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맞은 생을 버티게 했던, 웅크린 꿈들에 대하여
[에세이: 서랍을 열며]
가끔 마음의 서랍을 엽니다. 그곳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감정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들도, 그 시절엔 왜 그리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왔는지요.
사람들 틈에 섞이는 것이 죽기보다 무서웠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비집고 들어오는 세상의 소음이 버거워,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의 이름 없는 풀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지랄 같다'는 거친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던 내 인생. 그 거친 파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거짓말 같은 상상 속에 숨어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꺼내 본 이 글은 그 시절,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숨어들었던 작은 숲에 대한 기록입니다.
살았다
아니, 살아 냈다.
너무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감당하기 힘들어 귀를 닫아버린 날들.
사람과 사람이 섞이는 그 온기조차
내게는 데일 듯 뜨거운 공포여서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어디라도 좋으니 철저히 혼자가 되기를.
홀로 핀 민들레라도 좋고
쌉싸름한 쑥이어도 좋고
고개 숙인 할미꽃이라도 상관없었다.
될 수만 있다면, 그래 될 수만 있다면
깊은 숲 그늘에 숨어 핀 은방울꽃이 되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숨만 쉬고 싶었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보는 상상.
지긋지긋하고 지랄 맞은 이 생의 굴레를
잠시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가련한 거짓말.
거지 같은 세상살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 내뱉던
나약한 주문들.
그것은
도망치고 싶었던 내 영혼의
그저 꿈이지,
그저 서글픈 궁시렁이지.
다시 읽어보니 참 아픕니다. "그냥 꿈이지"라고 체념하듯 내뱉는 말끝에 묻어나는 물기가 느껴져서요.
하지만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지랄 같은' 시간들을 통과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그때 나는 민들레가 되지 못했고, 은방울꽃이 되어 숲으로 숨지도 못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처절했던 '궁시렁거림'이 나를 숨 쉬게 했던 것 같습니다.
상상 속에서나마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현실을 유예시켰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고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서랍 속 묵은 감정들을 꺼내어 햇볕에 널어봅니다.
시큼한 묵은내 속에, 치열하게 버텨낸 삶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