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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Oct 11. 2022

너의 "살가움" 이 좋다

둘째의 최대 강점

졸린 건지, 피곤한 건지, 아픈 건지 나조차 분간이 안 되는 휴일 아침이었다.


간밤에 두 번 정도 잠에서 깨고, 한 번 화장실 다녀온 정도면 나름대로 잘 잔 축에 속한다. 주말치고는 일찍 일어났지만 평일 기상시간에 비하면 늦잠을 잔 정도였고, 아이들 아침까지 챙겨 줬으니 그렇게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자꾸 침대에 눕기를 원했고, 손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때 '엄마 껌딱지' 혹은 '엄마 바라기'인 8살 둘째 딸이 방 안에 들어왔다.


"왜? 뭐 필요해?"


당연히 심심하니 놀아 달라거나, 책을 읽어 달라거나, 간식을 달라거나 어쨌든 요구성의 방문일 거라 생각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무런 요구 없이 한 손을 척 내 이마에 올리더니, 일어나려던 나를 제지하고 방을 나섰다.


"엄마, 그대로 누워있어. 잠깐만~"     


방을 나간 아이의 발소리 뒤로 주방을 헤집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 탁.

'물티슈를 찾았나?'


덜그럭 탁.

'인형 물놀이하려고 바가지를 찾았나? 오만 거 다 꺼내 놓는 거 아니야?'


쏴아 탁.

'물은 욕실에서 쓰지, 왜 싱크대 물을 틀지?'  

들들들들.


'아, 이제야 네가 뭐 했는지 알겠다.'


아이가 만들어낸 소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아차린 순간, 어김없이 예상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이 등장했다.


바로 "둘째 표 간호 카트"다.


둘째 표 간호 카트


엄마가 누워있고 목소리에 힘이 없으며, 이마에 손을 올렸을 때 자기 손에 따뜻하다 느껴지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주방 조리대가 협소하기도 하고 식탁과의 거리가 좀 있어서 음식 운반용으로 구매했던 카트. 상단에 있던 물컵 건조대와 아마 그 당시 놓여 있었을 식빵 봉지, 그리고 청구서도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귀찮아서 방치해 놨던 물건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심지어 물티슈로 닦았나 다.


엄마 머리 위에 물수건을 올려주기 위해 나름대로 미지근한 물 온도를 맞춰 왔다. 수분 보충을 위해 텀블러에 물도 담아 왔고, 간호 일지를 쓰기 위한 수첩도 가져와서 골똘히 쓰는 모양새가 제법 전문 의료진 같다. 체온계로 온도 체크는 물론이고 주방에 다시 가서는 뻥튀기를 접시에 담아 간식이라고 갖다 줬다. 지금껏 여러 번 간호 카트를 받아 봤지만 매번 감동한다.


둘째가 물수건을 해 주면 놀랍게도 진짜 열이 떨어진다. 아이가 아파서 열날 때 물수건으로 열이 떨어지면 "열이 떨어져서 다행이다."인데, 아이가 물수건을 해줘서 열이 떨어지면 "진짜 열이 떨어지네.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기특하다는 눈빛을 한참 쏘고 있는데, 문 밖에서는 첫째가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 났다. 둘째가 문 밖에다 "김ㅇㅇ님 입원실. 들어오고 싶으면 똑똑 노크하세요!"라고 써 붙였는데, 미처 보지 못한 첫째가 벌컥 문 열었다가 제지당했기 때문이다.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조용하고 점잖게 묻자, 그제야 "환자가 쉬어야 하니까 조용히 들어오세요." 하는 둘째의 허락이 떨어졌다.


매일 귀엽지만 매일 혼내는 둘째인데, 이럴 땐 그저 고맙다. 나를 생각해 주는 아이의 살가운 행동이 이렇게 미숙한 엄마도 힘을 내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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