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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다섯. 앙드레 드랭

선구자의 고통, 당대 주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길 인생을 고집하다

by 고요 Jun 30. 2017


MoMA | André Derain. London Bridge. 1906MoMA | André Derain. London Bridge. 1906


1905년, 프랑스 화가 앙드레 드랭은 앙부르와즈 볼라르로부터 런던의 정경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앙드레는 바로 이젤을 챙겨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나간다. 그림의 주제는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수 많은 다리(19세기 경 도시 중심가를 현대적으로 바꿔보고자 국가 차원에서 시행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일환) 중 하나였던 런던 다리. 같은 시기, 앙드레 드랭은 두 달간 런던에 머무르며 템즈강 주변을 대상으로 삼십여점의 작품들을 그려냈다.

앙드레 드랭의 화상(畵商)이 런던 정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놀라울 만한 일도 아니었다. 19세기 런던은 산업혁명으로 폭발적인 인구 증대를 경험했고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앙드레 드랭은 도시의 변화를 직접 보고 그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야수파 화가인 그가 그린 런던의 모습은 이전의 화가들이 그려왔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먼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야수파 화풍은 우리에겐 혹독한 시련과 같았어요...당시엔 사진처럼 현실적인 묘사가 주를 이뤘었잖아요. 그러한 점이 마치 일상의 스냅샷같은 작품세계를 탈피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내는데 큰 영향을 주었죠. 아무리 야수파 화풍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 야수파 화가들에겐 충분치 않았어요. (딱히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세밀한 묘사가 없더라도)색채는 다이나마이트급의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니까요.


+
등장과 동시에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 일으킨 야수파의 대표주자인 앙드레 드랭. 그들은 더 할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놀라움을 느낀 수준보다 더 높은 차원의 스타일. 사진처럼 현실과 판박이인 주류 화풍에 맞서, 폭탄과도 같은 충격적인 색채로 기존의 세밀한 묘사에 도전장을 내민것이다.

※ 직접 번역한 자료입니다.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www.mo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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