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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10.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1 책도둑

죽음과 소녀, 상실감에 대처하는 소녀의 자세


<음>은 이 영화의 나레이터로서 모든 장면에서 등장한다. 상냥한 말투의 나레이션이 더욱 죽음이라는 것의 이중성을 드러나게 만들어 복잡한 생각을 만들어 낸다.


각설하고, 영화의 시작은 사회주의자 엄마를 둔 어린 소녀 리젤이 어느 독일인 부부의 집으로 입양되러 가는 길, 그 열차 안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남동생을 잃게되고, 열차에서 내려 변두리에 어린 동생을 묻는다. 그때, 장례를 치르러 온 인부 중 한명이 장례법에 대한 매뉴얼이 적힌 작은 책을 떨어 뜨리고, 리젤은 그 작은 책을 품에 챙긴다.



독일인 부부는 소박하고도 투박했다. 어린 리젤은 하루 아침에 새로운 부모가 생겼고, 모든게 어색해진 바로 그때, 장례 매뉴얼 집을 집어든다. 새아빠는 리젤의 이부자리를 정리해 주러 왔다가, 책을 들고 있는 리젤에게 글을 읽을 줄 아느냐고 물어본다. 리젤은 글을 읽을 줄 몰라 새아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이를 계기로 글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부업으로 세탁일을 하던 새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댁에 빨랫감을 전해주러 갔다가 책이 빼곡히 들어 찬 책장에 매료된 리젤이 몰래 서가로 들어가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여러 차례 반복된 독서 서리(?)는 결국 시장 부인에게 들키게 되고, 혼날 줄 알았던 리젤에게 오히려 큰 상이 내려진다.


바로 시장 부인이 책을 좋아했던 죽은 아들이 떠올라 리젤에게 마음껏 책을 읽게 해 준 것이다.



곧잘 새 집에 적응도 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니면서 평화로운 삶이 계속되나 싶었더니, 예전 전쟁통에 새아빠의 목숨을 구해줬던 한 유태인의 아들인 맥스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피해 리젤네 지하실로 숨어 들어와 긴장감이 고조된다. 맥스는 2년간을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날 새아빠가 유태인 옹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중년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 세계 2차 대전에 징집되고, 죄책감을 느낀 맥스도 홀연히 떠나버린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새아빠가 무사히 귀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리젤이 살던 동네인 헤븐 스트리트에 공습이 시작되고, 지하실에서 소설을 쓰다 잠든 리젤을 제외한 모두가 하룻 밤 사이에 폭격을 맞아 죽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불행만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고아가 된 리젤은 자신을 예뻐해 주던 시장 부인의 양녀로 들어가 작가가 되고 우연히 맥스와 재회하고, 90세 까지 행복하게 산다.



처음엔 글씨도 몰랐던 소녀가 우연히 훔친 책 한권을 새아빠의 도움으로 읽게 됨으로써 글을 깨우치고, 맥스의 권유로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재미를 알게되었으며, 어린나이로 죽은, 책을 좋아하던 아들을 리젤에게 투영하여 친딸처럼 아껴주었던 시장의 부인덕에 한 층 성장하게 되었다.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리젤을 사랑해 준 새엄마 로사, 항상 리젤을 웃게 만들고 공주님이라고 불러준 새아빠 한스, 그리고 소녀의 유일한 단짝 친구 루디까지.


다들 너무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 날의 폭격으로 모두 '죽음'의 품으로 돌아갔다.


여느 때 처럼의 일상 뒤에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비극에도 리젤은 자신이 쓴 책을 챙겼다.



엄마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 입양된 후의 행복함과 우정, 그리고 하루 아침에 생긴 비밀 친구에 대한 감정이 그 책 한권에 모두 집약되어 있었다. 리젤이 가장 슬픈 시간을 이겨냈던 원동력이자, 모든 지성과 행복이 담겨져 있는 책. 리젤에게 책은 인생이나 다름없었다.


창백한 하늘, 태양이 구름에 가려 은색 굴처럼 보인다는 순수하고 깨끗한 리젤의 마음과 대비되어, 영화의 곳곳에 죽음과 슬픔에 대한 장치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서 오히려 현실같은 면이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 사라지고, 결국은 우리도 죽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으나, 항상 불안에 떨고 슬픔에 젖어 살지는 않는다. 매 순간의 희노애락이 한 사람의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한참, 길게도 남는다. 먹먹하고 슬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1차적으로는 불안이다. 사람들이 노화나 질병, 건강 등에 집착하는 이유도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나에게 처음으로 맞이하는 고독한 여정인 죽음. 살아있는 동안 철저히 사회화된 인간들은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야하는 것이 무서워서 죽음에 대해 막연히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세상에 어떤 것이 있을 지 모른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태어나서 성숙되고 또 쇠퇴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사이클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과도한 감정이 사회의 안정을 무너뜨릴까봐 일부러 죽음에 대해 즐거운 기억을 심어주는 조건반사교육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어떤 이의 장례식을 견학하면서, 맛있는 초콜렛과 재미있는 장난감을 제공받는 경험을 통해 죽음은 즐거운 것이라고 학습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조건반사교육으로 학습된 즐거운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태세다.


고흐가 죽음과 마주했던 <까마귀 나는 밀 밭>,세 갈래로 나뉘어진 길이 고흐의 갈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없앤다고 해서
<죽음>이 <삶>처럼 경쾌해 지는 것일까

죽음의 2차적 의미는 상실이다. 상실은 우울을 불러온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 뿐만 아니라 타인의 죽음 또한 두려워 하는데, 부모나 친구, 친척, 지인의 죽음이 지독한 상실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감은 우울과 무기력, 허무를 느끼게 하므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 만으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사람들도 많다. 상상해 보라.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가 죽음이라는 이유로 한 순간에 끝나버리는 순간을 말이다.


마치 사후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것 처럼, 왜 일순간에 관계가 끝나 버려야만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죽음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텅 빈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수 밖에 없다. 직장이나 가족, 반려동물이나 친구, 취미생활 등 의지할 만한 다른 것이 있으면 상실감으로부터 조금 더 빨리 헤어나올 수 있다. 물론 애도의 시간이 그 깊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애도 기간으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리젤의 상실감을 치유해준 <책>,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리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았다. 가난 때문에, 정치적 이념 때문에 사랑하는 친어머니와 이별하여, 입양을 위해 이동하는 와중에 동생을 잃고 말았다. 입양 된 후 달콤한 인생은 수년에 지나지 않았다.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소녀가 겪었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실이다. 리젤은 이 고통을 <책>과 함께 이겨냈다. 기차 안에서 죽어 제대로된 장례도 치르지 못했던 동생의 죽음, 그리고 동생을 묻으러 온 인부들 중 누군가가 떨어뜨린 장례 매뉴얼북을 주워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고 흥미로웠으므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뒤에도 언제나 책을 곁에 두었고, 자신만의 언어로 책을 펴냄으로써 자존감을 쌓았다. 이제 책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서 리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상실을 이겨낸 소녀도 있다. 죽음으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그들의 죽음에만 빠져서, 자신의 삶 마저 잃어버리는 일은 또 다른 불행일 뿐이다. 물론 사람마다 애도의 기간이 다르고 방법 또한 다르다. 상실 후 우울을 느끼고 애도하는 행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것 또한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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