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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Mar 24. 2022

육아 스트레스를 잊는 시간, 15분의 마법

마스크팩은 피부에만 좋은 게 아니더군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떨어져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에서 생겨난 책임감의 무게를 최대한으로 느낄 때 나는 혼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동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은 그래도 9년 넘게 키워 놓으니 '엄마 지금 좀 힘든데, 너희들끼리 좀 놀고 있을래?'라는 말도 할 수 있다. 다행히 분위기 파악 좀 하는 아이들은 고맙게도 내게 혼자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준다. 문득 아이들이 눈치 제로였던 그때는 어떻게 나의 시간을 가졌는지 되짚어보았다.




나의 육아 스트레스는 거의 둘째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첫째는 워낙 온순한 기질이기도 했고 생후 6개월 이후에는 친정엄마가 주 양육자 역할을 해 주셨기에 육아의 힘듬을 잘 모르고 키웠다. 그런데 둘째는 일명 '껌딱지' 아니 '엄마딱지'였다. 자주 '전생에 나는 바늘, 이 아이는 실이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이 아이가 전생에 내 남편이지 않았을까?'라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내 무릎이 방석 인양 모든 식생활을 나를 깔고 앉고 하려는 둘째가 너무 힘들었다.


둘째가 세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는 언젠가 "아. 집에 늦게 가고 싶다."라는 낙서를 끄적인 적이 있다. 양심은 있어서 '안 가고 싶다'가 아니라 '늦게 가고 싶다'였다. '아, 이게 육아 스트레스 인가 보다.'라는 통찰이 생기는 무렵이었다. 머리로는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결국 내 발은 머리보다 더 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아마 그날 저녁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갑자기 마스크팩을 좀 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당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던 형님이 만날 때마다 챙겨준 마스크팩이 냉장고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나 남편이나 피부관리에 신경 쓰는 부류가 아니었기에 마스크팩을 하겠다는 남편의 말은 참 이례적인 것이었다.


친절히 냉장고에서 시원한 마스크팩을 하나 꺼냈다. 그 김에 나도 해 볼까 싶어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호기심을 두 눈에 장착하고 일단 내 몸에 엉겨 붙는 아이들에게 나는 친절하게 사전 예고를 했다.


"엄마가 잠시 변신할 테니 놀라지 마~"

그리고 마스크팩을 얼굴에 딱 붙였다.


얼굴에 붙는 청량한 느낌과 함께 내 등과 무릎에 딱 붙어있던 아이들은 시원하게 나가떨어졌다. 


"엉~~~~ 엉~~~ 무서버~~~ 무서버~~~~"


둘째가 울면서 거실로 나갔다. 첫째도 찡그리며 거실로 나갔다. 둘째는 심지어 평소 잘 가지도 않던 아빠에게 안기며 아빠를 꼭 끌어안았다. 이제 막 팩을 붙이려고 했을 남편보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예상치 못했던 자유가 찾아왔다. 남편은 둘째가 운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안기는 것에 놀라워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스스로 자기 발로 걸어와 안겼으며 심지어 두 팔로 아빠 목을 꼭 감싸 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나 보다. 남편은 굳이 아이를 안아 들고 방문 앞에서 나의 상황을 확인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아빠 치고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내가 만끽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스크팩을 붙인 15분 동안 정말 대자로 뻗어 누워있었다. 거실에서는 둘째가 울었지만, 미안하게도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고, 그 대가로 마스크팩을 뗀 후 둘째를 찾아가 꼭 안아 주었다. 마법처럼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제목이 너무 거창해 낚시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단 15분도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이 힘들었던 육아 스트레스의 해결법이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오겠다며 혼자 카페에 갈 수 있는 용기가 그땐 없었다. 말로만 '어디 1박 2일 출장 가고 싶다.' 노래를 해댔지만, 정작 출장 갈 일이 생겨도 아이들 걱정에 밤 열두 시 기차를 타고서라도 귀소본능에 충실했다. 그런 시절에 우연히 찾아온 단 15분의 시간이 내겐 마법 같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육아 스트레스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 아니다. 그저 나와 다른 존재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의 무게가 너무 커다랗게 느껴질 때 마주하는 괴리감이다. 나만 바라보는 저 아이의 욕구를 내가 채워주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느끼는 자책감이다. 많은 어려움들을 견뎌내야 하는 내가 작아져 보일 때 얻는 외로움이다. 아이를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그 모든 자극은 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엄마도 본래의 '나'를 느끼고 생각하고 드러낼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스스로 필요하다 느끼면 혼자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된다. 단 15분 마스크팩의 힘을 빌려서라도, 단 10분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더라도 조금은 나도 챙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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