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증명
은퇴 후의 일상은 가끔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그때 좀 더 악착같이 살 걸 그랬나?', '나도 남들처럼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익을 좇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쯤 더 넉넉하고 편안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높은 담 너머의 세상으로 밀어두었다. 셈을 하고, 이윤을 남기고, 겉으로 보이는 성과를 쌓아 올리는 일은 왠지 내 옷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 대신 나는 묵묵히 재료를 다듬어 요리를 하거나, 책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문장들을 줍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그 댓가로 지금 나의 주머니는 조금 가벼울지 모른다. 때로는 그 가벼움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는 바보였을까?"라는 자조 섞인 물음을 던지게도 한다. 하지만 후회라는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다시 펜을 잡고 있는 '나'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나를 대우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절박함.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화려한 꽃이나 무성한 잎사귀처럼 눈에 보이는 성취는 없어도, 나는 땅속 깊은 곳에서 흙을 움켜쥐고 버텨온 뿌리처럼 살았다. 남들이 보기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삶의 향기를 길어 올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처럼 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뿌리가 흙을 움켜쥐듯 가슴으로 사는 것은 고단하다.
꽃향기를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줄기를 꺾어 수액을 내어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가슴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현재를 태우는 일이며,
골수를 나눈다는 것은 나의 영원을 쪼개어 주는 일이다.
그대,
지금 그토록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는가.
그래, 나는 치열하게 사랑했다. 돈이 아닌 사람을,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그리고 순간의 이익이 아닌 내 마음속의 정원을 사랑했다. 비록 넉넉한 노후 자금은 마련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내 영혼을 녹슬지 않도록 붙잡고 살았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좇는 것이 바보라면, 나는 기꺼이 행복한 바보로 남으려 한다. 잎사귀로 흔들리기보다 뿌리로 버티며 살아온 내 삶이, 이 시 한 편에 담기는 작은 기쁨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