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 몇 년간 겨울이면 크게 아팠다. 여름 더위를 자주 먹어서 엄마가 큰 마음먹고 보약을 한 재 달여 주었는데, 그것을 먹고 체질이 차게 되었는지 겨울을 타기 시작했다. 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은 심하게 앓고 나야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양 볼이 핼쑥해진 게 눈이 보일 정도였지만, 입맛은 더 까탈스러워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건 호박죽 덕분이었다.
엄마는 늦가을 시장에서 늙은 호박을 하나 사 머리에 이고 오셨다. 머리 크기보다 3배는 더 큰 것 같은 호박을 보면, 엄마 목이 한 2cm는 어깨 밑으로 내려앉았을 것 같았다. 내가 들기에도 꽤 묵직한 호박을 건네받아 거실 수납장 위에 보기 좋게 올려놓았다. 이 호박은 때가 되어야만 제 몫을 할 것이다.
찬 바람이 불고 함박눈이 두세 번은 내린 후 한겨울이 이제 막 지나가나 보다 싶으면, 그때가 되었다. 이상하게 겨울의 끝자락에 항상 독한 감기가 걸렸다. 겨울의 초입부터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나를 지키다가, 올해에는 무사히 넘어가려나 보다 하고 긴장의 끈을 놓친 순간, 내 몸의 통제권을 잃었다.
손은 차가운데 이마에 열이 끓기 시작하면, 엄마는 거실장 위에 전시해 놨던 호박을 내린다. 주방으로 가져가 호박이 역할을 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며 쉽지 않은 손질을 시작한다.
워낙 두껍고 단단해 가녀린 손목의 힘으로는 한 번으론 택도 없다.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뾰족한 곳을 세워서 푹 찌른다. 찍어 누르듯이 아래로 눕혀 힘껏 내린다. 한 손으로 안 되면 호박을 잡고 있던 왼손을 데려와 힘을 합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씨름하지만 결국 엄마의 승리다. 호박은 수줍은 주황빛 단면을 보이고 만다.
숟가락으로 씨를 파 낸다. 호박씨는 버리지 않고 물에 씻은 다음 채반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널어놓는다. 적당히 마르면 내 간식거리가 될 것이다.
호박 껍질을 감 칼로 깎다가 손가락에 피가 났다. 그 거대한 조각들을 감당하기에 감 칼의 날은 상대적으로 왜소했다.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몇 번이나 미끄러져 꼭 손에 상처를 내고야 말았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피가 흐르지만 않는다면 무시하고 계속 호박 껍질을 깎았다. 껍질을 최대한 얇게 깎으려 온 정신을 쏟았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껍질을 다 벗은 호박은 20L쯤 되는 대형 스텐 들통에 몸을 담갔다.
호박을 끓이느라 그리고 같이 넣을 팥을 끓이느라 엄마는 주방에 몇 시간을 서 있었다. 늘러 붙지 않게 계속 나무주걱으로 휘저었다. 몽글몽글 끓다가 톡 하고 튀기는 열감에 손도 몇 번 데었다. 단단한 늙은 호박이 부드러운 죽이 되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것이었다.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호박죽은 나만 먹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호박죽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그릇 정도는 맛본답시고 먹지만 두 번은 없었다. 대형 스텐 들통에 담긴 호박죽은 일주일 동안 내 차지였다. 아무도 건들지 않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양식이었다. 그것을 엄마가 해 주었다.
3월 봄바람을 느껴야 할 이 시기에 한기를 느끼며 떨고 있자니, 엄마가 끓여 줬던 호박죽이 생각났다.
지금은 떨어져 사는 엄마에게 해 달라고 하기는 민망해서 직접 해 볼까 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요리 유투버 채널에서 늙은 호박죽을 검색했다. 껍질을 채칼로 깎지 않고 칼로 뭉텅뭉텅 썰어냈다. 껍질에 붙은 아까운 호박 덩이들이 같이 떨어져 나갔다. 조각조각 썰어서 물과 함께 한 10분만 삶다가 꺼내어 믹서기로 갈았다. 그리고 다시 어느 정도 삶고 간을 하니 30분 만에 호박죽이 완성되었다. 엄마는 몇 시간이 걸린 호박죽을 이렇게 쉽게도 만들 수 있는 거였구나.
선뜻 만들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예전 엄마가 만든 그 맛이 안 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감기에 걸리면 나는 항상 미각을 잃는다. 아무 맛을 못 느끼니 그 어떤 산해진미를 먹어도 밥맛이 없다. 맛도 못 느끼고 씹히는 것도 별로 없는 호박죽을 나는 왜 맛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을까?
호박죽을 통해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우리 집의 기둥이라는 첫째 딸도, 머리가 똑똑한 둘째 딸도 싫어하는 호박죽을 엄마는 오로지 나를 위해 커다란 들통 한가득 끓였다. 맨날 심부름은 막내딸인 나만 시키는 것 같고, 언니들 챙겨주라는 당부를 하고, 찬밥신세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늦가을부터 미리 호박을 사놓고 때가 되면 나만을 위해 호박죽을 끓여주는 엄마를 보며, 나는 위로를 받았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한동안 호박죽을 잊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같이 잊고 있었나 보다. 얼마 전 엄마에게 더 많이 칭찬받지 못해 아쉬웠다며, 어린아이로 돌아가 글을 썼다. 그리고 고작 며칠 심하게 앓고 난 지금, 엄마의 사랑 표현방식이 달랐음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