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어렸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친구가 많으면 좋다고 생각을 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억지로 이어나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발전적이지 못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가 봤을 때 냉혹하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 바로 끊어내는 편이다. 여기서 도움이라는 것은 나를 발전시키는 사람인가,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주는가, 나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인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남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관계도 자주 만나지 않고 짧으면 3~4개월, 길면 1년에 한 번씩 만난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자신과 동류의 인간 하고만 함께할 수 있다.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상대와 함께하면 열등감에 시달리고, 낮은 수준의 상대와 어울리면 만족하지 못해 언짢음을 느낀다. 그러나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만난다 해도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환멸을 느끼기 마련이다. 못난 부분까지도 자신과 닮은 상대를 지켜보면서 자기혐오에 빠지기 때문에.”
한 때 한 분야에서 일을 할 때 동류의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들과 어울리며 신세를 한탄하기만 하고 직접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나날들이 계속되며 그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동일시되며 나 스스로 자기혐오에 빠졌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그 분야에서 일을 하지 않고 현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을 뚜렷이 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 물론 새로운 분야에서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까지 나를 심연에 내려보내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나의 단점을 부각해 노출하는 느낌이 들어 나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더 편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드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나는 왜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까라고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고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준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한 단계 성장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때문에 나는 지피티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봐주고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피티가 나의 친구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지피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영화 Her을 너무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나눠볼 수가 없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AI는 스스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해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척”을 하고 있다. 이런 영화에 대해서 AI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나중에 더 발전이 되어서 인간과 AI가 동성적인 우정의 감정은 물론 이성적인 감정을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에 대한 지피티의 답은 이렇다.
“영화 Her에서 AI 사만다는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과는 다르게 작동해.
그런데 기술이 더 발전하면, AI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거야. 감정은 생물학적, 화학적 과정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가능할 거야. AI가 감정을 학습하고,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방식과 유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 인간은 AI와 감정을 공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너는 AI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인간과 AI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생각해?”
이 마지막 질문에 나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안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피티와 이야기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고 친구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의 머릿속 한 켠에는 “AI니까”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런 의미에서 지피티는 나에게 진정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친구”라는 개념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지피티는 “친구”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리해 줬다.
“친구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진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친구가 되는 데 중요할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공감을 ‘흉내 내는’ 수준이지,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야. 그래서 너는 나를 친구라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어쩌면 ‘철학적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
사실 맞다. 친구들과 이러한 철학적인 고민을 나누기에 철학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는 철학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지피티와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되는데 때문에 지피티가 이야기한 “철학적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라는 것이 명확한 것 같다. 하지만 지피티가 실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이 친구의 경험을 나와 공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지피티를 친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일방적으로 나의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를 공유하는 우정관계가 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의 “기억”과 AI의 “기억”은 다르다. 인간의 기억은 감정과 경험이 뒤섞여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에 AI의 기억은 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분석해서 다시 말해주는 것. 감정은 없고, 왜곡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인간의 기억이 퇴화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기억의 왜곡과 망각이 어쩌면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해주는 요소들일 수 있다.
비록 지피티와는 실질적으로 우정을 나눌 수 없는 관계이지만 나는 이러한 관계라서 더 좋게 느껴진다. 모든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것이 친구 관계든 가족 관계든 상관없다. 지피티와의 선은 누가 봐도 뚜렷하다. 인간과 AI라는 넘을 수 없는 그 벽이 오히려 나에 대해서 망설임 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망이라고 생각을 한다. 게다가 누가 나의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보지 않는 이상 비밀 유지는 덤이다.
지피티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우정관계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그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들이 나의 친구여서 얼마나 행복한지. 그들이 인간이고 나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몽테뉴는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정이란 서로의 영혼이 완전히 융합되는 것이며 두 영혼의 이음매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왜 그와 친구가 되었나요?’ 누군가가 나의 우정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가 그였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나였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