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 끝에 마주한 것들.

by 고요

나는 나쁜 년이다. 첫 문장을 뭐라고 쓰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고른 문장은 이것이다. 나쁜 년.


아빠의 가족들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워한다. 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죽도록 미워하기도, 미치도록 각별하기도 한 사이. 그러면서도 누군가 한 명이 죽어야만 다 같이 볼 수 있는 그런 징그러운 관계. 내 기억 속 아빠의 가족들은 언제나 악당이거나 괴물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보니 그들도 별 수 없는 내 가족이었다. 그들과 함께 며칠을 온전히 울고 웃고 먹고 일하고 잠을 자며 조금은 덜 미워하기로 다짐했다. 가족이었고 현재도 변함없이 가족인 이들을 덜 미워하는 일은 사실 다짐까지도 필요 없었다. 내 삶의 반 이상을 미워했던 사람들을 덜어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내 할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으신 지 4년째로 병원에서 지내고 계셨다. 처음에는 웃기도 하고 알아도 보셨는데 해가 지날수록 걷지도, 씹지도, 그 누구를 알아보지도 못하셨다. 못한 건지 안 한 건지는 모르겠다. 못돼 처 먹은 나였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날 병원에 처넣은 자식들을 원망하며, 그리고 이렇게 되어버린 내 삶을 저주하며 스스로 그렇게 놓아버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순하고 선한 사람이었으니까. 병원에서는 컨테이너 박스에 칸막이 하나로 짧은 면회를 진행했고,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기였다. 내 아빠는 등신처럼 병원에서 할머니 덥다고 선풍기를 사 오라면 선풍기를, 뭐 또 어떤 물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또 뭔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종류별로 군말 없이 사갔고, 할머니가 씹는 걸 기억할 적에는 어떤 음식을 잘 드셨다고 하면 식욕이 왕성한 나도 질려버릴 만큼 그 음식만 사다 날랐다. 어떤 날은 연양갱, 또 어떤 날은 딸기, 아니면 장조림 반찬 같은 것들 말이다. 할머니 생신 때는 드시지도 못하는 케이크를 빵집에서 무조건 제일 큰 걸로 사들고 갔으며, 면회를 할 때마다 잘 부탁한다며 꼬깃한 노란 종이들을 선생님들께 쥐어드렸다. 역시나 못돼 처먹은 나는 할머니가 더운지 그 병원 직원들이 더운지 알게 뭐냐고 또 헛소리를 해댔고, 케이크나 돈을 드린다고 해서 할머니를 조금 더 잘 보살펴 줄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병원은 좋은 병원이 아니지 않냐고 불평했다. 아들도 못 알아보시는 상태였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가면 할머니 입장에서는 너무 무섭지 않을까? 라며 일 년에 몇 번 뵈러 가지도 않으면서 그것조차 꺼려했고, 본인 자식은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남의 집 셋째 넷째 결혼식에 사돈의 팔촌 장례식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아빠에게 입버릇처럼 다 돌려받지도 못할 거 뭐하러 그렇게 다니냐고 핀잔을 줬다. 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셔서 호흡기를 끼고 있을 때 나는 맛집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빨리 가서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줄어들고 있는 건 그것뿐이 아니었는데.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 할머니가 평생 일궈낸 것들을 내가 미워해서, 내 모든 작고 커다란 행동과 생각들이 모여 그렇게 되신 건 아닐까. 며칠 뒤면 다가올 할머니의 올해 생일을 축하받지 못하고 가신 게 내가 다 나쁜 년이라서 그런 거면 슬픔에 잠겨있는 내 아빠는 어쩌지. 올해도 제일 커다란 케이크를 사들고, 그걸 먹는지 버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또 잘 부탁드린다고 거듭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에 돈을 꽂고, 그걸 이제 다시는 못하는 게 다 나 때문일까 봐.


장례식장은 경주의 한 병원이었다. 주말이었고 차가 많이 막혔다. 가는 차 안에서, 휴게소에서, 화장실에서, 할머니 사진 앞에서 염치없이 눈물이 났다. 사진 속 할머니는 조금 웃고 있었고, 나와 끊임없이 눈을 맞추려고 하는 듯 보였다. 울음을 멈추고 나도 조금 웃으며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담은 눈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4시간이 넘는 길을 아무 주저도 없이 달려와준 이들과, 바쁜 일상을 쪼개고 모아 힘이 되어준 이들을 함께 담았다. 생각도 못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또 눈물이 났지만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일 수 있구나를 정말 오랜만에 느끼며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내가 무언 갈 채워도 되는지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부모를, 가족을 잃은 그 자리에서 내가 그래도 되는 걸까. 슬픔과 충만함을 동시에 느껴도 괜찮은 걸까.


내가 이름도 없던 어느 날, 할머니가 소중히 받아온 내 이름은 몇 번의 개명 유혹에도 아직까지 굳건히 잘 사용 중이다. 그 말은 곧 내 이름을 제일 먼저 알아준 사람이 할머니라는 게 된다. 나는 이제 와서 새삼 그런 것들이 마음이 저리다.


여전히 난 아빠의 가족들을 미워한다. 할머니를 문득 생각하고, 아빠를 자주 걱정한다. 내 삶은 이전과 다른 것이 없으나 무언가 커다란 것이 빠져나가고 또 채워진 느낌이다. 문득의 힘이 이렇게나 강한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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