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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Mar 21. 2022

닭도 알 낳을 때 아픕니다

알 하나 낳기 위한 한 시간의 산통

청계 암탉이 첫 알을 낳았다. 지난해 10월 31일에 태어나 이제 4개월 3 주령 만이다. 닭이 초란을 낳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한 시간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오전 11시 50분쯤. 암탉 소리를 들었다. 우리 집 왕언니 토종 암탉 큐티의 소리는 아니었다. 큐티는 알을 낳았거나 울타리 밖으로 나오고 싶을 때, 사료 말고 특식을 원할 때 보다 명확하고 우렁차고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낸다. 이번엔 소리가 다르다. 어설프게 쥐어짜는 소리에 뭔가 다급함이 묻어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청계 암탉 화이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천하의 미색, 우리집 청계 암탉 화이트


깃털 색이 온통 하얘서 이름도 심플하게 화이트라 지었다. 화이트가 꾸르쿠 꼬르코 끼르키익 소리를 내며 닭장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그 뒤를 영문도 모른 채 또 다른 청계 암탉 블랙이 따르고, 그 뒤에는 수탉 별리가, 마지막으로 큐티까지 합세해 한 바퀴를 돌았다. 혹시나 오늘이 화이트의 첫 산란일이 될까 싶어 창고에서 새 짚단을 가져와 산란장 안에 깔아 주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청계들이 산란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큐티는 그 앞을 보초 서고 있다.


12시 20분. 오랜만에 닭 멍이나 할까 싶어,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해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당연히 의자가 향하는 방향은 집 앞 마운틴뷰가 아니라 뒷 쪽 닭장 뷰다. 닭 멍을 하러 나왔는데 닭이 안 보인다. 대신 처음 들어보는 닭의 산통 소리를 들었다.


'꾸우우욱 꾸우우욱.. ' 많은 사람들이 닭의 울음소리 하면 '꼬끼오~'만 알고 있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비둘기가 아프면 이런 소리를 낼까. '꾸우우욱...' 예민한 귀에 닭의 불편한 소리가 거슬린다. 벅벅벅. 분명 발길질로 지푸라기를 긁어내거나 반대로 모으는 소리다. 발톱이 지푸라기를 다 헤치고 기어이 나무 바닥을 긁는다. 자리를 만드는 걸까. 산통의 몸부림일까.


12시 53분. 닭의 신음소리가 멈췄다. 닭장 안을 긁는 소리도 멈췄다. 네 마리의 닭 중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방은 점심식사로 닭 사료를 먹으러 온 참새떼와 조금 더 멀리 박새의 노랫소리 그리고 올해도 찾아와 준 딱따구리의 나무  찧는 소리만 들렸다. 닭장 안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지만,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 조신하게 예의 바르게 닭들이 나와 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1시 2분. 덜걱. 산란장 안에서 무언가가 나무판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알을 낳았을까? 1시 6분 조심스럽게 청계 암탉 블랙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울타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점잖은 척하며 "무슨 일 있어?" 하고 블랙에게 안부를 물었다. 닭장 옆으로 가 산란장 문을 천천히 열었다. 역시나 화이트가 좁은 산란장 안에 쏙 들어가 앉아 있다.


나의 방문에 놀란 화이트가 자리를 벗어났다. 아주 조그만 푸른빛 감도는 청란 하나가 모습을 보인다. 역시 그 한 시간 동안의 혼란과 긁는 소리는 첫 알을 낳는 경험 없는 암탉의 산통이었다. "화이트~ 고마워~! 축하해~" 말은 닭에게 하면서 눈은 보초 서고 있던 수탉에게, 손은 청란에 가 닿았다. 주먹 안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알이 내 손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었다.


가운데 손가락 두마디 정도의 크기


제일 먼저 남편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기쁨의 촉진을 위해 사진도 첨부했다. 답장을 받기 전에 서둘러 주방 냉장고로 향했다. 산란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특식을 줘야 했다. 산란의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무엇을 주면 좋아할까. 영양가 있는 초록색 채소를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없다. 대신 좋아하는 걸 주기로 했다. 냉동실 문을 열어 얼려둔 식빵을 꺼냈다. 두 딸내미의 아침 토스트가 될 운명이었지만 기꺼이 화이트를 위해 전자레인지에 해동했다. 지금 그 만찬을 네 마리의 닭이 함께 즐기고 있다.




오늘 아침에만 달걀을 5개나 소비했다. 3개는 아침식사로 프라이를 해서 먹었고, 2개는 포장용기에 붙어 떼느라 깨져서 버렸다. 우리 닭들이 낳은 것은 아니고 항상 마트에서 사다 먹는 것이다. 돈 주고 사고 말고를 떠나서 오늘 아침 먹고 버린 달걀 5개의 소비가 너무 헤펐다는 생각이 든다. 알을 낳느라 고생했을 암탉들의 수고로움을 한 번 떠올려 보지도 않고, 흔한 기호식품처럼 대한 것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처음이어서 그래.

 매일 낳으면 익숙해져서 괜찮을 거야.'


익숙해지면 알 낳는 고통도 사라질까? 아무렇지 않게 '어. 느낌 오는데? 어서 산란장 가서 순풍 낳아야지. 느낌 아니까~'라고 할까? 우리가 모른 사이 닭들은 나름의 고통을 견디고 낳고 양보한다. '니들은 참 편하게도 산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고.'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저들은 매일 '어디 보자. 알을 낳았나~' 하고 기대감에 들어오는 주인이 부담스럽고, 산란의 고통을 거의 매일 느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닭을 그리고 달걀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나와 내 가족 이외의 생명체를 키우다 보니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나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닭들의 안전도 중요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저들도 먹고 싶겠지 한다. 내가 추우면 저들도 감기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해 걱정하고 신경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바깥으로 퍼지는 선한 에너지가 공생의 가치를 알게 해 준다. 그 에너지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깨달음도 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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