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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Feb 07. 2022

나도 평일 오전에 필라테스 한다

자기 관리하는 여자처럼 보이기

주위 사람들이 운동을 권했다. 

에너지가 없다. 생기가 없다. 피곤해 보인다. 벌써부터 그렇게 체력이 바닥이면 어떡하냐. 포동포동해지는 몸매에 대한 완곡한 피드백일지도. 어쨌든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내 안에서 '비겁한 변명이십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운동해야 되긴 하는데 운동할 에너지가 없다고. 운동을 해야 에너지가 생긴다고 뻔한 말도 역시 울리는 듯하다. 


자기 관리를 위해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필라테스를 끊고 일주일에 2번 땀 흘리고 오는 동료 몇이 있었다. 다녀와서는 간단한 샐러드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그런 에너지와 의욕을 가진 것이 대단하게 보일 뿐이었다. 퇴근하고 운동을 하고 귀가하는 동료도 몇 있었다.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칼퇴근할 수 있는 회사에 감사하며 어서 빨리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두 토깽이가 있는 집으로 가 저녁을 차려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더 컸다.


회사를 그만두니 시간 없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퇴사 후 후유증처럼 집에만 있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과 함께 필라테스 수업도 시작했다. 




역시 여성들의 로망, 필라테스복을 제일 먼저 구입해 입어보니 운동이 필요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주위 사람들이 운동을 권한 이유도 확실해졌다. 프로페셔널하게 보일만한 외양을 꾸미라는 의미였던 것이 분명하다.


호기롭게 필라테스 첫 수업에 참여했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평일 오전에 운동복을 입은 채로 체육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아, 나도 평일 오전에 애들 보내고 운동하는 여자가 되었구나. 이런 것이 진정한 삶이지. 암.


그런데 수업이 한 20분 지난 것 같은데 5분밖에 안 지났다. 내 고개의 방향은 자꾸 벽시계 쪽으로 돌아갔다. 50분을 끝까지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겨우 마무리 인사까지 버텼다. 처음의 호기는 대체 어딜 간 건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조심스럽게 강사님께 다가가 질문했다.

"저 필라테스 정말 처음인데요.

초보자가 해도 되는 수업인가요? 중급자 코스인 것 아닌가요?"

"그만큼 많이 뭉쳐있고 굳어있어서 힘든 거예요. 

조금씩 따라 하다 보면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굳어있는 것도 풀리면서 좋아질 거예요. 파이팅 해 보세요."


강사님의 파이팅은 넘쳤으나 나는 만 근을 지고 오는 사람처럼 축 처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사람이 1개월을 일단 끊었으면 끝까지 다녀야지 라는 생각에 1개월은 잘 다녔다. 그리고 그다음 달은 등록하지 않았다. 




왕년에 100m를 15초대에 달리며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나는 애들 유치원 운동회에서 엄마 달라기를 나가면 1등을 다. 단거리 달리기의 장점은 그 순간 팍~ 에너지를 쓰면 그만이라는 것이고, 단점은 그다음 날 엄청 아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라테스는 단거리 달리기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면서도 다음날 엄청 엄청 아팠다. 필라테스복을 입고 유연하게 팔과 다리를 뻗고 구부리고 돌리던 그 여성분들. '평일 오전 필라테스 수업을 얼마나 오랫동안 참여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삐딱한 시선을 잠깐 가졌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어쨌든 부러웠다. 어쨌든 나는 같은 종족이 아닌 걸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필라테스 했는데 엄청 아프더라고 엄살을 피웠다. 그랬더니 '아~ 기구 필라테스 했어? 레슨으로?'라고 묻더라. 아, 1:20의 맨손 맨몸 필라테스는 필라테스도 아닌겨?  


그래. 너무 돈을 안 들여서 그런 거다.

이제 내 힘으로 돈을 안 번다고 저렴한 곳 찾아서 해서 그런가 보다. 맞춤형 1:1 레슨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껏 벌고 저축했던 돈으로 나를 돌보는 거라고 당당하게 투자했어야 했는데. 또 내 멋대로 생각의 결론이 났지만 행동의 결론은 그다음 달부터 어떤 운동도 등록하지 않았다는 거다. 평일 오전에 필라테스를 하는 경험을 해 봤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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