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그네여, 이 소란한 광장에서 부디 평안하기를

삶이라는 광야, 살았다, 더 잘 살고 싶었다

by 고요정

'인생'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기묘합니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그 무게가 혀끝에 묵직하게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김에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결국은 '살아냄'으로써 생을 증명합니다.

오늘, 문득 적어 내려간 나의 시(詩) 한 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짧은 문장들 사이사이에 내가 걸어온 길과, 스쳐 간 바람과, 마주쳤던 눈빛들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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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삶이다

살아있어서

살았다

살아서

더 잘 살고 싶어졌다.

살아 있어서

돌아가고 싶은 무덤이 있다.

나의 나그네여,

그대들!

삶이라는 광장에서

나의 나그네이던

그대들이여!

[고요정의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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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붙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끈질긴 일입니다. 그저 '살아졌다'는 수동적인 상태를 지나고 나면, 인간은 누구나 욕심을 냅니다.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때로는 욕망이라 불리고, 때로는 희망이라 불립니다. 그 간절함 덕분에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밥상을 차리고, 조금 더 따뜻한 이불을 덮으려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를 쓰다 보니 깨닫습니다. 삶의 가장 깊은 아이러니는,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 숨 쉬는 바로 그 순간에 '돌아가고 싶은 무덤'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무덤은 차가운 죽음이나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뱃속처럼, 혹은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눕는 내 집의 침대처럼, 영혼이 쉴 수 있는 가장 평온한 안식처를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식을 그리워하면서도, 오늘이라는 뜨거운 광장으로 나옵니다.

나의 나그네여.

이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삶이라는 광장'에서 옷깃을 스친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잠시 이 광장에 머물다 가는 여행자들입니다. 잠시 눈을 맞추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치며 웃거나 울었던 그대들 모두가 나의 풍경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각자의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전까지는, 이 낯설고도 아름다운 광장에서 기꺼이 서로의 나그네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살아있어서 고단하지만, 살아있어서 만날 수 있었던 당신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부디, 더 잘 살아가시기를. 그리고 언젠가 돌아갈 그곳을 마음에 품고, 오늘의 소풍을 충분히 즐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