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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Feb 03. 2023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 암탉

그래도 괜찮아.

큐티는 생후 만 2년이 안 된 젊은 암탉이다.


인공부화기를 구매했을 때 서비스로 받은 토종닭 알을 부화해 태어났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모습을 보는 기쁨을 주었고, 특히나 우리 가족을 잘 따라 반려닭의 위치에 올랐다.


식탐이 강해 채소며 사료를 들고 들어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온다는 말처럼 저 멀리서 부리나케 마중을 나왔다. 태어난 지 4개월령쯤 알을 낳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알 껍질이 단단해지는 안정기가 되어서부터 왕란을 낳았다. 옆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을 지켜보던 딸이 '엄청 왕란, 진짜 왕란'이라고 덧붙일 정도다.


주는 대로 잘 먹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산책시키는 맛도 있어서 언제나 우리 식구들의 애정 1순위였다.

 

어찌나 따라 다니던지..


그런데 큐티가 지난해 8월 말부터 알을 낳지 않았다.


정확히는 2022년 8월 20일 이후다. 큐티가 태어난 지 겨우 16개월 만이고, 알을 낳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는 딱 12개월 만이다.


보통 암탉은 부화하고 병아리 시기를 거쳐 만 4~6개월 정도에 초란을 낳는다고 한다. 그리고 15~18개월에 전성기를 거치며 점점 알을 적게 낳다가 만 3~4년이 되면 아주 가끔 낳거나 아예 알을 낳지 않는 폐란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큐티가 알을 '안' 낳기 시작한 22년 8월 말부터 현재까지, 약 5개월이 넘도록 단 한 알도 낳지 않았다.


닭이 알을 안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너무 더운 한여름이나 너무 추운 한겨울에는 알을 적게 낳는다.

2. 영양이 부족해도 잘 안 낳는다.

3. 포란을 하면 적게 낳거나 안 낳는다.

4. 병이 걸렸거나 다리를 다치는 등 아프면 안 낳는다.

5.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잘 안 낳는다(닭장 교체, 완전방사 등)

6. 나이가 들어 폐란을 한다.  


큐티의 알은 핑크빛이었다.


위의 '암탉이 알을 안 낳는 이유' 중 어느 것도 딱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닭을 정말 '사랑한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한 지인에게 사정을 말했다. 여러 번 우리 집에 와서 우리 닭들의 상황이나 관계 등을 잘 알고 있는 지인이었다.


그의 진단명은 이랬다.


"주인에 대한 신뢰가 깨졌나 보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단명이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사실 8월 20일 전까지 열흘을 가족 모두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닭들은 당연히 매일 물을 교체해 주고 사료도 주고 텃밭에 있는 열무도 썰어줘야 했기에, 5일은 친정엄마를 우리 집에서 지내시도록 했고 5일은 이웃집에 부탁했다.


닭은 키우는 기간 동안 처음으로 길게 집을 비운 것이라 더욱 신경 써서 부탁했고, 인계받은 분들은 모두 성심성의껏 닭을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열흘동안 닭들이 낳은 알도 수거해 잘 보관해서 건네주기도 했다.


분명히 달걀 보관통에는 큐티의 알도 몇 개 있었다. 매일 낳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낳았다는 증거가 명백히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열흘 여행에서 돌아온 날부터 큐티는 알을 낳지 않았다.


열흘동안 주인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유독 사람을 잘 따랐던 큐티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주인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래서 알을 안 낳는 걸까?


봄의 새싹도 언제나 일순위는 큐티였는데..


닭이 사람에게 신뢰를 할 수도 있고, 그 신뢰를 잃어 슬퍼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처음 접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방법은 '많이 쓰다듬어주고 예뻐해 주라.'는 것이었다. 알을 낳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주인과 반려닭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


날 좋은 가을도 지나 엄동설한 겨울도 지나 벌써 입춘이다. 큐티가 알을 안 낳은 지 6개월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큐티는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래. 알 낳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렇게 큰 왕란을 일 년 낳았으면 그것도 고생한 거다.


우리 가족에게 병아리를 거쳐 닭 키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애교쟁이 큐티에게 이제 '알 안 낳을 수 있는 자유'를 주기로 했다.


안 낳아도 돼. 건강하게 살자.



현관문 앞에서 햇볕을 쐬던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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