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밀도

시간을 건너온 나무

by 고요정

시간 여행자

우리는 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도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나무가 되어가는

시간의 여행자들이다.

나도 열매를 맺고

너도 열매를 맺어

우리의 결실이 이 땅을 비옥하게 할

그윽한 향기가 되기를 꿈꾸며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내가 너보다 조금 더 먼저 시간을 건너온 이유는

너를 통해 비로소 사랑을 배우고

그 마음을 가만히 숙성시켜

마침내 '순수'라는 보석을 캐내기 위함이었다.

사랑을 가르쳐준 네가 있어

행복의 깊이에는 바닥이 없음을 알았고

삶이 더해갈수록 나의 숲은 넓어지고

그 안의 밀도는 더욱 단단해져 갔다.

나의 아름다운 사람아,

먼 길을 돌아 내게로 와주어 고맙다.



[작가의 말] 체념과 받아들임 사이, 그 아득한 깊이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시간이라는 긴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입니다. 그 길 위에서 나와 다른 결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나, 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젊은 날의 사랑이 서로를 탐색하고 불꽃을 피우는 일이었다면, 세월이 묵혀준 지금의 사랑은 '밀도(密度)'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삶이 더해갈수록 관계의 부피는 팽창하고, 그 안은 더욱 촘촘해집니다.

흔히 나이가 들면 무뎌지거나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체념'**과 **'받아들임'**을 분명히 구분하고 싶습니다.

체념이 파도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버리는 무력함이라면, 받아들임은 바다의 깊이를 알면서도 그 푸른 무게를 기꺼이 품어 안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지나온 시간의 상처까지도 내 안의 토양으로 삼아 묵묵히 숙성시키는 과정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조금 더 일찍 시간을 건너온 것은, 이 숙성된 사랑의 깊이를 먼저 깨닫고 당신을 온전히 품어내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심해(深海)처럼 아득하여 바닥을 알 수 없는 그 깊은 이해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하나가 되어갑니다.

나의 아름다운 시간 여행자에게,

포기가 아닌 거대한 받아들임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로 와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