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있는 집
<규칙이 있는 집>
맥 바넷 글, 매트 마이어스 그림/ 주니어 RHK
표지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책이다.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뭐가 보이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이 속속들이 보고 알려줬다. 동규는 <규칙이 있는 집> 제목을 읽었고, ‘HOUSE, 집’ 윤이는 나뭇가지로 표현한 영어 단어를 읽으며 친절하게 번역도 해 줬다. 점점 말소리가 늘어나더니 뒤편에 있는 빨간 불빛이 가득 찬 통나무집도 찾고, 칫솔을 손에 남자아이가 뛰어오고 있다고도 얘기 줬다. 몸이 앞으로 더 쏠리더니 ‘곰인가?’, ‘저건 뭐지? 욕조인가?’, 질문인 듯한 대답도 했다. 어두컴컴한 밤, 으슥한 숲 속에 있는 통나무집,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이는 물건들. 음산한 분위기에 아이들 집중력은 확실히 끌어올렸다.
속표지 그림은 더 강렬한다. 빨간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문짝 전체다. 다시 한번 <규칙이 있는 집> 제목을 읽으면서 슬로 모션으로 책장 반을 넘겼다. 그러다 재빠르게 반을 휙 넘겼다. 두 아이가 깜짝 놀라는 그림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뭐야, 이거 공포야?”, “무서운 거예요?” 학년을 불문하고 이 스산한 분위기에 흠뻑 빠진다.
다음 장을 넘기면서부터는 표정도 편하게 풀고 다정한 목소리 읽어주었다. 늘 규칙을 지키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남동생 이안과 늘 규칙을 지키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누나 제니의 소개가 이어진다. 어느 날 이안과 제니 그리고 아빠가 숲 속 통나무집으로 여행을 간다. 집 안에는 ‘통나무집의 규칙’이 있는데, 저학년과 읽을 때는 이 규칙을 함께 읽고, 고학년과 읽을 때는 가장 앞에 앉은 친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다 읽은 후에는 약간의 연기를 더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이 규칙을 잘 기억하라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번 보자고 하면서 다음 장을 넘겼다. 다시 아이들은 긴장 모드로 전환했다.
남동생 이안은 통나무집의 규칙을 잘 지켰고, 누나는 전혀 지키지 않았다. 제니가 규칙을 하나씩 어길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이 점점 고조됐다. 처음엔 “아우, 규칙을 왜 안 지켜!”, “저러면 안 되는데...” 한 마디씩 하더니, 마지막 규칙마저 지키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아주 조용했다. 아이들이 말이 없어지니 나는 더 침묵을 유지했다. 몇몇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책장을 아주 천천히 넘길까 말까 했다. 한 번은 앞에 앉아있던 태진이가 그 답답한 속도를 참지 못하고 책장을 넘겨버리기도 했다.
규칙과 관련이 있는 물건들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한쪽은 “그래, 쟤네들이 움직일 줄 알았어.”라고 이미 예상했다는 쪽과 “헐, 대박. 괴물이었네.”라고 놀라는 쪽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누나를 잡아먹으려는 괴물들. 그리고 ‘나 살려라.’ 하고 혼자 도망친 이안. 하지만 이내 이안은 누나를 지키기 위해 돌아온다.
이런! 괴물들에게는 누구를 먹고,
누구를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한 규칙은
없나 봐요.
규칙이 없는 괴물들을 물리친 건 이안의 규칙이었다. 반전인 건 거짓말이 섞인 규칙. 누나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어긴 것이다. 단순히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 상황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규칙은 사회 구성원들이 원만한 생활을 하기 위해 다 같이 지키기로 한 약속이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선생님이 알려준 규칙을 그대로 배운다. 지키면 칭찬받고 안 지키면 혼난다. 아이가 커갈수록 지켜야 하는 규칙은 더 많아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규칙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모범이 되라는 부담감도 얹어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지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땐 이렇게 했는데 만약 이러한 상황에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시보다는 설명이, 설명보다는 질문이 효과적이다.
알면서도 부모로서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지시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니 알 것 같다. 지금 당장 행동을 고치는 것보다 사리 분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너희가 들어온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떠올려보면서 “왜” 그 규칙이 생겼을지, 안 지키면 무슨 문제가 생길지, 다른 상황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에서 나온 괴물들과 달리 어떤 규칙을 지킬지 안 지킬지, 그리고 어떤 규칙이 필요할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멋쟁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