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을 친구로, 혹은 연인으로 두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쓴다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또 개인적이며 편협하기도 하니까. 내 주변사람들은 나로 인해 어떻게 쓰여지고 또 남겨질지 궁금해했고, 기대했으며 싫어하기도 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특히 지나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북함을 느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 진짜 그들의 상황이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각색에 각색을 더해 미화되고 바래져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도 있다. 지나간 사람은 말없이 어떠한 거북함만을 느낄 뿐이다. 지나간 사랑 또한 말이 없으나, 글이 된다. 그럼 쓰는 사람은 별 수 없이, 본인이 어떻게 글에서 태어나고 죽는지 궁금해하고 기대하고, 때로는 싫어했던 그들을 적고 또 적을 뿐이다.
구는 저와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이고요. 타인과 저 사이의 유일한 접점이 구였으니까요. 구를 잃으니 덩달아 잃어지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구를 며칠만 겪어봐도 그가 얼마나 유별난 사람인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구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잘하다가도 별안간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매일 산책하러 가자고 조르면 온갖 신경질을 다 내고선 꼭 끝까지 같이 걸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주 우리의 어릴 적 사진을 보내고, 어딜 다녀오던 빈 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지만 정작 본인은 타인에게 신세 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우기기도 잘하고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잘하며, 노력도 잘하고, 응원도 잘하고, 궁금한 것도 많아 물어보기도 잘하고, 칭찬도 잘하고, 숨기도 잘하고, 어느새 나타나기도 잘하고, 아무튼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면 입이 써 내뱉고 싶지 않지만 구는 다릅니다. 마구마구 언급하고 끈덕지게 기억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라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구와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던 그날에도 저는 구에 대해 계속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구가 싫어해도 별 수 없어요. 말했다시피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구 역시 본인의 어떠한 감정도 저에게 소모하지 않을 테니 그에 대해 조금 더 써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퍽 슬픈 일입니다.
사실 지금은 구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아요. 원래 사람의 얼굴을 잘 떠올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구를 본지가 너무도 오래됐거든요. 그저 어떤 몸짓들과 강박적으로 하던 몇몇의 행동들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구가 보고 싶을 때면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면 되니까요.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구와 아주 닮았거든요. 얼굴 빼고 행동이나 목소리 말투는 완전 딴판이지만 자주 보다 보면 구가 저런 행동과 목소리를 갖고 있었던가, 기억이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구의 본모습을 떠올려볼 때면 그와 친구였던 시간들이 믿기지 않게 생경해 그 시절의 제가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깨닫게 될 뿐이지만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구가 제일 좋아하던 연예인이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던 그 사람을 구는 꾸준히 좋아했습니다. 충분히 그 무게를 견딜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결국 구가 옳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그 마음이 여전한지는 알 수 없지만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구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긴 대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싸가지없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지를 잊지 않으려고요. 구 덕분에 저는 떼쓰는 사람이기도 했고, 때론 점잖은 사람이기도 했다가 또 못된 사람이기도 했다가 변덕이 잦습니다. 가끔 구와 여전히 친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몇 번의 여행과 몇 번의 연애담이 있을 거고, 꽤 많은 사진들과 문자들이 오갔을 테 지요. 그렇지 못한 지금은 그저 조금 운이 없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이렇게 끝까지 함께 걸어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입니다. 매일. 다시 생각해보니 꽤 불운한 일이군요. 어쨌거나 다 지나간 일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던 이들에 대해 쓰는 건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고 싶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쓸 이유가 없겠지요. 오늘은 유난히 달이 밝습니다. 동그랗고 밝은 달을 고요히 보고 있노라면 시끄럽고 쨍하게 사랑스럽던 구가 떠오릅니다. 어떤 모양으로도 구를 연결 지어 생각하는 밤입니다.
구는 저를 완벽히 타인으로 여겼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남이었나 봅니다.
고백한다. 나는 아주 아주 비겁하고, 찌질하고, 멍청하다.
하루아침에 그리고 단번에 누군가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쳤던 적이 있다.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없는 삶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못 했지만 겪어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그들과 친구였던 나는 외로웠고 힘들었다면, 그들에게서 도망친 나는 여전히 외롭지만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외로움은 폭풍우가 퍼부을 때 온몸이 흠뻑 젖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고, 자주 폭풍우가 불고 태풍이 이는 사람이었으니까 외로움을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친구들은 역시나 좋은 사람이어서 떠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진심이든 형식적이든 가끔 '다 같이 시간이 맞으면 만날래?'라고 묻기까지 해 주었다. 몇 년이 지나 바뀌어버린 내 연락처도 모르면서 그들은 꾸준히 그렇게 말해주었다. 근데 나는 그 묻지 않음과 물음이 또 그렇게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중 한 명이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많이 좋아하던 친구이기에 축하가 우선 이어야 하겠지만, 다 같이 모인 그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함께 있던 자리에 내 빈자리 없이도 굳건한 그들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친구에게 청첩장까지 건네받고, 시간을 내보겠노라 확신 없는 대답을 했다. 어느덧 결혼식 날이 다가왔고 아침까지도 고민을 하다 결국 옷을 챙겨 입었다. 앞으로 그의 가장 행복할 날의 모두를 함께 할 수 없을 테니, 이 날 만이라도 곁에 있어주고 싶단 생각하나로 출발했다. 발이 아픈데도 의사 선생님이 절대 신지 말라던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저 멀리서 지켜만이라도 보려는 심산이었다. 너의 행복을 위하는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는 걸 몰라도 괜찮았다. 고민이 길었던 만큼 시간이 촉박했기에 달려야 했다. 신발이 발을 옥죄어오며 어김없이 통증이 시작됐지만 높은 경사를 뛰고, 또 뛰었다. 다행히 식의 후반부에 도착해 행복하게 걸어오는 친구가 너무 반짝반짝해서 꼭 껴안아버릴 뻔했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식이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 메마른 반가움과 공허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나도 모르는 어떤 분위기에 휩쓸려 사진도 찍고, 같이 식사도 했다. 평소와 같았다. 매일 느끼던 느낌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모르는 것 투성이인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세월이 빨리 흐르듯, 그들도 많이 변해있었다. 여전했지만 변했다.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같이 웃을 수 없었고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혹시나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할까 봐서 섣불리 묻지도 못했다. 그러다 혹시 왜 우리를 떠났느냐고 물을까 봐서. 절대 묻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히 그랬다. 그렇게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식사를 마쳤고 또다시 메마른 인사를 나눴다. 함께인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아팠다.
나에게 그들은 그랬다. 신고 싶은 예쁜 구두 같은 존재들이었다. 같이 있으면 빛나고, 당당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그런.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딱 맞는 편한 신발이었을 뿐이었다. 식장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아픈 구두를 벗어버리고 가까운 상점에 가 그나마 편해 보이는 신발을 급히 샀다. 꼴이 우스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내가 신어야 할 신발이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만신창이가 된 발을 보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잃었던 사랑이다. 비겁하고 찌질하고 멍청하지만 외로운 나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들을 단번에 잃었지만, 내게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것이 더 나에게 편안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두려워도 피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과 마주할 수 있음에, 그 정도의 잃음을 보상받을 수 있는 값어치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계속 내가 그들과 친구였다면 외로움과 무심함에 지쳐 망부석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방법이 옳지 않았더라도,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겐 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용감해지거나 내 생각을 똑똑히 얘기하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나는 나이고 걔들은 걔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세상에서도 이런 결말일 것이다.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래도, 후회 없는 선택이다.
다시 고백한다. 나는 더 이상은 비겁하지 않고, 단단하고, 영리하다.
우리가 이렇게 지낸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네. 연락을 못한 지가 그 정도 됐으니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전화도, 문자도 아무것도 답이 없어서 혹시나 메일은 볼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보내 봐.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사실 네가 쓰는 글들을 자주 읽곤 했는데 그걸 보고 잘 지내고 있겠구나 생각했어. 주체가 내가 아닐까 싶었던 글들도 몇 보였는데 어떤 글은 너무 예뻐서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도 하고 그랬어.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나 생각해준다는 게 자랑스럽고 그랬거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글도 너무 애틋하고 아파서 당사자에게 보여주기도 하면서 네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 네 마음이 이렇게라도 닿았으면 해서.
나 그동안 네 생각 참 많이 했다? 내가 혹시 실수한 건 아닐지, 내 행동에 상처를 받은 건 아닐지 내 모든 말과 행동들을 곱씹으면서 네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닫게 됐어. 우리 같이 갔던 장소들과 여행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끄집어내 추억할 사람이 없다는 게, 여전히 불안한 내 삶에 네 든든한 조언이 너무나도 그리워. 하지만 난 잘 지내려고 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이제는 안 먹던 버섯도 조금 찡그리긴 해도 잘 먹어.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팀장도 다른 곳으로 이직했고, 그 왜 있잖아 내가 몇 번이나 떨어졌던 그 시험. 그것도 드디어 합격했어.
난 이렇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어. 너 역시 그렇겠지. 네가 어디서 뭘 하든 난 널 응원할 거야. 영원한 네 편이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있잖아. 괜찮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여기서 계속 기다릴게.
안녕. 편지 잘 읽었어. 한 열 번은 읽었나? 계속 반복해서 읽었어.
날 이렇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근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네가 계속 생각했던 건 내가 아닌 너였던 것만 같아서. 네가 그리워하는 게 온전한 내가 아니라 너의 시절을 기억하는 나인 것 같아서. 여전히 복잡한 네 삶을 잠자코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서. 사람들은 우리 관계를 많이들 오해했어. 동등한 친구사이보다는 약간의 상하가 느껴지는 그런 사이. 물론 내가 갑이고 네가 을이었지. 멀리서 보면 말이야. 누가 나한테 '너 왜 저렇게 착한 애를 쩔쩔매게 하냐'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니깐. 그래서 난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너한테 늘 미안하고 고맙고 더 많이 해주고 싶고 그랬어. 그 와중에도 난 조금씩 균열이 갔고 잦은 빈도로 아팠어. 넌 알고 있었을까. 굳이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이 스스로 버티지 못해서 내 모든 관계 역시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던 거야. 그래서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지냈다고 생각했어. 근데 네 글 읽어보니 알겠더라. 그냥 너에게 지쳤었나 봐 나. 내 삶만으로도 너무 무겁고 힘든데 네가 전혀 위로가 안되었나 봐. 오히려 짐같이 느껴졌어. 사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건데. 그치.
있잖아, 내 불행을 위안 삼고 디딤돌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정말 많았어. 그렇게 나아가다 잠시 적선하듯 내 생각 한 번. 나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 네 마음 뭔지 나도 다 이해한다며 한 두 번 선심 쓰듯 건네는 같잖은 위로, 몇 번 다독여봤다고 금세 무관심 뒤에 오는 무책임함까지. 그 가식 어린 진심에조차 대답을 강요하는데 내가 어떻게 정상일 수 있겠어.
내 글을 읽었다고...... 그래. 그런데도 내가 잘 지내는 것 같다고....... 그래. 그래서 넌 도대체 내 무엇을 응원하겠다는 거야. 내가 어떻게 무엇을 버텨가면서 간신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넌 뭘 응원하고 있는 건데. 난 우리 사이에서까지 이런 틀에 박힌 뻔한 문장들에 찔렸던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나는 싫어. 무소식은 그냥 무소식일 뿐이야. 아니면 무관심일 수도 있겠다. 이 모든 말들이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명중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하겠어.
하지만 결국 걱정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뭐 그런 흔한 말로 대충 얼버무린 짧은 답장을 보내. 또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너는 친구가 이토록 걱정하는데 왜 이렇게 성의가 없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은 신경 안 써. 우린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넌 그대로인데, 네가 사랑하는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널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기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한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면서도 너무 사랑한다는 게 안 믿겨.
'미워하는 마음을 빼면 좋아하는 마음이 남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내가 한 때 열렬히 미워했던 그와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처음에는 무작정 사랑했고 내 목숨이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했다가 어느 날부터 죽이고 싶어 질 만큼 미워졌고 그냥 미워했다가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로 접어들기까지의 기나 긴 과정이 있었다. 농도 짙은 미움은 사랑이 있어야만 시작될 수 있었으나,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면 사랑하는 마음까지 온데간데없었다. 억울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난 나 자신을 미워하기까지 했고 결국엔 누군가와 나 둘 다를 공평하게 미워하게 됐었는데. 치열하게 미워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사랑이 남을 줄 알았는데,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낮아진 자존감 같은 것들만 남아있다는 게 너무도 아팠다. 실상은 이렇게 늘 머물러 있는 것들을 보기만 해도 됐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미워하느라 흘러 보낸 머무름이 아까웠다.
마음이라는 텃밭에 사람이라는 씨앗을 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물을 매일 주다가 미움이라는 약을 친다. 과하지 않아야만 사랑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미움이 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미워하는 일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어서 매번 모든 것들이 범벅된 밭을 뒤엎는 게 너무 버거웠다. 몇 번을 갈아엎고 뒤집고 파헤쳐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고,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쏟기에 나는 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임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사랑했던 얼굴은 곧 미워했던 얼굴이 되었고, 절실히 사랑한 만큼 미움의 강도 역시 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사랑하는 것을 멈춰보기도 했던 암울한 시절도 있었다. 사랑 없이는 무채색인 그날들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이고 더는 그 장 수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 그 말은 곧 누군가를 꾸준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는 안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뒤집으면 미움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미움을 뒤집으면 아무것도 없음을. 무언가를 미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임을. 그게 어렵다면 머물러있는 것들을 바라보기를.
이번 편은 특히나 더 아파하며 쓸 수밖에 없었다. 뭐 그리 지나버린 사랑이 많은지 끝이 보이지 않아서, 떠나보내기엔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어서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모두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 주기를. 모든 지나침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어서, 돌고 돌아 어느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