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동양의 고흐 《이중섭》

이중섭, 백년의 신화 @ 덕수궁 미술관, 예전의 기억

by 고요


이중섭전에 다녀왔다. 그의 그림이라곤 황소와 까치밖에 몰랐기 때문에 막연히 민속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난 지금, 나는 엄청난 우울과 쓸쓸함을 덤으로 얻어 오고 말았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었을까


그는 주로 가족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 처럼 거칠고 야성적인 면과 날것의 선이 합쳐져 한마리 야수같은 생동감을 전달해 주었다. 파괴적인 우울함. 그는 두 아들과 아내를 끔직히도 사랑했고 그리워했다.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여러장의 편지를 남겼다.

편지 한 장 쓸 종이가 없어도 아들들에게 자전거를 사주마 따듯한 약속과 귀여운 뽀뽀를 담아 꼭꼭 마음을 눌러 적은 서신.

무엇이 자꾸만 내 마음을 울적하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분명 가족들과 소, 새, 달, 물고기 등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소재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들인데 한장 한장 고독이 뚝뚝 묻어 났다.



타인의 지독한 고독을 감상하다


만약 이중섭이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더라면 '작품'의 탄생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고독과 외로움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상과 경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창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를 동경해 줄 숭배자들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 이 모든게 천재의 숙명이다.

예쁜 액자에 담겨 질서정연히 전시되었다고 해서 화가의 감수성 또한 정돈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중섭의 고독이 액자를 뚫고 나와 사람들의 마음에 꽂힌다.

누구든지 그의 그림을 보면 매료될 것이다. 유치와 천재성을 넘나드는 순수한 드로잉을 보면서 예술이란 저 멀리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인 김용호와의 콜라보레이션.


날이 날마다 오가는 길에 너만 있어
숱한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너만이 있어
어항 속 한마리 운명의 금붕어처럼
너를 숨쉬고 나는 살아간다.

김용호, 《너를 숨쉬고》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눈 앞에 어른 거리는 '너'라는 사람.


마치 작은 사각 수조 안의 금붕어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한정된 풍경만을 바라보며, 우울한 삶을 살아가지만 '너'라는 사람이 있기에 꾸역 꾸역 생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단지 네 줄의 시.


생명과도 같은 숨을 '너'라고 표현했으니 얼마나 애틋하고, 또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관람 후 덕수궁 산책, 덕수궁 미술관 투어의 백미



역사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조선의 작은 궁궐, 덕수궁.


중화전과 석조전, 그리고 커피광 고종이 커피를 즐기고 다과회를 개최했다던 정관헌까지. 고목들이 둘러싸고 있어 도심 한 가운데서 초록을 느낄 수 있는 전통적 아름다움!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한바퀴 둘러보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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