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낯선 사람이랑 한 공간에 있다거나, 접촉하게 되는 상황이 저는 너무 불쾌해요. 숨이 막혀요. 그 사람이 제 산소를 뺏어가는 것도 아닌데 숨이 왜 안 쉬어질까요. 근데 솔직히 뺏어가는 건 맞다 그쵸. 정정할게요. 처음 보는 사람이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제가 마시는 상상을 하면 몸서리가 쳐져요. 으으으. 그리고 제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직업이 뭔지 혹시 아세요? 네 맞아요. 상담가예요. 꿈이 여느 아이들처럼 많은 편이었는데도 상담가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지금 저에게 있어 거의 악당 같은 존재셔요.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선생님을 무찌르고 싶은 심정이 가득해요. 악당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저를 상대해야 하는 선생님, 둘 다 유감이 아닐 수 없네요.
왜 상담가가 되고 싶지 않았냐고요? 선생님은 일하면서 사람에게 보람을 더 많이 느끼시나요, 아니면 환멸을 더 자주 느끼시나요. 저는 후자예요.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만을 만났던 것도 아닌데 늘 그들의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어요. 밑바닥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걸 숨기려고 하는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어요. 이렇게 쉽게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리는데 그걸 업으로 삼으라고요. 절대 못해요 저는.
근데 좀 신기하네요. 제가 처음 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어색해서거든요?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어색해서 굳이 먼저 말을 건네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처음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으면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으면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럼 '내가 왜 지금 내 산소를 뺏어간 이 사람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마셔가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지?' 란 생각에 이르게 되죠. 그런데 지금 제 모습은 좀 많이 낯서네요. 선생님의 직업과 여기 분위기가 절 이렇게 만드나 봐요. 처음으로 선생님의 직업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완전무장한 사람도 약간 맥을 못 추게 하시니까요. 자주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는 솔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아직 되고 싶다까지는 아니에요 절대. 근데 저 인센스 어디 거예요? 진짜 너무 좋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봐오셨겠지요. 저는 제가 너무 소중하고 애틋한데, 선생님은 그냥 많고 많은 내담자들 중 한 명이 된다는 게 조금 마음이 아파요. 그런 사람 좋은 웃음도 막 아무한테나 다 웃어주시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 선생님을 다시 경계하게 돼요. 하지만 조금만 경계를 느슨하게 할게요. 왜냐면 저는 선생님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요. 저랑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것도 다 선생님의 직업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그것도 좀 부럽네요.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요.
선생님은 어떤 걸 좋아하세요? 쉬는 날엔 보통 뭘 하며 지내세요? 여행을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영화? 독서나 글 쓰며 시간을 보내실 것 같기도 한데. 아, 제 얘기를 해보라고요. 선생님은 눈치가 없으신 거예요, 아니면 없는 척하시는 거예요? 방금 말했던 건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사실 제 얘기하고 싶었는데 말 꺼내기가 쑥스러워서 괜히 돌려 말해봤어요. 몰랐는데 저, 꽤나 제 얘기하는 걸 좋아하네요.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같이 멋진 직업을 원하지 않는 제가 간절히 바라는 직업이죠. 사실 둘 다 누군가의 마음을 돌본다는 본질은 같죠. 저는 글을 곧잘 쓰고는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작가였던 적이 종종 있었어요. 백일장 이런 데서 상이란 상은 제가 다 휩쓸었거든요. 진짜로요!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요. 그 뒤로 한동안 저는 다른 꿈들을 품고 살다가 또 한동안은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았어요. 뭐가 되고 싶은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다들 열심히 일을 하고 되고 싶은 걸 위해 노력하는데, 저 같은 배짱이 하나 있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막살다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 졌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니면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잊지 못할 여행을 하는 도중에 글을 썼어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띄엄띄엄 쓰다가 점점 좋은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예쁘게 피어있는 꽃을 보다가 또 번쩍, 그렇게 자주 글이 쓰고 싶어 졌어요. 물론 지금은 곧잘 쓰는 정도도 아니에요. 저는 엄청 게으르고 귀찮음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생각만 들고 흘려보낸 적도 많아요. 전에는 꿈도 내일도 없는 배짱이었지만 지금은 꿈은 있지만 미래는 없고 여전히 노력은 안 하는 배짱이랍니다. 혹시 제가 한심하실까요. 아주 깊은 어딘가에서라도 그런 마음이 드셨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 집 가는 버스에서 저는 글을 쓸 거예요. 분명히 오늘은 기록할만할 날이니까요. 뭔가 아주 근사한 글이 나올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보여드리진 않을 거예요. 제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생각은 너무 부끄러워요. 전에는 SNS에 가끔 짧은 글을 올리기도 했거든요? 근데 진짜 너무 창피했어요. 이런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제 이름이 맨 앞에 박혀있는 책을 펼치는 생각만 해도 가슴에서 생선이 팔딱거려요. 그 느낌 아시죠. 막 잡은 생선이 얼마나 요동치는지. 그래도 저는 꼭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 선생님과의 대화를 엮어서 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니다, 그럼 사람들이 제 밑바닥을 보게 될까요.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괜찮아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그리고 제 밑바닥은 꽤 깨끗해요. 방금 조금 역겨우셨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나요.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이 실례할 생각이에요. 선생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지금 당장 나가서 글을 쓰고 싶을 만큼요. 선생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말 고민 많이 하고 망설였는데 오길 잘했어요. 다음에 뵐게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이렇게 털어놓고 나면 그 대가로 선생님이 얼마를 받게 되는지 몰라요. 결제는 엄마나 아빠가 해주시기로 했거든요. 방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소리 지르면서 책이란 책은 다 찢으며 울 때 그렇게 하기로 두 분이서 결정하셨대요. 여기 팔에 상처 보이시죠. 제가 할퀴었어요. 그래도 물건 막 던지고 함부로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그때 갈기갈기 찢어버린 건 마침 버려야 할 책이었어요. 정말이에요.
이건 좀 주제넘은 말인데요, 미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릴게요. 제가 보기에 우리가 만나는 시간엔 주로 제가 80% 이상 혼자 떠들고 선생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가끔 고개를 끄덕이시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써서 저에게 집중해주시거나 몇 번 질문을 던지고 또 받아 적고, 또 가끔 좋은 말씀. 뭐 그게 다인 것 같거든요? 다시 한번 죄송해요. 제가 진짜 무례했죠. 저도 알아요. 근데 좀 더 들어주세요. 선생님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저에게 필요했던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서요. 내담자마다 분명 방법이 다르겠죠. 저에게는 이 방법을 택하신걸 테고요. 그래서 저는 더 슬퍼요. 왜 저에게는 선생님처럼 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조금 물어봐주고 들어주기만 해도 됐을 텐데. 온 얼굴의 근육을 쓸 필요까지도 없었어요. 몇 번의 끄덕임, 그거면 충분했다고요. 혹시 제가 돈을 안 줘서 그런 걸까요? 그런 거라면 더 서글퍼지는데요. 주변에서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제 팔에 이 생채기들은 생기지 않았을까요. 곧 버릴 예정이었던 그 책들도 아직 책꽂이에 잘 꽂혀있었을까요. 가끔 생각해요.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와 친한 다른 친구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커피와 회를 못 먹지만 매번 물어보는 그들의 무심함이, 가끔 알 수 없는 책임감에 보고 싶다고 연락했던 그 무책임함들이 결국 저를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게 아닐까 하는 거요.
물론 아니란 거 알아요. 저도 그들을 언제 벼랑 끝으로 몰지 모르고요. 이미 몇 번이나 몰아세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들의 아픔에 저 역시 응해주지 않았어요. 저는 먼저 연락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제 지독함에 지쳐 떠난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벌을 받는가 봐요. 그럼 그들도 다 벌을 받게 될까요. 그건 싫은데.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선생님, 이렇게 미워하면서 동시에 너무 사랑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제게서 미움이 사라지면 사랑도 없어질까 봐 두려워요. 우리의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될까 봐 무서워요. 전 어쩌면 좋을까요.
선생님.
며칠 전 밤에 바람이 갑자기 너무 많이 불었죠. 기상예보를 안 보는 저로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어제는 너무 많은 것들이 제 자리를 잃고 떨어지고 말았어요. 거센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조금씩 뜨더니 점점 더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고요, 잎사귀들과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어요. 그리고, 저희 집 바로 맞은편 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졌어요. 이것 역시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죠. 처음에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요.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차와 충돌하는 소리나, 무언가와 무언가가 접촉하는 소리와는 확연히 달라요. 좀 더 힘없고 아무런 의지가 없는 소리였어요. 그리고 잠시 후 동네가 떠나가라 목놓아 우는 사람의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어요. 선생님, 그 울음을 듣고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이어폰을 낀 거예요. 맥없이 탁, 하고 떨어지는 그 소리가 가끔 듣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렇게 슬프게 흐느껴 우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전 귀를 틀어막았어요. 일에 방해된다는 이유로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 사람이 왜 떨어졌는지는. 무게중심을 잃고 그랬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뒤에서 밀었을 수도, 본인의 의지로 그런 걸 지도요. 원인이 무엇이든 그 사람은 떨어졌고,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역시 전 몰라요. 그 사람이 제 자리를 잃고 떨어진 이유 중 제 무심함도 있었을까요. 누군가의 무심함들이 모여 그를 옥죄다 결국 스스로를 밀어버린 건 아닐까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전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게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귀에 이어폰을 쑤셔 넣은 제가, 너무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그것이 바로 저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높은 곳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몰려있는 사람들,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들었어요.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제 자신이 또 너무 별로예요. 별로여도 저는 이제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이의 생사의 경계를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제가 별로라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누구도 괜찮지 않았던 그 밤의 끝에 부디 그 사람이 행복에 도달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게 무심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요.
선생님, 누군가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졌을 때, 그 가련한 영혼과 부딪혀 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아파트 밑을 지나다니는 걸 두려워하는 제 모습이, 어느 아파트에서 어린아이가 학교폭력에 고통받다 떨어져 죽어버렸는데도 집값이 떨어질까 두려워 쉬쉬하는 그 상황이, 소중하다고 자부하는 이가 매일매일 고통 없이 죽는 법을 인터넷에 찾아보고 있는데도 관심조차 없는 아이러니함이 저는 너무 참기 힘들어요.
선생님.
이 징글징글한 세상이 참기 힘들어도 저는 살아야겠습니다.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참지 않아가면서 살아보겠습니다. 저는 바이킹도 무서워서 못 타거든요. 뛰어내리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죽음이래요. 고통 없이 죽는 법을 찾아본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오늘은 좀 횡설수설했네요. 이해해주세요. 뭐든 제 자리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건 횡설수설한 일이잖아요. 웅성웅성한 일이기도, 쉬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제 어떤 부분이 누군가를 밀지 않도록, 그리고 제가 누군가의 어떤 점에 밀려 스스로를 더는 던져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든 살아야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