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한 (有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유한함을 마주하다

by 고요

올해 들어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벌써 6월이고 한 해의 반이 흘러갔다. 하루조차도 금방 지나간다. 눈을 뜬 지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점심이고 이것저것 하고 나면 벌써 해가 져있다. 그러고선 잘 준비를 하고 잠에 든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 한 달이 된다. 벌써 그것이 5번 반복됐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이란 것을 인간이 실질적으로 경험해 볼 기회가 없는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실감하면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저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다고 볼 수 있을까?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시간"이라는 개념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지피티의 답은 이렇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우리는


1.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변한다


2. 기억이 쌓인다


3. 변화가 일어난다


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체감한다고 이야기한다.


우선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변한다는 것은 주름살이 생기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직접 느끼며 시간이 흐른 것을 실감한다. 나는 사실 이 방식으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거울을 보는데 어느 순간 주름이 하나씩 늘어가고 피부가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순간이지만 우리에겐 보톡스라는 현대 문물이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약물을 피부에 넣고 싶지 않다. 무서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사실 어느 정도 맞다.) 어찌 됐든 인간은 늙게 되고 죽을 것이 뻔한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은 마음이 있다.


피부와 상관없이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면 이보다 절망스러운 순간이 없다. 전에는 뭘 해도 끄떡없던 몸이 어느 순간 축축 처지고 기운이 없는 것을 보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더 잘 챙겨 먹고 더 잘 자고 운동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운동하러 가는 그 길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체력이 떨어진 것을 체감하는 것이 나에게 시간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대학을 입학한 지 올해로 딱 10년이 됐다. 올해 초에 이 사실을 깨닫고 홀로 생각에 깊게 잠긴 적이 있다. 그러고선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안부인사를 보냈다. 너무나도 어렸던 나이였기에 감사하다는 말과 더불어 철없이 했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셨던 적이 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다. 다행히 그분은 따뜻하게 답장해 주셨고 최근 안부까지 주고받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만큼의 기억도 쌓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반추하며 나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라는 사람은 나 스스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잘못했던 기억들 위주로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러한 기억들이 쌓이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에 들어가서 10년 정도 살다가 최근에 다시 서울로 나왔다. 이사를 하고 보니 너무나도 달라진 주변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기도의 (그나마) 맑은 공기를 마셔온 탓에 나는 서울로 다시 이사오기 싫어했다. 비록 어딜 가도 편도 1시간 30분은 잡고 외출했어야 했지만 그래도 경기도를 너무 사랑했다. 하지만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을 때 생각보다 편리해진 주변환경들을 보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 보는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없던 편의시설들이 생겼다. 이런 모습을 보고 10년이란 세월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3가지의 방식으로 우리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 뉴턴도 있고 아인슈타인도 있지만 그런 것을 배제하고 철학적으로 보면 시간은 결국 인간이 만든 개념이라고 지피티는 이야기했다. 물리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시간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최근 들어 나는 그저 막연히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벌써 대학에 입학한 지 10년이나 됐다는 것을 실감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이사를 오니 달라진 풍경에 나이를 먹은 것을 체감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까닭은 현재의 내 체력과 생각이 나이를 한참 먹은 후에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게 되면 몸은 쇠약해지고 전처럼 건강하게 뛰어다니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슬픔에 빠질 것이 뻔해 보였다.


예전부터 나는 70대가 되기 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때정도만 되면 충분히 경험을 해봤을 것이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존엄사라는 것도 허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인이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죽음까지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녕 내 삶이 내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인간도 자연의 한 일부분으로써 살다가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 죽음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다. 하지만 카뮈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부조리 앞에서의 도망으로 봤다. "삶이 아무리 무의미하다고 해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반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반항하고 싶지 않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내 죽음만큼은 나 스스로가 정했으면 하는 자연 앞에서의 비겁한 욕심을 부려본다.


어찌 됐든 시간은 흐른다. 지금도 일 분 일 초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혼자 직선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배분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세네카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제일 이성적으로 바라봤다.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자신에게 더 투자하고 알아가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짧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