다를 떨며 길을 걸어 간다. 소녀의 이름은 이자벨이었다. 이자벨네에 도착하여 놀다가 가족들의 식사 시간에 늦은 마르셀은 벨롱의 대저택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서로의 얘기로 정신이 없고, 그들 사이에서 다시 이자벨네로 돌아갈 생각에 여념이 없는 마르셀이다.

오후, 벨롱으로 다시 찾아가는데 이자벨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내년에 음악 학교 시험을 칠 것이라는 이자벨에게 오전에 배운대로 손키스를 해주는 마르셀. 수많은 음을 작은 손으로 만들어내는 이자벨을 바라보며, 신비의 성으로 가는 열쇠를 쥔 요정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연주가 끝나갈 때 쯤, 이자벨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그는 마르셀과 인사를 나눈 후 압생트를 찾는다. 그러다 갑자기 시의 영감이 떠오른다며 아이들을 쫓아낸다.

이자벨과 부쩍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마르셀을 보며 질투를 느끼는 리리, 성당 미사가 끝날 시간에 맞춰 이자벨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마르셀에게, 사람들은 이자벨의 아버지가 주정뱅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때 마침 나오고 있는 이자벨네. 역시나 술에 취해있는 이자벨의 아버지가 보이고, 이자벨은 마르셀에게 손키스를 날리며 백장미 하나를 던져준다.

둘은 여왕과 기사놀이를 한다. 여왕은 기사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명령하고 길가에 있는 사나운 개를 쓰다듬으면 근위대장으로 임명하겠다고 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충성도 테스트. 짓궂은 테스트를 몰래 훔쳐 본 리리와 폴(마르셀의 동생)은 부모님들께 고자질 한다. 산 메뚜기를 먹이고, 개처럼 땅바닥을 기라고 하는 등 상식 밖의 장난에 대해 들은 아버지는 이자벨의 집에 다시는 가지 말라고 마르셀을 혼낸다.
밤에도 이어지는 어른들의 걱정. 그리고 그를 엿보는 마르셀. 마음이 복잡하다.

뒷날, 이자벨네를 찾아간 마르셀. 평소에도 생리현상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고 있었던 마르셀은 이자벨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순간 풍기는 역겨운 냄새에 모든 콩깍지가 벗겨진다. 그리고 선반에 놓인 이자벨 카시뇰의 노트, 아돌프 카시뇰에게 온 우편 등을 보자 의문이 생긴다. 이자벨은 자신의 성을 몽마르쥬라고 소개했고, 아버지 또한 루이스 몽마르쥬라고 했는데, 도대체 카시뇰 일가의 소지품들이 왜 이자벨의 선반에 놓여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사를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자벨. 이별곡을 쳐주겠다던 이자벨은 또 다시 찾아온 복통에 화장실로 달려 들어간다. 노트가 이자벨의 것이 맞느냐는 마르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사람들이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한 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마르셀의 눈에 이제서야 허름한 집안 꼴이 눈에 들어온다. 금이 간 대리석, 찢어진 양탄자, 바늘 없는 괘종시계. 그리고 아직도 설사중인 여왕을 뒤로한 채 도망치듯 성을 빠져나가는 기사.

그리고 또 다시 재회한 두 친구. 이자벨의 이사 소식에 기분이 좋아진 리리는 덫을 놓으러 가자고 하고, 둘은 신나게 달려 나간다. 그러다 멀리서 마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이자벨네를 보며 울음을 터뜨린 마르셀을 리리가 위로해 준다.

이자벨이 떠난 밤, 마르셀은 침대에 누워 여자는 남자가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는 둥 신의 실수라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실연 당한 아들이 마냥 귀엽기만 한 어머니는 웃음짓는다. 그럼 이제 이 별장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여자 때문에 산을 버릴 수는 없다고 당차게 받아치는 마르셀.

어머니는 다음날, 매주 토요일에 별장에 오는게 어떻겠냐고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는 마차를 살 형편이 안된다는 것을 이유로 거절하려고 한다. 사유지를 피해 빙 둘러 걸으면 4시간이 걸리고 또 월요일엔 당직이라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야 해서 안된다고 덧붙이며.(마르셀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다.)

어머니는 기발한 생각이 있다고 한다. 매번 가벼운 인사만 주고 받던 교장 부인에게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고, 자주 마주치며 친해져 가까운 사이가 된다. 장도 같이 보고 티타임도 함께 즐기고, 옷까지 지어주며 얻어낸 것은 바로 월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아버지가 당직을 서게 된 것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걸린 공고문을 읽어보고 놀란 아버지의 모습. 그리하여 매주 토요일 산에 갈 수 있게 된 가족.

*
매번 사유지를 빙 둘러 수키로를 걸어 갔던 가족은, 예전 아버지의 제자였던 부지그(봉잡이: 운하감시원)를 우연히 만나 사유지를 가로질러 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 운하 감시원인 부지그는 모든 사유지를 통과할 수 있는 만능 열쇠를 갖고 있었고, 몰래 둑을 따라 사유지를 가로지르면 훨씬 시간을 벌 수 있다며 가족을 사유지 안으로 들인다.

첫번째 관문은 어느 귀족의 사유지다. 관리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고, 귀족의 성을 지나 8월에만 온다는 공증인의 사유지로 들어가는 가족들. 마지막으로 주인이 파리에 산다는 가장 큰 성을 지난다. 그 성의 관리인은 퇴역군인 출신의 절름발이이며, '마스톡'이라는 큰 개를 기른다. 가족들은 몸을 낮추어 마지막 문도 무사히 통과한다.

4시간 거리를 30분만에 도달한 가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부지그는 '열쇠가 마차보다 빠르다'며 의기양양해 한다.

그리고 무사히 문들을 통과한 가족들에게 '한 잔'사겠다며 근처의 가게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 가지 선물을 하겠다며 만능 열쇠를 건내주는 부지그를 만류하는 아버지. 자신이 편하자고 남의 사유지를 제재없이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다는 아버지에게 부지그는 감시원 모자까지 벗어 준다. 애들을 군인만큼 걷게 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고 말이다.

또한 운하의 다리를 지나올 때 다리에 금이 간 것을 지적한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 부지그는, 시공사를 당국에 고발하면 그들은 2000프랑이 넘는 벌금을 물게 될 것이므로 일종의 통과세를 지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말한다. 그리고 매번 올 때 마다 그런 단점을 찾아 알려주면 자신이 정리해서 당국에 보고를 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빨리 진급하지 않겠냐며, 만능 열쇠를 받는 것은 운하의 안전을 감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머뭇거리는 아버지를 위해 이젠 어머니까지 거들고 나선다. 그러자 이내 열쇠를 받아 든 아버지는 열쇠를 받기야 하겠지만 사용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들 웃으며 축배를 든다.

*
다음 주 토요일, 처음으로 열쇠를 사용하게 된 마르셀네. 아버지는 더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남의 사유지에 무단 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하의 안전을 점검하는 임무를 수행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르셀이 정찰병이 되어 가족들의 안전을 살핀다. 큰 개와 절름발이 경비원이 있는 성을 지나 무사히 벨롱에 도착한 가족들.
열쇠를 얻은 후, 폴은 몰라보게 자랐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으며, 마르셀은 시험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법을 위반할 용기와 맞서느라 매번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첫 번째 성의 주인과 맞닥뜨리는 가족.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하지만, 성주는 이미 부지그에게 들어 알고 있다며 오히려 자신의 하인을 시켜 짐을 들어주라고 한다. 그리고 감사인사를 하는 가족에게 단지 선량한 사람들이니 막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뿐 이는 기적이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번엔 초인종을 누르고 가운데 길로 가도 좋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뒤로부터 그 성을 지나는 일은 축제처럼 변했다.

두 번째 성을 지날 때, 그 성의 관리인이 길을 막아서긴 했지만 주인이 보고 있어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라며 다음번엔 토마토 밭쪽으로 지나가라고 말해 준다.

그리고 개가 있다는 성 앞에 선 가족들. 개가 무서운 어머니는 꽃 향기를 맡으며 두려움을 떨쳐 본다. 마음을 가다듬고 무사히 마지막 문턱을 넘어 별장에 도착한 가족들.

6월엔 장학시험때문에 산에 가지 못해 우울해 진 마르셀은 결국 2등으로 시험에 합격한다. 아버지는 본인이 상급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아들의 합격을 더욱 자랑스러워 했다.
A, B, C, D... 이게 그가 아는 전부고 평생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 말하며 언젠가는 '상급 학교의 교육을 수료한' 아들이 자신을 부끄러워 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배운 것을 모두 가르쳐 드리겠다 약속하는 기특한 마르셀.
그리고 여름 방학의 계절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첫 번째 성주와의 만찬, 평화로운 토마토 밭길을 지나, 마지막 성에 당도한 가족들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역시나 마지막 문이 쇠사슬로 고정이 돼 지나가지 못하게 돼 있었고, 뒤에서는 개짖는 소리가 난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가족들.

마스톡과 함께 등장한 절름발이 관리인은 아버지의 신분증과 가족들의 짐을 모두 검사한다. 그리고 무단 침입죄로 고소를 할 테니 짐을 챙겨 왔던 길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자리를 뜨는 관리인.

되돌아 가던 가족은 열쇠도 빼앗겨 이제 어떤 문도 열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가 철사로 겨우 문을 따서, 먼길을 돌아 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고, 다만 위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파면이나 징계에 대해 걱정하며 흐느낀다.

어머니는 과외라도 하면 되지 않겠냐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아버지는 감자를 파는 동창에게 졸업 시험 문제를 알려준 적이 있으니 모른채 하진 않을거라고 말한다.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은 마르셀은 아버지가 몰래 사 놓은 철도 채권이 780프랑, 어머니가 생활비에서 아껴 모은 210프랑, 자신의 저금통에 든 7프랑, 폴 저금통의 4프랑, 도합 1001프랑이 있음을 계산하고는 위안을 얻어 겨우 잠이 든다.


*
얼마 후 교육감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걱정에 빠져 있는 아버지에게 농사를 지어보자고 권유하는 마르셀. 옆에 있던 리리도 곡식은 저절로 자라나니 꼭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고 거든다. 그 때, 부지그가 동료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 온다.

그리고 아버지가 절름발이 관리인에게 빼앗겼었던 수첩을 돌려주며, 조제프 선생이 고소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절름발이 경비에게 찾아가 쇠사슬이 채워진 문을 가리키며 운하 감시원의 통행을 막는 것 또한 불법이라며 고소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겁먹은 절름발이 경비원은 아버지의 수첩, 자물쇠의 열쇠, 만능 열쇠, 보고서와 소장 모두를 내어주며, 운하 감시원의 출입을 통제하려던 것이 아니라 침입자를 막으려는 조치였다고 털어 놓았단다.

부지그는 즉시 소장과 보고서 등 관련 문서를 파기하라고 하고, 밖에서 문을 잠근 뒤 열쇠는 마스톡에게 던져 준다. 반대로 자신이 갇히게 된 절름발이 경비원은 난감해 하며 마스톡에게 열쇠를 뱉으라고 말하지만 말이 통할리 없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축제 분위기가 된 마르셀네. 파티를 준비하느라 바쁜 무리들, 아버지는 차라리 마차를 사겠다고 하며 다시는 샛길로 몰래 다니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교육감 표창으로 월급이 22프랑이나 올랐으므로 그럴 자격이 된다며!

 
*
시간이 흐르고 물레방아 돌아가듯 삶의 수레바퀴가 돌아갔다. 그 해 여름으로부터 5년 후. 어머니의 관이 담긴 검은 마차를 따라가는 두 소년. 성인이 될 때까지 식구들 중 누구도 어머니에 관련된 얘기를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별장이 있는 산에 머물며 염소 떼를 기르던 '프로방스의 마지막 목동' 폴도 서른이 되자 마르셀의 곁을 떠났고, 리리 또한 1차 대전때 어느 숲 속에서 총에 목숨을 잃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짧은 환희의 순간들은 지울 수 없는 슬픔에 덮인다.

마르셀은 영화사를 차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로방스에 스튜디오를 세우려고 부지를 알아 보던 중, 공증인이 전화를 해왔고, 그를 믿었던 마르셀은 곧바로 그 땅을 사버린다.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는 마르셀과 직원들. 관목 숲 너머로 어머니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 성이 보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운하도 그대로 있다.

아버지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검은 문을 부숴 버리자,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악몽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개짖는 소리와 경비원의 발소리에 두려움에 떨며 로얄 장미를 한아름 들고 향기를 맡는 어머니의 모습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의 집이 된 그 곳에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갈색 머리의 여인의 환영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해 여름, 소년의, 그리고 가족의 추억.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프레임마다 르누아르의 명화처럼 펼쳐지는 별장에서의 추억.

마르셀에게는 시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공간, 어머니에게는 도시와는 달리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요양의 공간, 아버지에게는 휴식의 공간이자 마음속 원칙을 깨야만 하는 공간, 동생들에게는 또다른 놀이터가 된 그곳, 바로 벨롱의 별장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미에 확실히 드러난다.


환희는 짧고 슬픔은 길게도 인생을 지배한다는 것.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감정들은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추억으로 남는다.


아버지는 상급교육을 못받은 것에 대해 스스로 아쉬워하고 마르셀이 장학시험에 합격해 상급교육을 받게 되자 무척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언젠간 아버지를 부끄러워할 날이 올거라고 한다.

마음 속 깊이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상급교육은 못받았더라도 교육 공무원으로서 스스로의 원칙을 준수하는 삶을 살며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앞에 만능 열쇠가 나타나 유혹한다.
별장으로 가기위해서는 개인 사유지를 빙 둘러 6키로를 돌아 세시간 넘게 걸어가야하는데, 만능 열쇠가 있다면 사유지를 가로질러 30분만에 별장으로 갈 수 있는 것.
어린 꼬마 셋과 허약한 부인앞에 아버지는 열쇠를 받아들고 만다.

자신이 세운 최고의 가치인 도덕을 가족을 위해 버린 것이다. 신념을 버렸다는 부끄러움으로 매주 토요일 아침 굳어버린 표정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허약하고 여리지만 지혜롭다. 시험 스트레스로 지쳐있다가 별장에 오는 시간을 가장 행복해하는 마르셀을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별장에 올 계획을 세우지만 아버지의 당직 일정 때문에 월요일 일찍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별장에 머무를 시간이 줄어들자, 계획적으로 교장의 부인에게 접근하여 아버지의 당직 일정을 목요일로 바꾼다.

그리고 무단 침입죄로 고소를 하겠다는 절름발이 경비원의 말에 낙담한 아버지에게 개인 교습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겠냐며 용기를 북돋워 주고, 생활비에서 아껴 모은 돈도 있다며 아버지를 안심시킨다.

누구에게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실연으로 마음을 다친 아들을 상냥히 달래주는 이상적인 어머니. 결국 오년 뒤 세상을 떠나 가족 모두를 슬픔에 빠지게 만들지만 추억 속 어머니는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남는다.

잠깐 만났던 이자벨은 돌연 이사를 가며 마르셀의 곁을 떠난다. 주변에선 이상한 괴짜 가족 취급을 받았지만 마르셀에게는 요정같았던 이자벨과 궁전같았던 벨롱의 대 저택. 사랑은 때론 미화되고 현실에서 눈이 멀게 만든다.

어느 날, 복통을 앓는 이자벨에게서 고약한 냄새를 맡은 마르셀. 이자벨네 가족은 가명을 쓰고 망상에 빠져사는 괴짜 가족이 맞았고 그 환상에서 깨어나자 허름한 집의 단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쫓기듯 이사를 간 이자벨의 가족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마르셀은 그녀 또한 벨롱의 별장에서 만든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사랑도 돈도 건강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어머니와 폴, 그리고 단짝 친구인 리리까지 잃은 마르셀이지만 그의 삶을 멈출 순 없다. 결국 성공한 영화 사업가가 된 마르셀은 바쁜 일정에 별장은 까맣게 잊고 산다.

그리고 곧 프로방스에 큰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위해 사들였던 부지가 바로 어머니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마지막 관문, 검은 문의 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린애처럼 신나한다. 우뚝솟은 검은 사자상, 대저택의 위엄과 시원하게 흐르는 수로까지 옛날 그대로다. 잠시 추억에 빠져 애처럼 뛰어다니는 마르셀. 이렇듯 추억은 기억 저편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즐거웠던 기억을 선물처럼 풀어놓는다.

그때 이미 마르셀의 땅이었다면 어머니가 쓰러질 일도 없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지금까지 살아계시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보고.

세상은 우연의 일치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법의 삶은 모두에게 유효한 망상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때 그렇지 못했음을 알고 있으므로 추억은 슬픔으로 또는 기쁨으로 기억 저편에 머무르고 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때로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기억 속 두려움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그 트라우마를 지우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아버지를 부끄럽게 만든 검은 문, 어머니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그 검은 문은 성인이 된 마르셀에 의해 부수어 지고 이제는 아들의 집이 된 그 공포의 성에 갈색머리의, 지금 마르셀 또래의 어머니가 로얄 장미를 들고 미소 짓는다.

인생은 돌고 돈다.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감정과 경험들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평생동안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억을 발판 삼아 현재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로 이어져 바쁜 일상속에서 잠시 쉬어갈 별장을 제공한다.

왜 추억은 더 아름답게 기억될까


아직도 마르셀의 추억 속에 소중히 살아 숨쉬는 별장과 가족들. 아름답고 감동깊은 동화같은 영화를 보며 한가지 드는 의문점이 있다. 왜 추억은 우리의 기억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되는 것일까.


마르셀은 성인이 되어 영화 제작가가 된 후, 다시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여름 별장으로 돌아 왔다. 다시 생각해보면, 첫사랑과의 안좋은 기억과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초라함이나 시험 준비에 대한 압박감 등 굉장히 스트레스 요인이 많은데 반해서 마르셀은 추억을 아름답게만 여긴다.


어떠한 점이 그에게 기억 편향을 조장한 것일까. 이것은 <므두셀라 증후군>이라는 개념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으로 과거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많다. 어른들이 트로트를 듣는 이유를 알겠다거나, 예전만큼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다던가, 학창시절이 제일 재밌었다는 둥 과거에 대한 환상에 젖어 현실로부터 멀어진다.

 

결국 추억이 미화되는 것은 현대인의 고단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걸어다녔던 사람들에게 신기루라는 환영이 보이는 것 처럼, 과거의 추억은 항상 아름답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과거로 다시 회귀하고자 하는 심리적 이상향으로 머물러 있다.


팍팍한 현재로부터 지친 현대인들의 도피처, 과거의 환상. 우리는 추억을 미화시킴으로써 이왕 지나버린 과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행복했었던 때도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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