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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an 14. 2022

좋아하는 것 말고 자연스러운 것을 찾기

결국 나다운 것

20개의 창에서 20개의 어플리케이션이 돌아가는 삶에서 탈출하는 현명한 방법은 '창을 닫는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p.64 - 제임스 패디먼 James Fadiman, 미국 심리학자


'무엇을 좋아한다'는 선호도의 표현이다.

좋아하는 정도라는 것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 선호도를 따지다 보니 정작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뭐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더라. 단박에 답이 안 나올 때는 이어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나 봐.'라는 깨달음이 온다. 그다음에는 '내가 열심히 사느라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네.'라는 갑작스러운 자기 동정심이 생긴다. 그리고는 마치 보상이라도 해줘야 하는 듯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여러 장소를 찾아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너무나 많은 창을 열어놓았다. 그중에 어느 한 개, 나에게 꼭 맞는 길을 보여 줄 창문이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창을 닫지도 못하고 계속 펼쳐만 놓는다. 그리고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업으로 삼았을 때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정말 별개의 문제인데도,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뭐라도 하지 않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그래서 또 묻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

12년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남편이 꼬박꼬박 입금해주는 생활비를 여유롭게 쓰는 특권을 누리면서도, 나를 되찾고 싶어 계속 묻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


갑작스럽게 나의 첫째 아이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나 다른 사람이 내 아이에 대해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다.


얼마 전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기증 도서들의 집합소인 지혜의 숲에 다녀왔다. 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많은 칸으로 채워진 책꽂이들 앞에서 어떤 책을 볼까 기웃거렸다. 그리고 몇 권 꺼내와 책상에 앉아 읽어 내려갔다. 근처 북카페에 가서 또 우연히 만난 책들과 인사했고, 숙소인 지지향에 들어가서도 의미 없이 꽂힌 책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만났다. 목적 없이 만난 책들 가운데 그것을 즐기고 있는 아이에게 책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더라.


'자연스럽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네이버 국어사전>


아이에게 있어서 책은 때와 상황에 따라서 좋아하고 싫어지고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그저 당연히 제 옆에 존재하기에 이상함이 없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게 키운 나도 흡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편안하고 조용하고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들이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자 일거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일상에서 필요에 의한 수다스러움이, 사교적인 만남이, 평가를 두려워한 글쓰기가 억지로 애씀을 만들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너무 애쓰지 않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p.65 - 제임스 패디먼 James Fadiman, 미국 심리학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뭘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내가 정. 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라는 고민에 답을 찾으려 했던 애씀이 조금 안쓰럽다. 이렇게 그냥 이어져 나가는 일상에서 내가 어떤 상황과 분위기, 그것을 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책과 적막감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고, 호기심에 대한 알 수 없는 해답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것이 누군가는 어려울 수 있고, 어떤 것이든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것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반드시 남는 것이 있는 목적 있는 독서를 해야 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의 생각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댔고, 남에게 보여줄 만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애썼다. 그것이 나의 자연스러움을 어지럽혔다.


너무 애쓰지 않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자연스럽게 열중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단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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