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물러나 나를 보다
최근 ‘싯다르타’를 읽다가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이 모두 나의 오만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싯다르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다. ‘나는 혼자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나에 대해서 사유하고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다르고 다른 이들은 책에서 나온 표현처럼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은 너무나도 큰 착각이고 나의 오만이었다.
오만함이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에 지피티는 “오만함은 불안, 비교, 그리고 인정욕구에서 온다”라고 했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이 만든 방어기제로서 불안에서 오는 자기 방어,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기중심적 세계관 등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네 가지 모두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나는 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고 있으면서 나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나는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우월감도 가지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고무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바탕으로 이뤄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뭐라도 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피티는 인정받고 싶지만 받지 못할 때 사람은 오히려 센 척을 한다고 한다. “나는 알아, 너희는 몰라”와 같은 생각은 사실 “나를 좀 봐줘,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간절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하는데 자기 내면의 세계가 커지면, 그만큼 외부 세계가 작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로, 깊이 파고든 건 맞지만, 넓게 본 것은 아니다. 최근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진 탓에 나만의 세계가 커졌던 것 같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화려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내려놓은 과정 속에서 그는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깨달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생각들은 모두 나의 오만이었다는 것을.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권태를 느끼더라도 오랫동안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항상 도피해 왔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랑 안 맞아’하며 바로 등 돌리기 일쑤였다. 벽을 넘어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을 누군가는 꾸준히 해왔고 또 그 일에 새롭게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그저 어렵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면서 ‘나는 해보고 싶은 것들은 모두 해봐야 하는 사람’이라며 자기 위안을 하지 않았던가. 어리석은 사람은 나였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해보려고 노력만 하고 실천은 두려워한 채 준비 단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직접 해보지도 않고 그저 다른, 해봤던 일을 하려고 했다. 물론 실패하면 돌아갈 수 있는 길들이 있다는 건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직접 해보지도 않고 두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다시 도전은 미뤄둔 채 등 돌리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면서 도피를 해왔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으니 나는 나의 벽을 넘어볼 예정이다. 너무 서두르지는 않으려고 한다. 기대가 크고 성급하게 움직이면 실망도 크고 실수도 하게 될 수도 있다. 몽테뉴가 이야기했듯, 나에게 맞는 속도는 내 몸이 알고 있다. 느리든, 빠르든 다른 이의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