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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un 18. 2023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시 에세이스트 정재찬 교수의 시 강의

"너는 시를 잘 쓰니, 시인이 되면 좋겠구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어떤 장점이나 재능을 보고 무엇이 되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실어준 첫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에 대해 자주 시를 썼다. 그런 주제와 내용이라면 여러 백일장에서 상도 탈 수 있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감정을 노래한 것인지, 상을 탈 만한 주제와 전개를 노려서 시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를 쓰는 동안에는 마음에 따뜻한 음악이 흘렀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주제가 무엇이든 일단 어둠으로 시작했고 절망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던 것 같다. '터널'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다. 내가 쓴 시가 너무 암울하고 어둡다는 것을 느끼면서 점점 사각사각 연필로 쓰는 맛을 잃었다. 백일장에 참가해도 수상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두어 번 한 후, 시 쓰기를 그만두었다.


뇌의 전두엽이 폭삭 무너지고 다시 리모델링하는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어땠을까. 존재로서의 가치감에 대해 불안할 때 '인생의 한 고비일 뿐이야.'라며 더 인생을 앞서 살았던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시 쓰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까.


시 한 편에는 몇 백번은 씹고 삼켜서 소화시킨 감정들이 들어가 앉아있다. 툭 내뱉는 생각도 있지만 몇 백번은 곱씹고 되새김질해서, 더 이상 품을 수 없어 터져 나온 묵은 생각들도 있다. 우리 인생의 과제이자 고비들을 먼저 마주한 시인들의 감정과 생각이 제각각의 냄새로 남겨진 것이다. 이렇게 더없이 인간적인 인생 멘토의 메시지들을 그동안 얼마나 오래 잊고 있었던가.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통해 정재찬 교수는 시가 주는 위로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알려준다. 시인이 자신의 아픔으로부터 얻은 통찰을 기꺼이 꺼내준 덕분에, 그리고 저자가 우리의 일상적인 인생과 연결해 준 덕분에 우리는 덜 아프면서도 그 깨달음을 함께 얻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제각각 다른 모양과 기질로 태어나 서로 다른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자신만의 나이테를 그려가면서도 사람으로 살면서 비슷한 고비들을 지나가게 된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와 관련된 고비들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일거리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또 재능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고민하는 인생 주제는 누구한테만 방문한다. 그러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


그런 인생 주제들을 마주칠 때 가장 쉬운 건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종합적인 판단력을 가진 멘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책을 찾는 것도 좋다. 다만 너무 그 문제에 얽매여 딱 떨어지게 설명해 주고 명령하듯 조언하는 책을 추종하지는 말자. 


물론 그 상황에서 시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내 머릿속도 골치 아픈데 시적 은유와 비유를 해석해 가며 성찰할 기운이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가장 바쁘게 보낸 2~30대에는 시집 한 권 손에 들지 못했었나보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바로 그 거리감을 좁혀준다.



산다는 것에 대한 관조와 성찰, 가슴 터지는 열정과 마디마디의 상처들, 높이 날고 낮게 포복하면서 구한 지혜와 위로, 그 덕에 그들은 언제나 적재적소에 미리 자리해 있었습니다. (시작하며 중)


시인들이 적재적소에 미리 자리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인생의 성찰과 위로를 친절하게 해석하고 연결시켜 주었다. 이렇게 저렇게 해라 식이 아니라, 이런 사유도 있다더라는 식의 부드러움이 인생의 고비들을 콕 찔러 드러내는 날카로움을 감싸고 있다. 독자는 지금 내가 맞닥뜨려 골치 아픈 그 주제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읽고 사유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믿음, 그것은 헛될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p.133)에서 저자가 인생을 살면서 액셀을 거세게 밟으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전한다. 내가 한때 그 자유로움과 통찰의 깊이에 감탄했던 류시화 시인의 시와 함께.    


패랭이꽃

                      류시화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히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자주 결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결심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텐데, 한사코 자신을 부정하느라 나를 힘들게 하고 타인들마저 힘들게 하는 것이지요.


저자의 해석과 덧붙임은 시를 내 안으로 가져오게 한다. 시인이 쓴 시에 담겨 있는 감정과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 굴리고 있던 나에게 해석을 넘어서 나의 삶을 돌보게 하는 등불 역할을 한다. 시가 내 삶으로 쑥 들어오게 하는 느낌이다.


시는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게 한다. 속도를 늦추고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이끌림의 매력이 있지만 이내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 당장 인생을 사는데 뾰족하게 알려주는 지침서는 아니므로. 이런 우매한 사람을 위해 이 책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속도를 멈추고 다시 보라고.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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