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연은 끝나지 않으리
야크와 목동의 인연은 신성한 거예요.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죠.
야크는 사는 동안 많은 걸 내어줘요.
마을에 사는 고기가 필요하면
야크들을 모아 놓고 올가미를 던져요,
무작위로 걸리는 야크가 도살되는데
마을 전체가 그때를 가장 애통해하죠.
전에 마을 어느 목동이
티베트에 팔 야크를 한 마리 잡아야 했는데
무슨 업보가 얽혔는지 가장 아끼던 야크가
올가미에 걸려서 도살되게 됐어요.
이 노래는 그 목동이 슬퍼하며 만든 노래예요.
야크 덕분에 자기 목숨을 부지했다고 노래하죠.
노래에 이런 가사도 있어요.
“높은 산속 풀과 샘물의 소중함을 야크는 알지.”
목동이 찬미하는 건 순수한 마음이에요.
깨끗함을 잃지 않는 채 만년설로 뒤덮인 땅이
우리 마음과 같기를 바라죠.
노래의 끝 부분에서는 야크가 목동에게 답가를 불러요.
“우리의 인연은 끝나지 않으리.”
그러면서 영화 속 주인공 루겐은 부탄의 도심에서 시골 루나나로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는 중 한 여인의 노랫자락에 들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세상에 바치다니, 무슨 뜻이에요?
만물에 바치는 노래라는 뜻이에요.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모든 신과 골짜기의 모든 영혼에게요.
검은 목두루미는 노래할 때,
누가 듣고 안 듣고는 신경 쓰지 않아요.
저처럼 그저 바치는 거죠.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님의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순수한 것에 대한 어떠한 한 시절 누구나가 가지고 있었던 그 선하고 여린 한 시절, 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건드린다.
보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저 마다 깊은 곳 자신만의 여린 부분을 간직하고 있는 것.
그 여리고 흐릿하지만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의 한 기억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가장 많이 지나온 듯한 후회와 그리움이 물씬 풍겨지는 그런 순간에 대한 지극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가장 순수했던 그 마음과 현재의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우리의 모습에서 내 여린 부분을 잊고 지낸 시절에서, 영화는 그것의 가장 깊은 곳으로의 미소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다시금 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장 쓰라리고 처연하게 흐드러져
불러낼 수 없는 마술 같은 한 때의 어느 시절.
티베트 사람들은 야크고기를 먹는다. 먹는다,라는 의미에서 풍족한 먹거리 때문에 야크를 도살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크우유, 야크고기, 야크 털, 야크기름 하물며 야크의 똥까지 그들에게는 척박한 땅에서의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는 것이 야크다.
몇 해 전 동티베트 여행에서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로 나에게 다가왔던 야크 한 마리를 떠올렸다. 이전에도 티베트 라싸를 여행하며 야크밀크도 마셔보고 야크고기, 야크육포까지 먹어보기도 하였던 그 야크를 말이다. 이동 중에는 늘 멀리서 하나의 풍경으로만 지나쳐 바라보았던 검은 털과 웅장해 보이던 검은 뿔의 야크.
나 홀로 길을 걸어가고 있던 때에 야크 한 마리는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이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순간 야크의 등치와 그의 눈빛에 겁을 먹었다. 더 이상 내 발걸음이 떠지지 않은 채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것은 우리네 소와는 다른 포스로 어깨의 쌀 한가마니를 이고 있는 듯한 한껏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주변에 티베트 사람들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저 길 위에 나와 야크 한 마리 뿐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멈칫 몇 초간 나를 쳐다본 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느꼈는지 방향을 틀어 다시금 길을 이어 걸어갔다.
그러한 덩치 큰 야크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티베트인들을 생각하면, 야크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 속 그림이 된다. 그러면서 그저 바친다는 것. 그리고 모든 걸 그저 내어준 다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과를 내려놓고 선한 원인을 쌓는다는 것
우리의 지금의 모습과 많이 멀어져 가고 있는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는
노래를 바친다.
육신을 바친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내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티베트 사람들.
가장 순수한 것들과의 멀어짐에서 오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눈물로 그리움을 묻어버리는
그러한 성정의 마음을 담은 듯이
영화는 선하게 아름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