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 같은 시누이의 집에서 나는 '다름'을 배웠다
**We are the World**
"우리는 하나."
월드컵 때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외치던 그 구호를 기억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산이 바다가 될 수 없듯,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해도, 사람도 민족도 저마다의 고유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나는 불이 난 우리 집을 뒤로하고 찾아간 시누이의 집에서 그 명백한 진리를 뼈저리게 배웠다.
나의 시누이는 9월부터 산타클로스가 된다. 보스턴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녀의 차 뒷좌석엔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테트리스 블록처럼 쌓인다. 아직 반팔을 입는 계절에 캐럴을 준비하는 여자. 그녀의 인생은 늘 꽉 차 있다. 대가족, 수많은 친지, 동창, 동료들... 태어나 한 번도 보스턴을 떠난 적 없는 그녀의 삶에는 나와 남편에게는 없는 굵직한 '뿌리'들이 인생 구석구석 박혀 있었다.
반면, 나의 세상은 바람 부는 대로 굴러다니는 마른 덤불 같았다. 어려서부터 잦은 이사를 다녔고, 세 아이를 키우며 그나마 있던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몇 안 되는 친구조차 뉴질랜드로 떠났고, 나는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으로 왔다. 남편 또한 평생을 여행하듯 대륙을 떠돌며 일했으니, 우리는 고향도 친구도 희미해진, 서로의 체온에만 의지하는 외로운 섬이었다.
어느 날, 화마(火魔)가 우리 집을 덮쳤다.
그을린 집을 뒤로하고 옷가지 몇 개만 챙겨 시누이의 집으로 피신했던 날, 나는 기묘한 낯섦을 마주했다. 보스턴의 겨울은 매서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집 벽난로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장작 맛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머, 그걸 왜 피워? 집 지저분해지게."
그녀의 집은 마치 잡지에서 오려낸 '모델하우스' 같았다. 식탁 위엔 호텔 연회장 같은 장식들이 먼지 하나 없이 놓여 있었고, 한겨울 야외 수영장은 발리 리조트처럼 투명하고 완벽하게 깨끗했다. 그 완벽한 정적. 생활의 흠집 하나 없는 그 집에서 나는 묘한 추위를 느꼈다.
가장 부러우면서도 낯설었던 건 그녀의 부엌이었다.
내 부엌은 늘 지지고 볶는 냄새, 된장 뚝배기가 끓어 넘친 자국, 삶의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엌은 '불 냄새'를 모르는 처녀지 같았다. 요리라기보다는 '전시'에 가까운 공간.
그녀의 하루는 부엌이 아니라 차 시동을 거는 것으로 시작됐다. 은퇴를 한 지금도 그녀는 눈만 뜨면 습관처럼 차를 몬다. 집에서 내리는 커피 향 대신, 던킨 도너츠의 플라스틱 컵을 손에 쥐어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여자. 줄 서서 커피를 받아 드는 그 짧은 순간조차 그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의식처럼 보였다.
나는 던킨 커피를 홀짝이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에게 집은 '불을 피워 밥을 짓는 곳'이고, 그녀에게 집은 '완벽하게 관리된 갤러리'구나. 나에게 풍요는 '가족과 나눠 먹는 찌개'였는데, 그녀에게 풍요는 '9월부터 쌓아둔 선물 상자'였구나.
차창 밖으로 낯선 풍경이 흘러갔다. 평생을 한 곳에 뿌리박고 산 여자의 여유로운 핸들링과, 평생을 떠돌며 살아온 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 견고한 뿌리가. 흐트러짐 없는 모델하우스 같은 삶이. 나도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저렇게 사람들에 둘러싸여 웃고 울고 했을까?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나는 왠지 내 손끝에서 나는 마늘 냄새가 싫지 않았다.
물은 물대로 흐르고, 산은 산대로 솟아있다.
서로 섞일 수는 없어도, 이렇게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달릴 수는 있는 법이다.
던킨 커피의 달달함이 혀끝에 닿았다.
다르니까, 참 재미있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