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1
온몸으로 관람하는 매너
영화는 눈으로 보고, 소리는 귀로 듣는데 입은 할 게 없었다. 자꾸 심심하다고 졸라대는 입을 매몰차게 무시할 수 없던 마음 약한 나는 결국 영화를 볼 때 뭘 먹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영화관의 자극적인 음식들이 매우 맛있기도 했고, 그게 너무 무겁다면 음료나 초코바, 사탕 같은 간식거리라도 꼭 챙겨 먹어야 온몸이 각자의 업무에 열중해 영화를 최선을 다해 관람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도 내 입은 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는 영화관에서 뭘 먹는 사람을 혐오한다는 발언을 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팝콘의 와그작하는 소리와 그걸 집으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너무 방해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호한 친구는 만약 내가 팝콘을 먹는다면 끝과 끝자리에 각자 앉아서 보자고 선언했고 그 말은 나에게 너무나도 폭력적으로 들렸다. 그에게 몇 대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나는 약간 시무룩한 기분으로 영화를 관람했고 그때의 우리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영화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역시나 기억나지 않는다. 입이 지루해하니 괜스레 모든 게 지루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친구에게 전치 7시간의 상해를 입은 뒤, 영화는 거의 대부분 혼자 즐겼다. 처음에는 혼자 보는 행위가 뭔가 청승맞아 보이기도 하고, 사방에서 조여 오는 무리로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이 "저 사람 뭐야, 영화 혼자 보나 봐. 어머, 저 큰 팝콘도 혼자 먹네. 친구가 그렇게 없나?" 하며 흉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팝콘을 아예 못 먹거나(본인과 같은 경우로), 먹더라도 그걸 공유해야 하기에 오롯이 전부를 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우위에 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혼자 보는 게 얼마나 좋은데. 갑자기 슬퍼져서 눈물을 훔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끝나고 놀림을 받거나 울보 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한 부분에서 웃겨도 혼자 조용히 낄낄거려도 되고, 간혹 "방금 뭐였어?" 라며 물어오는 옆사람의 대화 공격을 당해 몰입이 깨지지 않아도 된다. 감정을 느끼는 순간도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순간도 오롯이 내 것이다. 오롯이.
그렇다면 이제 영화관 스낵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영화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서도 함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팝콘과 탄산을 기본적으로 먹는다. 제일 베스트는 약간 짭짤한 고소한 맛과 카라멜이 들어간 달콤한 맛의 팝콘을 반반으로 하고 콜라나 사이다 한 잔씩 들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 얼마를 추가하면 오징어도 먹을 수 있고 통통한 소시지가 통째로 들어있는 핫도그도 먹을 수 있고, 은근 든든한 나쵸도 먹을 수 있다. 맛밤이나 츄러스 떡볶이 어묵 고로케 김밥 등등 영화관 스낵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조리를 하다 보면 여기가 푸드코트인지 영화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냄새가 온몸에 흠뻑 밴다. 3년 여의 영화관 아르바이트 생의 시간을 지나면서 먹어보지 않은 스낵이 없었는데 그중 제일은 좋아하는 이들과 먹었던 모든 음식이다. 근무를 하다 30분의 휴게 시간이 나면 부랴부랴 휴게실에서 카드를 가져와 매점으로 달려가 일하는 내내 고민했던 스낵을 산다. 빨리, 그리고 맛있게 만들어달라고 동료 아르바이트생을 몇 번 독촉해 받아낸 뒤 다시 허겁지겁 달려가 각자가 사거나 싸 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으면 그것만큼 꿀맛인 게 없는 것이다. 거기다 오늘 힘들었던 일, 진짜 짜증 나게 했던 손님, 그보다 더 짜증 나게 했던 직원 얘기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우리의 스낵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1분 조리해야 할 음식을 5초라도 더 데워 식지 않게 만들어준다던지, 조금이라도 더 바삭한 팝콘을 한 알 한 알 담아주려 한다든지, 음료에 불필요한 거품이나 빈 공간이 남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아준다든지 하는 행위들 말이다.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요'라거나 '오늘은 이걸 먹어보는 게 어때요?'와 같은 애정 어린 추천들 역시 우리 사이에서는 필수 조건이었다. 아무리 일이 고되고 지쳐도 사랑이 왁자지껄 담긴 이들이 내주는 맛있는 스낵을 흡입하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다. 영화관 음식은 천하무적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영화를 보다 보면 '매너'에 대해 정말 많은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옆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어린 친구(심지어 볼륨을 줄이지도 않은 채! 옆에서 보호자는 정작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너무 신경이 쓰였다.), 사정없이 울리는 눈치 없이도 신나는 전화벨 소리, 몇 번이나 쳐다보고 참다 참다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도 또 의자를 쳐대는 뒷사람(그 사람은 "다리가 긴데 어떡해요ㅠㅠ"라고 했다.) 등. 사실 이런 케이스는 약과다. 영화관에서 일하다 보면 진짜 '매너'의 끝을 알게 된다. 본인이 지불하는 티켓 값으로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한 시간 시급도 줄 수 없는 금액이면서 자신이 모든 권리를 샀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터무니없는 요구, 고함, 욕설, 심지어 맥주 캔을 던지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가면 먹고 난 쓰레기를 의자 옆 구석구석 꼼꼼하게도 껴놓기도 하고, 땅콩 껍질, 껌이나 가래 뱉기, 처리한 아기 기저귀, 심지어 속옷까지! 두고 갈 수 있는 것들은 물론 두고 갈 수 없는 것들까지 두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대체 2시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도대체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 오죽했으면 같이 일했던 착하디 착한 언니가 손님에게 '손놈'이라고 불렀을까. 그런 매너를 상실한 사람들에게는 발음을 오묘하게 뭉그러뜨려서 "네, 손놈."이라고 대답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고 알려줬다. 물론 영화관에서 영화라는 전체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매너도 아주 중요하다. 모처럼 기분전환을 위해 영화관을 들렀는데 하필이면 싹수없는 직원을 마주쳤다거나, 영사 사고나 났다던가, 스낵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던가, 영화관이 너무 더럽다던가 하는 등의 사건을 겪으면 불쾌할 수밖에 없다. 매너와 비매너가 마치 창과 방패처럼 팽팽한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온갖 매너를 지키고 훼손당하고 겪어대고 있다. 사실 이건 내가 특별히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지 어디든지 다 비슷할게 행해지고 있지 않은가. 부디 오래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