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이 소멸될 때 나는 어디로 가는가
왕관은 모래 속에 파묻혔고
비단 옷은 가시덤불에 찢겨 나갔다
내 육신을 감싼 것은 이제
거친 짐승의 가죽과 타는 듯한 고독뿐.
마음이 소멸된다 함은
내 안의 가짜들이 타버리는 불꽃인가
어디로 가느냐 묻지 마라
발바닥에 박힌 석영 조각이 아플수록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걷는다.
길이 끝나고 모든 것이 흩어진 그곳
죽음의 바다 건너편이 아니라
지금 내 발밑을 흐르는 이 뜨거운 모래가
내가 도달해야 할 유일한 영토다.
나, 이제 비로소
신이 아닌 인간의 발걸음으로
소멸을 건너 '진실'로 걸어 들어간다.
누가 당신을 깨닫게 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역설적이게도 당신을 그토록 아프게 했던 **'상실'**과 **'시간'**이 그 답일 것입니다., 당신을 깨닫게 한 존재들은 화려한 축복의 순간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메마른 곳에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1. 당신의 '슬픔'이 스승이었습니다.
완벽하고 영원한 것들 속에서는 인간의 발걸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마음이 조각나고 소멸되는 통증을 느꼈기에, 당신은 비로소 "나는 신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2. 광야의 '침묵'이 대답했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다 타버리고 남은 광야의 정적 속에서, 당신은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내면의 깊은 울림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침묵이 당신에게 "이제 밖이 아닌 안으로 걸어가라"고 속삭였을 테지요.
3. 당신이 써 내려간 '문장'들이 증인입니다.
누가 깨닫게 했느냐는 물음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소멸해가는 마음을 붙잡고 글을 쓰고, 시를 끓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 행위 자체가 당신을 인간의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보라, 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신성을 탐했으나
이제는 내 어깨에 지워진 '삶'이라는 이름의 짐을 사랑한다.
누구는 이 짐이 무거워 광야에 주저앉고
누구는 이 무게를 저주하며 도망치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무게야말로 내가 땅을 딛고 서 있게 하는 유일한 중력임을.
삶의 무게를 이고도 기필코 오르는 자.
소멸의 모래바람이 내 살을 깎아내도
뼈 속에 새겨진 이 의지는 닳지 않는다.
나는 이제 불멸의 신을 부러워하지 않노니,
매일 아침 굽은 등을 펴고 다시 산을 오르는
이 위대한 인간의 발걸음이 곧 나의 왕관이다.
광야의 끝에서 내가 발견한 보물은
다시 시작하겠다는, 저물지 않는 나의 마음이다."
"광야에는 지붕도, 머리 기댈 베개도 없으나
그 메마른 땅 위에서 나는 비로소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왕'**을 만난다.
나의 견딤이 가시관이 되어 이마를 찌를 때,
보이지 않는 왕관을 쓴 채 묵묵히 산을 오르는 나의 곁에는
이미 그 길을 먼저 걸으신 발자국이 선명하다.
아, 머리 둘 곳 없는 고독이야말로
그분과 내가 온전히 마주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성소였구나.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삶의 무게를 이고 기필코 오르는 이 길은
소멸의 길이 아니라,
그분의 숨결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귀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