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두두 Jan 12. 2022

목적 없는 독서로 시간 보내기

우연히 만나는 필연 같은 책

목적 있는 독서와 목적 없는 독서의 차이?

그냥 나는 이렇게 구분했다.
실질적으로 지금 필요한 지식, 기술, 스킬 등을 얻어내기 위하여 읽는 독서는 목적 있는 독서.
'그냥' 끌려서, 누가 추천해줘서, 옆에 있어서 등의 별 이유 없이 읽는 독서는 목적 없는 독서.

뭐 딱히 특별한 구분은 없는 것 같은데 뭘 굳이 있어 보이게 구분까지 했느냐...

그동안 최소 12년 동안 나는 목적 있는 독서를 해 왔다. 당장 업무에 필요한 것, 기획에 필요한 것, 콘텐츠 개발에 필요한 것, 서평에 남길 만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독서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어쩌면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어떤 단어를 검색해서 연관되는 책을 찾아내서 읽었다.

그래서 여유도 없었고, 사유도 없었다.

나는 이것을 2년 전, 12년 경력의 직장생활을 그만두면서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목적 없는 독서를 통해 편집적인 독서습관을 조금 변화시켜야겠다고 나름의 다짐까지 했었더랬다.


하지만 다시 또 돌이켜보면 나는 목적 없는 독서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있었다. 소설책 읽어서 내 인생에 무슨 이정표가 된다고. 자기 계발서 읽을 때면 그 순간만 의욕 뿜뿜하지 곧 사그라들어 버릴걸 하면서. 조금의 지식이나 트렌드 정보가 내 손에 남아있지 않으면 괜히 독서시간을 탓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어느샌가 도서관에서 목적 있는 단어를 검색하고 찾아 읽는 독서를 해 온 것이다.

목적 없는 독서는 책이 내 손에 들려지게 되는 순간마저도 우연적이다. 별 기대 없이 한 장을 넘기기에 완독도 기대하지 않는 시작이다. 그러다 점점 빠져들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 때 목적 없는 독서가 내게 남기는 여운은 작지 않다.


얼마 전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라이브러리 스테이 지지향에 다녀왔다. 개인과 출판사의 기증 도서로 채워진 지혜의 숲에서 나름 고심하여 몇 권을 골랐다. 천장까지 닿은 책꽂이를 우러러보며 도서 검색대가 없는 그곳에서 눈길이 가는 대로였다. 그런데 애써 골라온 책 3권은 모두 완독을 하지 못 했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왠지 뭔가 있어 보이게 문학작품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어 든 러시아 문학의 내용 전개가 그날의 나의 마음과 맞지 않았다.  


지지향 객실에도 '종이의 향기'라는 라이브러리 스테이 이름답게 책이 몇 권씩 꽂혀 있다. 체크아웃을 한 시간 앞두고 그냥 남은 시간이 아까워 객실 안에 구비된 책을 쓱 훑다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서점이었거나 도서관이었으면 절대 찾아보지 않았을 제목이다. 김선회 작가의 에세이 <심심과 열심>이다. 가벼이 읽다 보니 어느새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이 있다.


개나 소나 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평등하다는 것. 그것이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평생 개나 소로 불리더라도 부지런히 에세이를 쓰고, 더 많이 읽을 것이다. 개나 소나 만세다. 에세이 만세다.
김선회 <심심과 열심> 중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아니 조회수도 얼마 나오지 않는데 누군가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가 부담스러워서. 그러니 점점 글쓰기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김선회 에세이스트가 말하는 '개나 소나'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웃다가 정곡을 찔렸다. 내가 뭐라고 나는 '개나 소나'가 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글 쓰는 게 더 어려웠나 보다.


마치 우연적인 필연 같은 느낌이다.


목적 있는 독서는 내가 보는 시선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듯이 파헤친다. 파헤치고 건져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진다. 보지 않아도 왠지 책장에 꽂아놔야 안심이 되고, 보게 되면 책값 건지려는 듯이 뭐 하나 잡으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데 목적 없는 독서는 머리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나게 되어 부담이 없는 그런 사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를 내게 툭 던진다.

 

이 책이 왜 여기 있을까?

나는 왜 하필 이 책을 펼쳤을까?


아니, 뭐 꼭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된다.

노트와 펜, 포스트잇을 옆에 두지 않고서 그냥 소파에 널브러져 편한 자세로 읽고 싶은 대로 읽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허락된다. 그러다 졸리면 책 엎어놓고 좀 졸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밤도 새우고자 하면 까짓 거 밤도 새워 읽는다.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시간 낭비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이제 안 가져도 되기에 책 읽는 즐거움이 새로 새겨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