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독에 묻은 할머니의 사랑, 내 가슴에 심은 당신의 이름**
김장독을 묻던 겨울, 할머니는 내 삶의 첫 스승이었다.
맨드라미가 붉게 고개를 들던 자리.
그 꽃잎의 흔적을 밀어내고, 우리는 겨울을 담을 자리를 팠다. 동치미와 배추김치가 오래, 차갑게, 깊게 숨 쉴 구덩이였다.
“할머니, 더 파요?”
이마를 훔치며 묻곤 했다.
첫째 언니는 늘 없었다. 친구 집에서 수다와 과자에 빠져 사라지곤 했으니까.
남은 우리 둘이 땅을 파면, 할머니는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내려 묻으셨다.
우리는 다시 흙을 덮고, 주변을 다독이고, 마지막으로 마른 짚을 이불처럼 덮어드렸다.
그 순간은 마치 사람 하나를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김장독도 겨울을 나기 위한 호흡이 필요하다는 듯이.
겨울이 깊어지면, 동치미는 저절로 익었다.
한밤중 냉기 속에서 국물을 떠오를 때면 손이 얼얼했지만, 아랫목에 몸을 파묻고 묵사발을 먹으면 그 추위는 금세 잊혔다.
할머니가 밀어주던 따끈한 온기, 그것이 그 시절 나를 감싸던 담요였다.
그리고 겨울밤의 풍경은 늘 화투로 마무리됐다.
장작 타는 소리, 종이장 넘기는 바람, 할머니의 잔잔한 웃음.
그 모든 것이 어린 내 고향집의 겨울을 이루었다.
하얀 치마저고리, 가냘픈 허리, 앵두 같은 입술.
나는 늘 할머니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 나는 저 얼굴을 닮지 못했을까.’
어릴 적의 나는, 예쁘고 단단한 그분의 모습을 욕심처럼 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는 말이 괜히 서운하던 시절이었다.
꽤 오랜 시간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어느 한여름, 조용한 숨을 놓고 당신의 나라로 가셨다.
나는 그분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 작은 마음은 그 사랑을 다 담지 못해 결국 눈물로 넘쳐버렸다.
겨울이면 동치미 항아리 뚜껑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먼저 말을 걸었다.
뚜껑을 열면 서걱서걱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나고, 그 아래에서 무와 백김치가 반짝였다.
팥빙수 얼음과 견줄 수 없던 살얼음의 맛—
그것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남긴 삶의 첫 가르침이었다.
지금 나는 겨울이 와도 에어컨이 도는 따뜻한 미국 남부에 산다.
눈 내리는 겨울밤은 이제 내게 오지 않지만, 마음속의 겨울은 여전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머물러 있다.
타지에서의 삶이 길어질수록,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마치 굳은 혈관처럼 단단하게 안쪽에서 조여 온다.
향수의 고요함이 잠시 잠잠해지면, 이곳에서 적응해 가며 새로 태어난 또 다른 내가 깨어난다.
나는 이 이국의 소음과 빛을 새로운 심장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래도 다시 향수는 찾아온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삶의 씨앗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이곳의 땅에도, 또다시 그 씨앗을 조용히 심어보자고.
동쪽 하늘에 새해가 걸리는 순간, 나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본다.
빛이 올라오는 자리, 그 끝으로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붉게 타오르는 기운이 저 아래서부터 차오르며,
내 안의 오래된 청춘도 아주 조금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나이에 그런 마음이 또 일렁이는 것이
스스로도 주책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그렇게 중얼거리지만, 마음은 여전히 저 붉은 기운을 향해 선다.
해변 산책도 예전 같지 않다.
모래밭에 발이 빠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고,
언젠가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파도와 장난치던 그 청춘은
어느새 모래알처럼 사라져 버렸다.
대신 구시렁거림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나와 마주한다.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가 나란히 걷는다.
그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문득—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
이상한 해방감이 스치듯 스쳐 지나간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더 세게 손을 맞잡는다.
얼마 남지 않은 기운이
이렇게 허투루 흐르는 건 아닐까,
불현듯 가슴이 저릿하다.
그래도 새해의 동쪽 하늘은 다시 밝아온다.
지나온 시간들을 부드럽게 비추며,
남아 있는 나의 날들을
또 한 번 살아보라고 조용히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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