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가을, 그 낯설고도 찬란한 기록
[폴리버의 단풍, 그 위에 쓴 시]
지성미를 쌓아가려 치열하게 몸부림치던 나의 청춘. 그 뜨거웠던 시절의 기억은 이곳, 보스턴과 폴리버(Fall River)의 땅 위에서 되살아난다. 낯선 땅을 맨발로 뛰는 듯한 막막함, 발바닥에 전해지는 그 생생한 아픔조차 내가 지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폴리버의 가을은 나를 순식간에 청춘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붉게 타오르는 숲, 강물 위로 쏟아지는 낙엽들. 나는 그 낙엽 하나하나에 마음속 깊은 곳의 시(詩)를 새겨 넣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내가 쓴 시어(詩語)들이 허공에서 춤사위를 펼쳤다. 그 붉은 춤을 보고 있노라면, 이방인의 외로움은 어느새 예술적인 고독으로 승화되곤 했다.
[하버드의 공기를 품은 강의실]
남편의 배려로 등록하게 된 커뮤니티 칼리지의 스피치(Speech Skills) 수업. 그곳은 내게 단순한 배움의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강단에 선 그녀가 떠오른다. 하버드에서도 강의를 한다는 그녀에게서는, 지식인 특유의 기품과 단단한 자존감이 뿜어져 나왔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좌중의 모든 주의를 단숨에 자신에게로 모으는 흡입력.
그녀의 수업은 마치 잘 짜인 연극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그녀의 손짓이었다. 설명 도중 무심한 듯 머그컵을 들어 올리고, 다시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시늉을 하는 그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그렇게 세련될 수 없었다. 머그컵 하나조차 그녀의 손에서는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동화 속에서 꾼 꿈]
황홀했다. 그녀의 세련된 제스처와 유려한 말하기를 보며, 비어있던 내 안의 갈증이 채워지는 듯한 충만함을 느꼈다. 그해 가을, 남편과 함께 보낸 폴리버의 시간은 한 편의 동화였다. 이국의 붉은 색채와 깊은 문화의 뿌리를 마주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꿈을 꾸었다.
'어쩌면 나도, 이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의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두려움 섞인 질문이자, 동시에 가슴 설레는 기대였다.
[서류상의 가족, 낯선 풍경]
초대장에는 '시아버지의 결혼기념일 파티'라고 적혀 있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내 입술 끝에서 맴도는 이 호칭들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마음으로는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하지만 서류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기준에서 우리는 분명한 '가족'이었다.
파티장에 들어선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온통 금발의 머리카락, 온통 하얀 피부.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사랑하고, 스테이크를 밥 먹듯이 즐기는 사람들.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가. 식습관부터 생김새까지, 내가 소화해 내기엔 너무나 거대한 '다른 세상'으로 무작정 끌려온 기분이었다.
[동작 그만, 얼어붙은 이방인]
나는 드레스를 입고, 남편이 꽉 잡아준 손에 의지해 파티장으로 들어섰다. '나도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여자처럼.' 애써 미소를 지으며 가면을 썼다.
하지만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 흥에 겨운 시삼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가면은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본질은 억눌렸고, 의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마네킹이 되어 있었다.
[마이클 삼촌의 타월 춤, 그리고 추위]
그때 마이클 삼촌이 커다란 타월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타월 양끝을 잡고 내 등 뒤로 돌리더니, 마치 목욕탕에서 등을 밀 듯 엉덩이를 좌우로 흔드는 시범을 보였다.
"자, 이렇게 타월로 등을 닦듯이 흔들어 봐!"
엉겁결에 삼촌을 따라 엉덩이를 스윙했다. 그것은 내가 배운 춤의 기본 동작이 되었다. 한참을 그들 틈에 섞여 몸을 흔들었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뒤 고마움보다는 묘한 감정이 앞섰다. 우쭐해 보이고 싶었던 동양 여자에게 그 자리는 끝내 어색했고, 무엇보다 '추웠다'.
우리는 가족이라기엔 너무 달랐다. 마치 산과 바다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듯,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그 화려한 조명 아래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향의 아궁이를 닮은 온기]
보스턴의 겨울은 하얗다 못해 시리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우리는 장작을 쟁여두며 '동장군'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밤새 타오른 장작이 사그라들고, 다음 날 아침 재를 치울 때면 나는 묘한 향수를 느꼈다. 그 온기, 그 냄새. 그것은 먼 옛날 내 고향 집 부엌, 어머니가 불을 지피던 아궁이의 따뜻함을 닮아 있었다. 나와 둘째 아이는 그 벽난로의 충실한 파수꾼이었다.
[천장이 뚫린 날, 그리고 "Fuc..."]
한겨울 내내 우리를 데워주던 벽난로 굴뚝에 틈이 생겼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연기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고 시아버지의 신고로 소방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2층 안방 천장을 뚫어버렸다. 뻥 뚫린 천장으로 보스턴의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엄마'였다.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우고, 뭣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다시 방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그때 스텝 아들의 입에서 짧고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Fuc…!"
그것은 비명에 가까운 제지였다. 사람 목숨이 최우선인 미국 사람들의 안전제일주의와, 불길 앞에서도 추억 하나 더 건지려 몸을 던지는 한국 엄마의 본능. 그 두 세계가 화재 현장에서 뜨겁게 충돌한 순간이었다.
[꿈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
그해 겨울을 끝으로 우리 집 벽난로의 시계는 멈추었다. 하지만 타닥타닥 타던 소리와 나무 냄새는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 현실은 춥다. 하지만 우리는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그 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꿈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 쉴 수 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공기를 멈춰 세운 아이의 노래]
막내아들의 초등학교 졸업 시즌, 나는 '백인 엄마들의 극성'이라는 새로운 벽을 마주했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척 포장되어 있었지만, 물밑에서는 그 누구보다 치밀한 경쟁. 내 아이들이 '아이비리그'라는 바벨탑 아래서 뒤처진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졸업 축하 공연 아리아 오디션에서 당당히 뽑힌 것은 내 막내아들이었다. 무대 위 작은 아이의 입에서 '천상의 아리아'가 울려 퍼진 순간, 소란스럽던 강당은 마법처럼 침묵에 잠겼다. 아이의 노래는 수많은 엄마들의 욕망과 극성을 단숨에 잠재워버렸다. 눈이 시렸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이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명이었다.
[바이올린을 잃어버린 딸, 채찍 대신 떠난 여행]
막내의 노래가 환희였다면, 둘째 딸아이의 침묵은 아픔이었다. 버지니아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감성을 뽐내던 아이는, 운동만이 전부인 보스턴의 학교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낯선 백인들 틈에서 아이는 투명 인간이 되어갔고, 결국 닫힌 방문 뒤로 숨어버렸다.
학교 시험마저 치르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을 때, 남편은 다그침 대신 '마음의 휴가'를 선택했다. 일주일간의 디즈니랜드 여행. 아이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그간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토해냈다.
[사랑은 솜사탕이 아니라 지팡이]
돌아온 남편은 학교를 찾아가 아이를 챙기지 못한 교장에게 엄중히 항의했고, 딸아이는 다시 일어서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이란 달콤한 솜사탕이 아니라, 아이가 넘어졌을 때 묵묵히 잡아주는 손이자 지팡이라는 것을. 꽃이 아파서 피어나지 못할 때, 억지로 꽃잎을 여는 게 아니라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고 기다려 주는 것임을.
이제 와 돌아보니, 보스턴에서의 그 시절은 내 인생의 가장 거친 격동기였다.
한창 예민하게 자라는 아이 셋. 그 커다란 짐을 기꺼이 떠안고 가는 남편을 볼 때마다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재혼 가정이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늘 죄인처럼 조심스러웠다. 시댁 식구들이 아무리 편안하게 대해 주어도, 나는 자격지심에 갇혀 눈치를 보았다. 내가 주춤거리는 사이 '스스로' 자라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새로운 가정을 짓는다는 것. 그것은 마치 바닷가에 집을 짓는 일과 같았다.
이것이 파도 한 번에 쓸려나갈 '모래성'은 아닐까,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쓸려가지 않았다. 밀리고 밀려 닿은 곳은 위태로운 모래사장이 아니라, 단단한 '흙'이었다. 파도가 다져놓은 그 땅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뿌리를 내렸다.
그 춥고도 아름다웠던 보스턴의 가을을 지나, 나는 이제야 편안하게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