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낙엽이 여전히널브러진 흙바닥에 초록빛 새 풀이 돋아났다. 가을인가 싶은 낙엽더미와 겨울인 게지 싶은 얼은 땅바닥에 올봄 첫 풀을 마주했다. "이제 봄인가 봐." 하는 감탄 섞인 한 마디가 자연스레 흘러왔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에 지척에 있던 남편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싱싱한 풀을 보면 우리 큐티 좋아하겠네."
남편이 비웃거나 말거나 나의 손은 어느새 그 어린싹을 뜯고 있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길이의 싹이라 그걸 뜯으려니 내 엄지와 검지 손톱에 봄의 흙냄새도 묻어버렸다. 뭐 흙이야 씻으면 되지. 우리 집의 귀한 첫 암탉 큐티에게 맛 보여줄 생각에 신이 났다.
오랜만에 큐티에게 닭장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다른 닭들이 닭장 뒤에서 열심히 젖은 흙을 파내느라 정신 팔려 있을 때, 큐티만 살짝 빼 주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큐티가 항상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닭장으로 다가가면 어디에 있었든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정말 육중한 몸을 이끌고 뒤뚱뒤뚱 뛰어 오는데 그 모습이 치명적이다.
역시나 내가 준 풀을 날름 받아먹더니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어디서 이런 싱싱한 것을 뜯어왔냐며 더 달라고 보챘다. 이 녀석, 겨울 내내 너를 먹이려고 텃밭에서 키우던 배추를 세심하게 잘라 주기도 했고, 봄동도 얻어다 먹였는데 마치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본다는 것처럼 환호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첫째 딸이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듯 물었다. "엄마, 큐티 줄 풀 좀 뜯으러 갔다 와도 돼요?" 응. 그럼 그럼 되고 말고. 집콕만 좋아하는 네가 스스로 동네를 나돌아 다니다 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풀 찾기가 쉽지 않은데 얼마나 많이 따오려고 하는지 담아 올 통까지 야무지게 챙겨 딸내미는 집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 뒷마당이 얼마나 햇빛이 잘 안 드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어디 누구네 집 앞이 그렇게 양지바른 지, 딸내미는 가져간 통에 싱싱한 풀을 많이도 따 왔다. 내 엄지와 검지 손에 묻은 흙은 들이밀지도 못할 만큼, 아이의 손가락은 당장 깎아주고 싶을 만큼 흙먼지가 가득했다. 그래, 너의 수고로움이 큐티에겐 행복이겠지.
아이가 손에 풀 한 잎을 손에 들고 큐티에게 내밀었다. 눈앞에 있는 빨간색 통과 대비되어 더 뚜렷하게 보이는 초록색 풀들이 큐티의 눈앞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손에 정답게 들려진 풀 한 쪼가리에 성이 찰 리 없다. 큐티는 과감히 통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역시 먹을 것에 대한 적극성이 큐티의 매력이다.
닭을 키우지 않았다면 이깟 풀에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목련 꽃망울이나 노란 개나리, 아니면 벚꽃 정도는 풍성히 열리면 그제야 "봄이 왔구나~" 했다. 안 보려야 볼 수 없는 화려한 존재들이 자신을 뽐내야만 나는 봄을 느꼈다.
오늘은 볼 것 없는 흙바닥과 널브러진 낙엽들 사이로 언뜻 비친 초록색의 무언가를 눈여겨봤다. 썩어가는 낙엽들을 기꺼이 손으로 헤치고 용기 있게 땅을 뚫고 얼굴을 내민 이름 모를 풀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존재로 봄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암탉 큐티에게 그 봄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