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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Apr 05. 2023

마당 옆구리에 난 쑥 뜯어 저녁 한 끼

봄 쑥 뜯으러 가세나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3월 문턱을 넘자마자 봄 쑥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쑥의 향긋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특히 여자에겐 보약이라는 고마운 나물이다.


정작 쑥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지, 알고도 시골 사람들에게 정을 베푸는 건지, 소위 잡풀들이 나는 곳에 어우러져 나 있다. 특별한 도구도 없이 뿌리 가까이 손으로 톡 뜯어내면 된다. 처음엔 마당 옆구리 흙밭에 난 쑥을 몇 번 뜯어 다른 한 손에 쥐었다.


뒷산과의 경계에 세워둔 석축 사이사이에도 쑥이 자라나 있다. 욕심내어 하나 더, 하나 더 톡 톡 뜯고 있으니 남편이 큰 그릇을 하나 갖다 줬다. 한 손에 쥐었던 쑥 양이 제법 되어 땅에 떨어질까 염려가 됐나 보다.


각종 수확과 채집을 좋아하는 열한 살 딸까지 합세해 쑥을 뜯기 시작하니, 제법 한 그릇을 채웠다. 내 노력 없이 자연이 준 것은 욕심내지 말자고 하며, 전투적인 딸의 손길을 막아 세웠다.



어느새 소복한 쑥 더미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 어릴 때도 시골에 살았던지라 그땐 하천 근처에만 가도 죄다 쑥 밭이었다. 누구네 땅인지 걱정할 필요도 없이 집에서 과도 하나와 검은 봉지 하나 들고 친구랑 쑥 뜯으러 다녔었다. 한 봉지 가득 담아 오면 엄마는 쑥국이랑 쑥버무리를 해주셨다. 특히 떡 먹기가 귀한 시절이라 쑥버무리를 특히 좋아했다. 한약재 같은 쑥 맛이 아니라 설탕 가득 넣은 단 맛으로 먹었던 것 같았다.


2년 전, 서울에서 살다 여기 경기도 어디 시골스러운 마을로 이사오자마자 봄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 시골 생활만 추억하고 어디 쑥 뜯을 데 없나, 냉이 캘 데 없나 찾았는데 마땅한 데가 없었다. 우리 집은 윤기 흐르는 밭도 없고, 소나무 산 밑이라 나물들도 안 자라고, 쑥이나 냉이가 지천에 깔린 곳은 남의 밭이었다. 아이들에게 시골살이의 묘미, 봄나물 채취하기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만 2년이 되어 세 번째 봄을 맞이하는 올해는 우리 집 앞마당 옆구리에도 석축 사이사이에도 쑥이 자라나 있었다. 어디서 씨가 날아와 퍼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집 안에 자라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손톱이 까매지는 것도 모른 채 열중해서 쑥을 뜯는 딸아이를 보니, 그래 이것이 시골의 산경험이지 싶어 괜스레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내 집 마당에서 난 것이라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마크 없이도 그저 안심이 된다. 깨끗이 씻어 촉촉하고 부드러운 솜털 쑥을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쑥버무리는 나에겐 고난도이기에 쑥국과 쑥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육수물에 된장 풀고 쑥 혼자이면 외로울까 식물성 단백질 두부 친구를 넣어 주고 국을 끓였다. 주인공을 위해 최대한 조연들을 출연시키지 않았더니 역시 쑥 맛이 돋보인다. 쑥이 다 했다.



물에 빠진 건 뭐든 안 먹는 열한 살, 아홉 살 두 딸을 위해서 쑥의 절반은 전을 했다. 이 또한 조연 없이 오로지 초특급 VIP 대우하여 쑥만을 위한 반죽을 했더니 아, 이것이 쑥이구나 할 정도의 맛이었다. 초봄에 나온 어린 쑥은 쓴 맛이 없어 아이들도 잘 먹는다.


쑥국에 쑥전, 그리고 김치 한 접시 올려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 집 앞마당 옆구리, 석축 사이사이에 제멋대로 난 쑥들이 입 안에서는 향긋한 봄을 선사하는 주인공이다.


내가 가꿔서 얻은 야채들도 고맙지만, 이렇게 내 노력 없이도 얻은 것들은 그 고마움이 몇 배다. 도시에 살았다면 당연히 마트에 진열된 쑥 한 팩을 꺼내며, 봄이니까 한 번 먹어줘야지 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엔 지천에 널린 게 쑥이어서 약간의 수고만 하면 마음껏 먹을 수 있었는데, 돈 주고 사야 하니 씁쓸하단 생각도 했을 것이다. 


마당 산책 나갔다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쑥을 뜯어 저녁 반찬으로 올리니, 남편이 새삼 칭찬해 주는 눈빛을 보낸다. 내 집 앞마당까지 성큼 들어온 봄나물에 이래서 전원생활 하는구나 싶더라. 땅과 바람과 비가 만들어낸 산물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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