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사이에서
삶이 영화보다 선명이 그려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보고 듣고 감각하고 내음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은 꿈에서라도 다시 창조된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온전한 감각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싶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건 죽음과 관련이 있다.
지병으로 서서히 맞이하는 할머니의 죽음도 아닌,
사고가 난 예기치 않은 현장에서의 죽음도 아닌,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목숨줄을 내놓았던 현장에서의 죽음.
차마 볼 수 없어 목격하지 않은 그날의 사건은 어떠한 감각으로 저장되어 있다.
아스라이 한 중년의 사내가 회색 빛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나는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한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애처롭고 느릿하면서도 반복되는 곡조의 노랫소리와 함께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습한 공기의 내음이 나던 한 여름날의 밤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그런 날에 대한 감각.
춤을 추고 있던 연습실로 한 선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녀는 외쳤다.
“사람이 떨어졌어요!”
선배는 아래 층의 음악교수님이 연습실로 들어와 틀어놓았던 음악을 들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 곡을 참 좋아한다며,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단다.
사이.
교수님은 연습실 안쪽 열린 창가로 다가갔고 선배가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순간에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떨리는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몇몇의 우리는 서로의 허황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몇 명은 창이 난 연습실로 달려갔고 차마 나는 그 연습실로 갈 수가 없었다.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모습을 차마 살아있는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무서웠다.
겁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사건 현장의 연습실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소스라치게 무서워졌다.
하늘도 그것을 알았던 것인지,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치던 밤이었다. 빗소리의 타다닥 소리가 더해졌다.
스무 살 어떠한 한 시절은 그때의 눅진한 밤의 어둠이 잠식시켰다.
그 사건의 음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에 삽입된 곡으로 브라질 음유 시인 카에타노 벨로소의 ‘쿠쿠루쿠쿠 팔로마’였다.
한 남자가 죽어도 비둘기가 되어 여인의 창가에 날아와 울부짖는다는 노래.
너무나도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지 못하고 창가를 맴도는 반복되는 그 노랫말이 그날의 사건처럼 맺혀있다.
“사람들은 말하네.
그는 밤마다 오직 슬프게 울기만 했다고.
한 남자는 세찬 빗속에서 한 송이 꽃처럼 이울어버렸다. 한 사람의 생이 나의 존재와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가 이 생을 떠나는 시점에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가끔 쿠쿠루쿠쿠 팔로마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 여지없이 그때의 순간으로 감각이 맺힌다.
이슬이 한 곳으로 맺히듯, 그날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눅눅했던 한여름 날의 저녁밤,
눅진하게 가라앉았던 내음은 다층적인 감각이 쌓여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사람은 죽기 직전 떠올리는 인식으로 좁혀져 다음 생을 결정지어진다는 말을 활자로 익혔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이제서라도 작은 나의 바람은 마음속 무거운 짐이 아닌, 비둘기처럼 가벼이 하늘로 날아 구슬픈 소리가 아닌 날숨의 호흡으로 새로이 꽃처럼 다시 피어올랐기를.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소슬한 밤이면, 내 어떠한 한 시절의 파편 속에서 저 음악소리의 음률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세상 속 우리는 창 하나를 두고 아슬하게 저울질하며 서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꾸꾸루쿠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