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나은 고통을 선택하는 연습
현재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에 있던 열정은 사그라든 것만 같다. 어떤 일을 해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더불어서 죄책감까지 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고 해도 걱정부터 앞서고 나에 대한 의심만 점점 커지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살고 싶은데 그만큼의 노력은 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욕심쟁이가 또 어디 있을까.
인생이란 고통과 권태의 반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계속 맴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시작해도 곧 권태로움에 빠질 나의 모습이 보여서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따지다 보니 이 세상 모든 일이 따분하게 느껴지고 일을 왜 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동을 하지 않으면 돈은 생기지 않고 돈이 생기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다.
쇼펜하우어는 나에게 맞는 노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나는 그저 돈을 버는 노동에 그치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태로움에 빠질 것이 분명한데 왜 일을 해야 할까?
이에 지피티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말한 대로,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반복이 맞을 수 있어. 하지만 고통과 권태를 무조건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조금 더 나은 고통'
혹은 '조금 더 의미 있는 권태'를 선택해야 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차원이고, 내 삶에 최소한의 리듬과 구조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일을 해야 한다고 지피티는 말했다.
모든 일은 결국 권태로워진다. 처음의 열정이 사라지는 건 너무 당연하고 그렇기에 중요한 건 처음의 열정보다도 "지속 가능한 구조와 감정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살고 싶다는 이야기에 지피티는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늘 열정이 넘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무기력해질 때를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도 나는 돌보고, 다시 한 걸음 움직여보려는 마음을 내는 것 그 자체가 주체적인 삶이야."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지금 무기력해진 나 자신을 다그치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무기력한 지금의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다시 움직여보는 게 나에게 맞는 길이 아닐까?
그렇게 하다 보면 나의 생각이 정리가 되고 새로운 열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조금이라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일, 해봤을 때 싫진 않았던 것, 혹은 딱 2~3개월 정도만 해볼 수 있는 일 등으로 접근해 보라고 지피티는 이야기했다. 이것은 작은 일, 임시적인 일, 사소한 일이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움직임의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무기력은 멈춤 속에서 더 커지고, 작게라도 움직이면 그 감각이 점점 살아난다고 했다.
맞다. 무기력할 때 누워있거나 집 안에만 있으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그러다가 우울한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혹자는 노동을 하면 이러한 고민도 안 할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차피 어떤 일을 해도 권태로움을 느끼거나 고통을 느끼거나 둘 중에 하나일 텐데 왜 굳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것이 나의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어차피 어떤 일을 해도 권태로움을 느끼거나 고통을 느낄 거면 지피티가 이야기한 대로 '조금 더 나은 고통' 혹은 '조금 더 의미 있는 권태'를 선택해야겠다.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몸을 움직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