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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Oct 24. 2022

아이가 날 평범한 주부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처럼 되기 싫다고

회사를 그만둔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내 인생에서 최대 가치로 꼽는 '성장'을 위해 대기업을 뒤로했다. 이직을 포기한 것은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때마침 정서적 지원을 필요로 했고 코로나로 인해 기간이 늘어났다. 서울을 떠나 풍경 좋은 시골로 이사한 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를 다니고 우리 부부는 심리적 평안함을 되찾았다.


삶의 어느 순간,  그 시점에 우선순위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그것을 위해 선택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당시엔 최선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남편은 회사를 다닌다. 환경이 바뀌었고 출퇴근길이 달라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유지한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가장 편하게 산다는 나는, 성장 욕심이 지독했던 나는, 아이의 말대로라면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 엄마, 나도 면 꼭 결혼하고 아기도 낳아야 돼?

- 왜? 결혼하기 싫어?

- 응. 결혼하면 아기 낳아야 되는데, 낳을 때 너무 아플 것 같아.

- 물론 아플 수는 있지. 그런데 너같이 이쁜 아가를 낳아서 키우는 행복은 아기 안 낳으면 절대 모를걸?


첫째는 8살 무렵부터 결혼과 출산을 걱정했다. 출산 통증에 대해 걱정하길래, 그 대화 이후로는 아이의 생일날 '네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엄마 진짜 힘들었어~'라는 생색내기를 하지 않았다.


- 엄마, 나는 커서 결혼  안 할 거야.

- 왜 벌써 그런 생각을 해?

- 결혼하면 내 일도 못 하고, 아기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잖아.

- 엄마가 너희들 키우는 게 힘들어 보여?

-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 것 같아.

- 사람이 살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고 키우는 게 때론 힘들기도 하지. 근데 엄마는 세상에 보탬이 될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있는 거야.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아이들에게 "엄마 힘들어~"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곱씹어 보았다. 아이가 보는 롤모델이 나라는 사실에 겁이 나면서도, 그럴수록 내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겠구나 생각했다.


- 엄마, 나중에 크면 결혼하고 아기 낳는 거 꼭 해야 돼?

- 너의 선택이지만, 결혼하고 아기 낳는 것도 좋은 일이야.

-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을래.

- 왜?

- 엄마처럼 평범한 주부가 돼야 하잖아.


'왜?'라고 되물은 것을 후회했다. 아이가 가끔 하던 말이었으므로, '그래. 어른이 돼서 선택하면 돼.'라고 예전에 했던 대답을 다시 해줄걸 그랬다. 아이의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엄마처럼 평범한 주부'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본 듯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 엄마가 평범한 주부 같아?

    엄마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너희가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둔 거야. 엄마가 선택한 거야.


다급하게 덧붙인 설명에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던 것 같다. 어쩌면 발끈한 기색이 눈동자에 묻었을지도 모른다. 주부라는 사회적 역할에 불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느껴졌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희생'이라는 의미가 꼬리를 물었다. 숨바꼭질하던 자존감이 지는 해를 따라 산 뒤로 넘어가버렸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데.

너희가 행복해 마지않는 이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까지 했는데. 전학한 학교에 잘 적응시키려고 학부모가 참여하는 모든 활동을 다 했는데. 경력단절 기간 동안 들어왔던 입사 제안도 단칼에 거절했는데. 아침잠 조금 더 재우고 아침밥 제대로 먹여 보내려고 셔틀버스 대신에 라이딩하고 있는데. 나 스스로도 놀고먹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배우고 책 읽고 있는데. 다른 엄마들의 성장을 위해 책쓰기 프로젝트도 리드하고 있는데.


이런 내가 왜 평범해. 아니, 이 세상에 평범한 주부가 어디 있어.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어. 각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나름대로 해나가고 있는 것일 뿐.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이 '애들 학교 보내고 그동안 뭐해?"하고 물으면 "뭐 하는 것도 없이 바빠."라고 말하는 건 어쨌든 뭔가 하고 있었던 건데. 그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나는 '평범한 주부'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만큼 나는 작아져 있었다. 반박하려는 마음이 구슬프지만 지금 나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내일 아이에게 다시 얘기해줘야지.


네가 보기에 내가 평범한 주부일 수 있지만, 적어도 너에겐 지금 이런 엄마가 필요한 건 확실해. 너는 지금보다 더 큰 미래를 이끌고 나갈 아주 특별한 인재야. 그런 너를 잘 키우는 일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너의 곁에 있는 거지. 평범한 주부인 덕분에 네가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어. 그리고 엄마의 특별함은 아직도 여기 안에 있어. 지금 엄마가 하고 있는 것도 결코 평범하지 않아.


지금 평범해 보여도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도전할 용기가 더 중요해. 엄마는 엄마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나는 여전히 내 이름을 갖고 있어.


아이에게 하면서 나 스스로에 들려주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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