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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Apr 06. 2023

땅두릅 덕분에 웃고, 참두릅 때문에 울고

그것은 내 것인가, 내 것이 아닌가

"엄마, 저기 땅두릅이 나왔어~!"

지난 주말, 딸이 집 뒤 둔턱에 땅두릅 새순이 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날씨가 아무리 초여름 같다지만 워낙 일교차가 커 설마 벌써 나왔을까 싶었다. 그런데 딸의 손에 이끌려 몇 걸음 올라가 보니 정말 싱싱한 봄 색깔을 자랑하는 땅두릅을 만났다.


새순이 벌써 나왔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열한 살 된 딸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먼저 발견했다는 것이 더 신기해 웃음이 났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전원생활 삼 년 차 되니 땅두릅도 알아보는구나 했다.


땅에서 자라는 땅두릅


이 땅두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사 온 지 만 일 년이 넘어서야 그러니까 두 번째 봄을 맞이해서야 우리에게 자신들을 허락한 귀한 몸이시다. 2년 차가 되는 봄, 우리는 땅에서 솟아난 흰 솜털옷의 굵은 새순의 정체를 두고 고심했다. 모양새로 봐서는 두릅일 것 같은데, 가시도 없고 엄지손가락 두 개 합친 것보다 굵었다. 마트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과연 먹어도 되는 것일까. 


남편과 나는 이것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3단계를 거쳤다. 먼저 사진을 찍어 네이버 검색렌즈를 활용했다. 각종 정보들이 개두릅, 참두릅, 땅두릅 등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두 번째로 이웃에게 물어봤다. 참두릅은 많이 봤는데 이렇게 솜털이 있는 건 못 봤다고 했다. 세 번째로 남쪽 끝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께 사진을 보내고 여쭤봤다. 안타깝게도 시부모님 또한 나무에서 나는 참두릅만 봤지 땅에서 나는 두릅은 본 적이 없다 하셨다. 하지만 끝에 남긴 아버님의 한 마디는 과연 명언이었다. 


"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땅에서 나는 것은 다 보약이다."


우린 그 한 마디에 감탄하며 용기를 가졌고, 맛보았다. 결국 땅두릅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사 온 지 만 일 년이 지나니 이 집이, 이 집을 둘러싼 자연이 드디어 우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과거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심었던 것일 테지만, 어쨌든 거저 얻은 귀한 보약을 감사하며 먹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에 사는 딸 친구네도 나눠주고, 친정 가족들이 왔을 때도 한아름 따서 대접하고, 어쩌면 이 두릅의 씨를 심었을지도 모를 집주인 댁에도 굳이 갖다 드렸다. 


한 번 맛본 귀하디 귀한 땅두릅의 맛은 새 봄을 더욱 기다리게 했다. 새순은 더 크면 질기고 쓴 맛이 강하기 때문에 여린 새순일 때 때맞춰 수확해야 한다. 땅두릅의 위치는 네 곳. 칼에 흙이 닿도록 두릅 줄기를 쓱 베어내고 향기를 맡으니 건강한 봄이 느껴졌다. 야무지게 수확하여 월요일 저녁 남편과 나의 몸보신 메뉴로 해치웠다.



여기까진 감사한 땅두릅 이야기. 이제부턴 분노의 참두릅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 아래 골목길과 집 마당의 경계로 둔 석축 사이에는 참두릅나무가 여럿 있다. 이 또한 만 일 년 차, 그러니까 지난해 봄에서야 발견했다. 이사 올 때 이전에 사셨던 분이 두릅나무가 있으니 봄에 따 먹으라 하셨지만, 이사 온 첫 해에는 전혀 발견조차 하지 못 했었다. 나무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러다 땅두릅의 발견과 함께 이 나무에서 자라는 참두릅도 발견하곤 지화자를 외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튼실하고 뾰족하게 가시 돋친 나무 꼭대기에서 참두릅 새순이 나왔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봄 비가 온다고 하니, 아직은 작은 듯한 이 새순들을 비 온 후 수확해야겠다 싶었다. 특히 지난주 신우신염으로 일주일 입원했다 퇴원하고, 아직도 회복이 더딘 친정엄마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어서, 오늘 아침! 싱싱한 참두릅을 따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나무에서 자라는 참두릅


아침 일찍 남편을 근처 역까지 태워줘야 해서, 다녀오자마자 바로 두릅 따겠다는 생각에 칼과 그릇을 현관문 앞에 챙겨놓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골목길 석축 사이에서 무언가 하고 계시는 것을 목격했다. 왠지 두릅을 따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이 딱 들었다. 바로 차 창문을 열고 "뭐 하세요?" 하고 물을까 하다가, 할머니이신지라 몇 개 따 가시는 거 뭐 어쩌겠냐 싶어 그냥 주차박스에 들어가 주차를 했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나와보니 세상에, 모든 참두릅이 다 사라졌다.


골목길 쪽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계단이든 반대편 오르막이든 어쨌든 석축 위 우리 집 마당에 올라와야만 손에 닿는 참두릅까지 모두 싹 다, 한 개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분명히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 있었는데. 내일 아침에 싱싱할 때 따서 엄마 갖다 줘야지 했던 튼실한 참두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연둣빛이 감도는 흰색 절단면이 '방금 따 간 흔적'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골목길 쪽으로 내려가보니 내가 차를 주차하려고 들어오는 바로 그때 따고 있었던 듯한 그 위치에 나무가 부러져 있었다. 꽤 당황하셨나 보다.



이 사건에 대해 분노에 찬 손놀림으로 남편에게 톡을 전하자,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왠지 80m 정도 앞에 사시는 할머니인 듯하다 하니, 지금 바로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차 타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야 하는데, 내 잘못이다.' 했더니, 이건 피해자에게 네가 처신을 잘못했다고 하는 꼴과 같다며 현실감을 일깨워줬다. 출근길에서 당장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침이든 자기가 찾아가 물어보겠다고 했다. 순하고 마음 좋은 우리 남편이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도시 사람이 시골에 와서 그 할머니가 그 집 할머니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외지인 노릇을 하고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저 도시 사람들이 이사 와서 그 안 따먹는 두릅 몇 개 따 먹었다고 절도범 취급을 하네. 어쩌네.'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것에 대해서 남편은 '시골 인심'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며,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이 나보다 더 화를 내니, 이상하게도 내 화가 줄었다. 나는 불의를 보고 참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실 우리가 애써서 심고 키운 것도 아니고, 우리도 이 집에 이사 와서 거저 얻어먹는 것인데 어떻게 뭐라 그러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도 남편은 계약상 이 집과 뒷산 일부와 그 안에 속한 것들이 다 우리의 것이라는 당연한 말을 또 설명했다. 다음에는 일찍 일찍 수확해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그것은 사후처방일 뿐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나눠먹었다 셈 치자고 했더니 우리 가족을 먹이려고 했던 건데 그걸 뺏기고 어떻게 그런 좋은 마음이 나오냐고 했다. 나무까지 부러뜨린 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정신없는 아침에 전화 통화를 끊고, 나는 더 자라라고 남겨두었던 땅두릅을 작은 것까지 칼로 베어 친정엄마에게로 향했다. 들려 있는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몇 개 되지 않아, 월요일에 저녁으로 해치웠던 것이 괜스레 후회됐다. 그래도 겨울을 이겨내고 땅에서 나온 것은 보약이라는 시아버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친정엄마에게 가 깨끗이 씻고 데쳐서 맛을 보였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내게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다. 그냥 두자 했다. 남편이 다음에 또 따가면 어떡하냐고 했다. 안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면 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괜찮겠냐고 물었다. 할머니더라 했다. 우리 엄마보다 더 연세가 있으신 것 같더라. 내가 생각한 그 집이 맞다면 오늘 지나가다 보니 한 할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계시더라. 오며 가며 본 적 있는데 걸음 걷는 걸 힘들어하시고 몸이 불편하신 것 같더라. 그 할머니와 부부이신지 아니면 옆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세 있으신 분들이니 그거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생각하자. 우리가 애써서 키운 것도 아니고 누군가 심어놓아 자연 속에서 저절로 큰 보약이니, 더 필요한 사람이 먹는 것도 좋지 않겠냐 했다.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땅두릅을 얻었을 땐 내 것이 아니지만 선물 받은 것 같아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참두릅을 잃었을 땐 내 것인데 빼앗긴 것 같아 화가 났었다. 욕심이 더해지는 순간 집착이 더해지고, 구분을 하는 순간 선이 그어진다. 이것이 내 것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있으면 감사하고 없어도 마음 놓기로 했다. 자연 속에서 덕 보고 살고 있으니 조금은 자연 따라 나누고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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