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두두 Jun 23. 2022

인공 부화한 닭이 자연 포란을 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나?

'화이트'는 국산 인공 부화기에서 태어난 청계 암탉이다. 처음엔 소박한 마음으로 몇 마리만 키워보자 해서 3구짜리 부화기를 구입했다. 그런데 그 셋 중에 두 마리만 태어나 뭔가 아쉬워 또 새로운 알을 넣었다. 그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는 뒤늦게 아들복이 터져 수탉이 즐비하니 또 아쉬워 새로운 알을 넣었다. 그렇게 불어나는 욕심으로 만 일 년 만에 인공 부화를 6번을 했다. 4세대 닭 중 흰 털이 예뻐 이름 지은 암탉이 '화이트'다.


올해 4월 말,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흙 목욕하고 있으면 세상천지 이보다 더 좋은 닭 세상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한 날이었다. 화이트는 산란장 안에서 알을 하나 '퐁' 낳고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포란이구나 싶었을 때, 미안하게도 화이트를 몰아내고 달걀을 꺼냈다. 이유는 단순했다. 유정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탉과의 교미 없이 낳은 무정란을 아무리 정성껏 품는다 해도 병아리는 태어날 수 없다. 


다음날 화이트는 또 알을 낳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고 품고 있었다. 인공 부화기에서 태어난 닭이 알을 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어미가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따뜻하게 해 주면 새끼가 태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도저히 학습일 수 없는, 본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화이트의 포란을 응원해 보기로 했다. 


로컬푸드 매장에 가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풀어놓고 키운 청계 유정란을 사 왔다. 잔뜩 예민해져 있는 화이트 옆에 5알을 놓았다. 시원한 매장에서 금방 사 와 알이 차가운가 싶어 부화기에서 따뜻하게 데워와야겠다는 생각을 막 하려던 차에, 화이트가 부리로 몰아 자기 품 밑으로 쏙 쏙 집어넣었다. 그렇게 진짜 유정란의 포란이 시작됐다. 




병아리는 보통 21일 만에 태어난다. 화이트는 알을 품기 시작한 첫 일주일은 산란장 밖으로 일절 나오지 않았다. 가까이에 사료와 물, 간간히 야채를 썰어 갖다 놨는데 항상 그대로였다. 거의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듯했다. 먹지를 않으니 배변도 거의 하지 않았고 당연히 새로운 알도 낳지 않았다. 


볏이 서서히 힘을 잃고 처지기 시작할 때쯤, 그러니까 두 번째 일주일은 아침 8시, 20분 정도 닭장을 나와 있었다. 사료를 먹고, 물을 먹고, 그들의 언덕으로 올라가 흙 목욕을 몰입해서 했다. 그리고 다시 산란장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알을 품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또 꼼짝없이 알을 지켰다. 이미 볏은 축 늘어졌고 살은 빠진 것 같으나 털은 최대한 부풀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제 병아리가 태어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그날, 어느새 병아리가 태어나 어미의 보호 아래 있었다.



어미가 된 화이트는 밤낮으로 새끼들을 지켰다. 서열 1위인 토종닭 '큐티'와 외로움에 지쳐있던 청계 단짝 '블랙', 그리고 성장기에 들어서 에너지가 넘치는 중닭들의 호기심으로부터 병아리들을 보호했다. 병아리들은 기특하게도 제 어미만 졸졸 따라다니며 무럭무럭 커 나갔다. 


태어난 지 2주 정도가 되자 어미는 새끼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었고 혼자서 땅을 파 먹이를 찾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는 다른 큰 닭들에게 치이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를 강화했다. 


한 달이 되자 병아리들은 많은 시간을 어미와 떨어져 지냈다. 심지어 잠자리까지 독립시켰다. 화이트는 더 이상 산란장에 들어가지 않고, 포란 전에 그러했듯이 횃대 위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거의 두 달만이었다.    





황선미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면 암탉이 살아가는 세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양계장 케이지 안에서 주인이 주는 대로 먹고 날마다 알을 낳으며, 조금 답답하지만 그런대로 안전한 삶을 사는 암탉. 주인집 마당에서 역시 주는 대로 먹고 알을 낳아 품고 병아리를 키우는, 비교적 자유롭고 안전하지만 주인의 선택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지는 암탉. 인정받지 못하는 마당을 나와 알을 품고 병아리를 키우는 소망을 실현시키는, 세상의 혹독함과 맞서 싸우며 새끼를 성장시키는 삶을 사는 암탉. 


책을 읽고 '슬프고 감동적이야.'라고 말했던 첫째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암탉이라면 이 세 가지의 모습 중 어떤 삶을 선택할 것 같아?"

"나는 그냥 양계장에서 주는 밥 먹고 편하게 살 것 같아."

"그러면 너무 심심하고 답답하지 않을까?"

"괜찮아. 나는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상상하면 돼."

"있잖아. 잎싹이도(<마당에 나온 암탉>의 주인공 암탉) 마당에 사는 암탉이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이후에 알을 품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거야. 양계장 밖에 있는 하늘과 마당, 아카시아 나무를 볼 수 있으니 상상도 할 수 있었던 거지. 경험해야 상상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마당을 나와 위험천만한 일을 수 없이 겪은 암탉의 모습이 불안해 보였을까. 아이는 가장 안전한 삶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세상에 맞서 싸우고 도전하는 것이 값진 인생이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그저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상상하는 것이 너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거라고 얘기하면서 대화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화이트는 알을 품는 암탉을 보지 못했다. 더 어린 병아리들은 내가 인공 부화기로 부화시켜 한 달 동안 집 안에서 고이 보살핀 후, 어느 정도 털이 자라 있는 것을 닭장 안에 넣은 이후에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인공 부화기에서 태어났으니 어미 닭의 포근함을 느껴본 적도 없다.


어느 누구도 알을 품기 시작한 일주일은 알 속에서 세포 분열이 일어나는 중요한 시기이니 온도 유지를 위해 꼼짝 말고 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마지막 일주일도 곧 태어나야 하니 보온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태어난 지 2주동안도 밤낮으로 철저히 지키다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내보내라는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화이트는 보고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않았던 일을 무사히 해냈다.


자연의 섭리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을까. 내 자식을 출산하고 키우고 더 큰 세상을 날려 보내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는 것이 '암컷', '여성'으로 태어난 존재의 본능일까. 그렇다면 알을 품지도 않는 암컷,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왜 본능을 거스를까. 원인을 드러내자면 결국 내 자식들의 생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판단으로 인한 진화론으로 흘러갈 테고, 또 그 원인은 사회와 환경으로 가지 칠 게 분명하다.


어딘지 모르게 성숙한 미가 물씬 풍기는 화이트가 횃대 위에 앉아 있다. 그 옆에 어미의 흰색 털을 물려받은 것 같은, 사실은 전혀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어미의 품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편안하게 털을 고르고 있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가, 본능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인가. 보고 배우고 경험하지 않아도 한 번 해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한 번 해 봐!, 움직여 봐!'라고 응원의 한 마디만 있으면 된다. 암탉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닭도 알 낳을 때 아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