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꽃집 사장이 되지 못한 이유

by 고요

꽃집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길을 멍하니 걷다 좋은 냄새에 이끌려 멈춰 서면 그곳엔 항상 갓 구운 빵집 아니면 꽃집이었다. 빵을 만들 자신은 없어서 꽃집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나날들이 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교수들은 자꾸 뭐가 되라고 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었는데 전공과 관련된 무엇이라도 하라고 했다. 학교와 전공은 성적에 맞춰 들어갔을 뿐이고, 그러다 그걸 사랑하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그것과 관련된 무엇이 되고 싶은 생각도, 할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배나 동기들은 이곳저곳에 서류를 넣었고, 떨어졌고, 붙었고, 술 마셨고, 울었고, 환호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처럼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울고, 술 마시고, 합격하며 살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괴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멍하니 걷다가 또다시 달큰한 향에 끌려 멈췄다.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건 역시나 꽃집이었고 막연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법도 한데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그런 충동이 더 크게 일지 않았나 싶다. 그 즉시 여러 꽃집을 찾아보고 이곳저곳 물어보며 제일 마음에 드는 꽃집에서 클래스를 받기 시작했다. 물을 가득 머금은 오아시스에 꽃의 줄기 끝을 사선으로 한 번에 잘라 보기 좋게 꽂고, 색 배합이 맞게 조합하고, 꽃의 속성에 따라 정렬하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꽃들의 무게에 팔목에는 늘 파스가, 손가락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다 용서되었다. 그리고 꽃집에서 수업을 하다 보니 손님들도 종종 찾아왔는데, 그걸 보는 것도 정말 즐거웠다. 전에는 그저 식물의 생식기인 꽃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다들 헤실거리나 했다면,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그리고 꽃을 한동안 가까이하며 느꼈다. 꽃집에서는 찡그림이 적다. 선물하는 사람을 위한 예쁜 마음, 설렘과 행복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꽃다발, 꽃바구니, 부케 등등을 겉핥기식으로만 배우다 보니 '꽃을 더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졌다. 그래서 몇 주 과정의 꽃꽂이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자격증 공부에 들어갔다. 초반에는 매주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을 만지고 배우고 향에 취하며 행복했었다. 온 집엔 꽃과 그들이 뿜어내는 향들로 가득 찼고, 내가 직접 만든 작은 부케나 꽃다발 등을 지인에게도 선물하니 기쁨 역시 배가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딱 꽃이 싱싱하게 피어있는 그만큼만 지속되었던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거실이나 베란다에 생생히 피어있는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괜히 한번 더 돌아보게 하고, 기분 좋게 하고, 다시 살고 싶게 하는지도. 그렇지만 꽃이 진 뒤에는? 꽃이 시든 뒤의 처리도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파스락 먼지가 일 정도로 말라버린 줄기와 잎, 싱그러움과 향기를 잃어버린 꽃잎들까지 모두 버리기 쉽게 잘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날이 분명히 찾아오게 된다. 당연한 자연의 섭리조차 하나하나 마음 아파하고 씁쓸해하는 예민한 나에게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결국 내 손으로 그것들을 잘라버리는 행위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꽃집 사장님은 애초에 꽃을 다듬기도 해야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잘려나가고, 내 손의 온기에 쉽게 시들어버리기도 하는 그 미약한 존재를 보고 있자니 이 행위를 업으로 삼기에는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듬었던 수백, 수천 송이의 꽃의 결말까지 함께 하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라, 결국 꽃들은 그냥 자라난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다고 느꼈다.


꽃은 그냥 꽃일 뿐인데 그걸 자르고 다듬고 꽂고 그러는 게, 나더러 자꾸 무언가가 되라는 교수님이 된 느낌이었다.


다행히 꽃집 사장님처럼 아름다운 일을 꿈꾸고 있다. 괜히 한 번 더 돌아보게 하고, 기분 좋게 하고, 다시 살고 싶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두 손으로 꽃을 피워내기 위해 향기를 머금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여전히 뭐가 되어야만 한다는 바쁜 세상 속에서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머물러 미약하게나마 무언가를 위로해 내는 그런 것들이 되고 싶다. 가련한 누군가가 넋 놓고 걷다가 어떤 향에 끌려 멈추면 내가 곁에 있어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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