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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Mar 25. 2022

셀카와 자기애 간의 관계

내 휴대폰에 내 사진이 없다.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 아니라 딸친엄(딸 친구 엄마)이 부러운 일이 생겼다. 우연히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딸의 친구 엄마를 만났다. 평소 자주 마주치던 분은 아니어서 가볍게 인사하고 옆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들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어쩌다 엄마들의 대화가 끼어들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 다 딸만 둘이라는 것, 둘째가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신속하게 동질감이 형성됐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에 제대로 만나자며 인사했다.


집에 돌아와 새로 추가된 톡 친구의 목록을 봤다. 자연스럽게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아까 그 엄마가 맞긴 하는데, 색다른 모습이었다. 핑크빛 시폰 원피스 위에 체크무늬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탐스러운 딸기가 통째로 올라간 치즈케이크를 앞에 두고 있다. 배경으로는 잔잔하고 넓은 강이 펼쳐져 있고 멀리 대교가 보이는 것이 한강 어디쯤인 것 같았다. 휴대폰을 터치해 화면을 옆으로 밀었다. 여행지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하늘거리는 블랙 롱 원피스를 입었다. 수줍게 미소를 지으면서 두 손의 동작이 자연스러운 것이 모델이었나 싶었다.




문득 내 프로필 사진이 궁금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창에서는 볼 수 없는 내 프로필 사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분에 따라 혹은 기념일에 따라 수시로 바꾸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나는 분기에 한 번쯤은 신경 써서 바꾸는데, 그 이유는 주로 계절감이 느껴지는 풍경사진을 올리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눈사람 사진을 그대로 두는 무심한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계절이 바뀌는 걸 느낄 때 그날의 풍경 한 조각을 올리는 식이다.

 

톡 창에서 빠져나와 내 휴대폰의 사진 갤러리를 눌렀다. 무엇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로 손가락이 계속 스크롤을 내린다. 이 몇천 장 찍은 사진 중 온전한 내 사진이 없다. 가족사진, 단체사진 말고는 몇 개월을 거슬러 내려갔는데도 내게 초점을 맞춘 사진이 없다. 온통 아이들, 자연, 닭 사진이었다. 더 웃픈 건 닭 사진만도 800장이 넘는데 내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셀카를 한 번 찍어볼까 하고 휴대폰 카메라 기능을 켰다. 휴대폰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쭉 빼내어 거리를 최대한 넓혔다. 왼손으로 오른쪽 옆머리를 귀 뒤로 꽂았다. 왼쪽 앞머리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부드럽게 빗어 내렸다. 왼쪽마저 귀에 꽂으면 촌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러내리도록 두었다. 브라운 계열로 염색한 지 3개월이나 지나 새로 난 검은 머리카락 뿌리 부분이 신경 쓰였다. 최대한 경계가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 각도를 조절했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미소를 머금으며 촬영 버튼을 터치했다. 찰칵.


셀카 사진 속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 밝고 건강한 느낌의 스트라이프 셔츠로 갈아입었어야 했다. 일 년 전쯤에나 그렸었던 것 같은 아이라인 한 줄 정도는 얹혔어야 했다. 파운데이션 성분이 포함된 선크림도 콩알만큼은 발랐어야 했다. 마른침이 아니라 핑크 로즈 컬러의 립스틱을 입술에 더했어야 했다. 앙 다문 미소 대신에 살짝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떨어뜨려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는 게 나을 뻔했다. 그러면 눈꼬리도 같이 웃을 수 있었으리라.


결국 '삭제'를 누르고 말았다. 아마 과거에 몇 번은 분위기에 취해 셀카를 찍었다가 역시나 마음에 안 들어 지워버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넘치는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이 셀카 중독에 빠지는 경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분명 넘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어쨌든 셀카를 찍는다는 것은 적당한 자기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자기애가 어찌 외양적인 것만 말하겠냐만은 어쨌든 지금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 와중에 자기애가 드러나는 딸 친구 엄마가 부러웠다.




잊지 않고 있다가 기분 좋은 어느 날 다시 셀카를 찍어야겠다. 미세먼지도 없는 맑은 하늘에 따뜻한 봄바람이 느껴지면 초록색 새 순이 돋은 나무를 배경으로 찍을 것이다. 눈이 조금 따갑더라도 햇살을 마주해 자연광을 듬뿍 받을 것이다. '이런 것이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어느 여유로운 날, 나는 다시 찍을 것이다. 자기애가 부족하다면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찍을 것이다. 나를 마주하고 스스로 예쁘다 해 줘야지.



<참고문헌>

김재희, 서경현.(2018).성인 여성의 내현적 자기애와 셀카 중독경향성 간의 관계.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18(7),20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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