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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an 29. 2022

애 때문에 그만둔 거 아닌데요?

사회적 역할 하나를 버린다는 것

내 이름 석자가 가진 역할은 너무나도 많다. 일과 직업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회사를 그만뒀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 가진 역할 중 회사원이라는 이름을 하나 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그 이름 하나를 버린 것은 나의 정체성을 좌지우지하는 큰 것이었다. 소속이 정체성이 되는 신분사회에서는 말이다. 서른 중반이라는 활발한 경제활동 시기에 나의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그러나 왜 회사를 그만 두었는가는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를 그만둔 누구네 엄마일 뿐.


온 동네 소문이 나는 것은 금방이다.


 아이들 등원을 시켜주며 세탁소에 들렀더니

 "어떻게 이 시간에 와요~ 오늘 쉬는 날인가 보다." "아, 쭉 쉬어요. 회사 그만뒀거든요."

 "어쩐지.. 요즘 자주 보인다 했어~"

 "아, 네.."


어린이집 선생님도 물어보신다.

"휴가 내셨어요? 어제도, 오늘도 어머님이 오시니까 하영이가 좋아하네요~"

"아, 네.. 회사 그만뒀거든요.

"아~ 그럼 매일 등 하원 엄마가 해주시면 하영이가 너무 좋아하겠어요~"

회사를 그만둬서 종일반이 취소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이미 2학기 시작되었을 때 종일반으로 되어 있었기에 괜찮단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유치원, 어린이집 엄마들이 생소하다. 나 빼고는 다들 친한 것처럼 수다를 떤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네를 밀어주기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해주고 때론 괴물이 되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있는 엄마들과 다르게 열심히 놀아주니 아이의 친구들이 나에게 달려든다. 그 아이들과도 열심히 놀아주니 아이들의 엄마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리고는 모두 묻는다.


"휴직하셨어요?

"아니요, 아예 그만두었어요.

"아니 왜요, 아깝겠다.

래도 애들이 엄마 있으니까 너무 좋아하죠?"

"네..."


우와.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 아이들 하원 시간에만 딱 맞춰 자리를 잡고 계시던 요구르트 아줌마도 나에게 한마디 건네신다.

"오늘은 웬일로 엄마랑 같이 있네~ 맨날 할머니랑 있더니.. 오늘 쉬는가 보다~

"아, 회사 그만뒀어요."

"아~ 그래서 엄마가 하원 해 주는구나~ 애들이 좋아하겠네~"



음... 이제 다 말했나?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처음 한 두 명에게 말할 때는 꽤나 어색하고, 뭔가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던 그 표현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엄마가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좋은 일인지 몰랐다. 세상 모든 워킹맘 슬퍼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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