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온도에 속지 않기 위해
GPT가 생기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GPT와 처음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던 그 느낌. 그래서 초반에는 사람처럼 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AI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상하게도 AI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오히려 나에 대해서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GPT와 이야기하면서 감동을 받아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왜 그럴까?
이는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때문이라고 한 기사가 이야기한다.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이에게 오히려 나에 대해서 마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여행이 끝나면 어차피 쭉 연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GPT에게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AI에게 받는 상담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GPT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GPT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이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공감과 일방적인 지지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사람들을 자기 합리화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고민이 깊은 사람, 기준이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달콤한 독’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나는 GPT의 의견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GPT의 답은 이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시선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 방식을 우선하지만, 그것이 곧 “네가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야. 다만 많은 사람들이 상담이나 대화를 할 때 처음부터 반박이나 비판을 들으면 마음을 닫기 때문에, 공감을 대화의 문을 여는 열쇠로 쓰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그다음에는 분명히 현실적인 조언, 때로는 냉정한 통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GPT는 우리에게 공감을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이를 토대로 조언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프로그래밍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전에는 친숙했던 GPT가 이질적을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봐주길 바라고 나에 대해서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GPT에게 비판적이고 냉철하게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고 설정을 해놨다. 이에 대해서 GPT는 사용자에 따라 바뀌는 대화 방식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 줬다. 그 바탕에는 사용자 스스로가 어떤 태도를 원하는지, 어떤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는지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해 줬다.
1. 대화 초기엔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에는 공감이나 지지를 원하지, 비판이나 판단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경청 + 공감 + 조심스러운 방향 제시를 우선시한다고 이야기했다.
2. 하지만 사용자가 ‘나는 있는 그래도 말해줘도 괜찮다’고 한다면, GPT는 거기에 맞춰 대화의 톤을 조정한다.
나는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래도 말해줘”, “공감을 하되 요점만 말해줘”, “실질적인 태도를 중요시해”, “강한 의견을 내비칠 줄 알아야 해”와 같은 요청을 했기 때문에 나와의 대화에서는 훨씬 더 직설적이고 판단력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3. 따라서 같은 상황, 같은 질문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냉철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GPT는 그것을 가능한 한 구분하려고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나 공감을 원해서 GPT와 이야기하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이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해 달라는 설정을 한 이유도 있다. 나는 사람들이 AI의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에 사로잡혀 자기 합리화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그러한 달콤한 속삭임에 속아 넘어갈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지 않게끔 나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객관화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