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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희 Feb 21. 2022

다시, 만나다.

보고 싶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로 지난 열흘간 병동이 비상이었고, 그로 인해 모든 프로그램은 중단되었다.

당분간 병동 출입이 제한되어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당황스러웠지만 가장 힘든 건 병동 치료진과 환자들이었다. 분명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이도 저도 못하고 병동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차트로 병동 상황, 환자들의 간호기록 노트를 보며 우리 병동이 괜찮아야 할 텐데, 혹은 환자분들이 안정적이어야 간호사들이 좀 덜 힘들 텐데와 같은 걱정들이 머릿속에 난무했다.


 매일 아침 병동에 올라가서 아침 체조를 하고, 인사를 하며 환자들을 살피고 프로그램을 하고, 교육을 하고 했던 당연한 일상이 갑자기 중지되니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병동은 잠시 멈춤이지만 다른 병동은 이상 없이 여느 때와 같았다. 다만 내가 담당하고 있는 병동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담당자로서 무력하게 다가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사회복지사가 할 수 있는 일과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의 일차적인 목적은 증상 완화와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약물치료가 우선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치료진이 아니라 진료지원진이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무력하게 느껴지는 말 중 하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담당 주치의에게 보고해요."라는 말이다.


 물론 일의 경계는 중요하다. 의사,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회복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은 너무나 무력하고, 오히려 아무 일도 시도해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무료하게만 느껴진다.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걱정은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1) 매일 환자들이 프로그램이 중단된 무료한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숨은 그림 찾기, 퀴즈, 점선 잇기, 틀린 그림 찾기 등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지를 만들었다.

2) 책자 반입이 어려워 알코올 의존 증후군 환자들을 위한 책자를 복사해서 간이 책자를 만들었다.

3) 일상생활유지를 위한 생활습관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병동에 있는 치료진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병동 상황을 살폈다.


 주말이 지나 다시 병동 출입이 가능해졌다. 참 다행이었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출근길이, 피곤하다고 푸념하며 올랐던 병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설레기까지 했다.


병동에 가서 오랜만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방송했다.


"아아, 너무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아침체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마스크 착용하고 체조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하니 여러 목소리가 들린다.

"야 오랜만에 체조하자. 다들 나와!"

체조하자며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깨우기도 하며 서로를 독려하는 모습이 예뻤다.

 

체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프로그램 공지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 다들 반가웠다. 지난 열흘간 다들 잘 지냈냐며, 모두 고생했다며 나누는 안부가 소중했고 보고 싶었다는 말이 감사했다.


결핍은 소중한 것을 일깨워 준다.

지난 열흘간 뜻하지 않은 공백은 오히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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