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써서 발행하기'에 처음으로 성공하다.

20250627

by 고요

이렇게 마냥 공기만을 낭비하며 살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켜고 <2025년 하반기 끝장나게 살기> 파일을 만들었다. 그 리스트 중 하나에 '매일 글 써서 발행하기'도 추가했다. 시트를 만든 지 5일째지만 아직 한 번도 '매일 글 써서 발행하기'의 체크박스에 체크를 하지 못했고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체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게으름에도 레벨이 있다면 최상위권에 들 나로서는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별 일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난한 날에는 '오늘은 눈을 떠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조금 걷고 책도 조금 읽다가 잠에 들었다. 끝.' 이렇게라도 써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미리 써 놓은 세이브 원고처럼 세이브 기억을 끄집어내 써도 된다. 미래의 닥쳐올 일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를 써도 되고, 그냥 아무 소설을 끄적여도 된다. 나만의 공간이니까. 우선은 글의 퀄리티나 진정성보다는 그저 '매일 쓰기'에 치중하는 것이다. 매일 쓰는 습관이 길러지면 더 좋은 글에 대한 안목과 코어도 길러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정말로 눈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떠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비가 와서 아주 조금 걷고 책도 읽다가 잠에 들 그런 평범한 날들 중 하루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이브 기억 중 하나에 대해 기록해보려 한다.


나는 결코 친구가 많다고 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아주 없는 편에 속한다. 한 서너 명 있나? 그중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와서 아직까지 친구라고 어디서도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며칠 전 바다에게 "뭐 해?"라고 카톡이 왔다. 나는 그 카톡을 보고도 "뭐 하긴 뭐 해. 그냥 누워있지"라고 혼자 대답하고 말아 버렸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엄청난 레벨의 게으름뱅이이다. 답장 그거 그냥 몇 글자 적어 보내면 될 것을, 귀찮아서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다 이틀이 지나버린 것이다. 미룬 숙제처럼 자꾸 떠오르고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한데, 그러면 그냥 답장을 하면 되는데 그게 또 쉽지 않다. 그렇게 온종일 바다를 생각하며 바다에게 답을 하지 않다가 겨우 답장을 했다. 그 마저도 "귀찮아서 답장이 늦었다."라고 얘기했다. 쓰다 보니 나 너무 쓰레기 같은데. 그래도 사과도 했고, 너라는 존재가 귀찮은 게 아니라 그냥 내 문제라고 얘기했다. 바다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카톡을 그만해 주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내가 왜 친구가 별로 없는지 단번에 이해가능 할 것이다. 사실 카톡을 아예 안 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바다랑 오래간만에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수다도 떨고 싶고 바다의 반려견 근황도 듣고 싶었는데 상대방에서 마무리 지어주는데 그걸 붙잡기엔 내가 너무 게을렀다. 그래도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인스타그램을 보다 유튜버 찰스엔터님의 카톡을 보게 되었다. 승헌쓰가 찰스에게 "머해용?"이라고 묻자 찰스는 카톡만 봐도 시끄러울 정도로 많은 말과 감정을 보내댔다. "뭐 하고 뭐 하고 지금 누워있는 중인데 나에게 뭐 하냐고 물어주는 사람은 승헌선배뿐이에요. 너무 고마워요." 대충 이런 뉘앙스의 대답과 함께 본인 얼굴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생각해 보니 나한테 뜬금없이 뭐 하냐고 묻는 애는 바다밖에 없었다. 근데 나는 내가 뭐하는지 왜 궁금하지? 이런 생각이나 해대며 귀찮아했다는 게 겸연쩍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다야ㅠㅠ 나 뭐하는지 궁금해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진짜ㅠㅠ 내 사랑하는 친구야ㅠㅠ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라고 캐릭터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글을 본 뒤로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나에게 그나마 서너 명의 친구라도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무거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무거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에 대한 관심? 혹은 터무니없는 무관심? 사랑 시간 추억 관심사 과거 현재 미래 그 모든 게 포함되어 있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무거움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고, 내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무튼 그들은 내가 그 무거움을 벗어던지기 위해 귀찮지만 결국 해내게 하는 존재이다. 몇 안 남은 내 친구들은 내 마음속의 짐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해 주기 때문이다. 본인을 무거워해도 괜찮다고, 몇 번이고 너그럽게 넘어가주는 그들 덕분에 나도 그 무게를 조금씩 덜고 굴리고 치우고 미루고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끝내 없애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또 무거운 짐을 던져주고, 나는 어떻게든 그걸 해결하려 한다. 언젠가는 해결이 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다려주지 않거나, 내가 끝끝내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그때는 또 그것에 대해 써야겠다. 우정은 못 지켜도 '매일 쓰기'는 이어져 나가야 하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다에 대해 한동안 무거워하다 카톡을 다시 했다. "바다야, 우리는 언제 볼까?" 바다는 역시나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조만간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이십 년 가까이 그래왔듯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깔깔거리고, 바다의 반려견 사진과 근황을 듣고, 다시금 잘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헤어질 것이다. 바다와 언젠가 탁 트인 바다를 보러 가도 좋을 것이다. 서로의 무거운 짐을 나눠 들고 선 그곳에 조금은 버리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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