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두두 Jan 15. 2022

닭이 알을 낳았다는 신호

너도 칭찬이 고프구나


닭장 옆 구석과 울타리 사이의 좁은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암탉. 날개 털이 울타리 망 사이사이로 삐져나왔다 다시 쓸려 들어간다. 방향을 틀으려니 안 그래도 좁은 길이 야속하다. 탐스러운 갈색 털 안 쪽 숨겨져 있던 뽀얀 솜털마저 드러나 버린다. "꾸꾸꾹 꾸꾸꾹" 질러내지 못 한 암탉 소리를 내고 있다. 좌우로 왔다 갔다 오줌 마린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서성인다.



예쁜 알을 하나 낳았다.

빨리 주인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한다. 저 먼지 잔뜩 낀 창문으로 주인 엄마가 날 보고 있다. 닭의 시력이 좋지 않다지만 나는 엄마가 보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몸을 움직여 최대한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줄여본다. 야속한 양계망에 가로막혀 버렸다. 제법 큰 구멍 사이로 엄마가 선명하게 보여 그래서 더 구슬프다. 빨리 알려야 하는데...

"알 낳았어요. 얼른 나와서 보세요. 얼른요~"

알이 따뜻할 때 두 손에 꼭 쥐고는 함박웃음 지었던 엄마 얼굴이 보고 싶다. "우리 큐티 이쁜 알 낳았네~ 아이고 예뻐라. 잘했어. 고마워~"라고 칭찬해 주시겠지? 내 날개를 쓰다듬어주고 톡톡 토닥거려 주시겠지? 어서 나오세요. 어서.


나는 오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닭장에서 뛰어나와 여기저기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큐티가 알을 낳은 것이 분명하다. 암탉은 어서 자신을 칭찬해 달라고 재촉한다. 무심하게도 나는 입김을 불며 더 식기 전에 커피를 홀짝여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주인 엄마 대신 주인 아빠가 나가보기로 한다. 입 속에는 커피를 머금으며 주인 아빠의 손에 알이 들려지기를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산란장 문이 열린다. 그런데 손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다시 문을 닫는다. 이상하다? 분명 알을 낳았다는 표현인 것 같았는데... 알을 낳은 게 아닌가? 주인 아빠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져 있지 않다. 아직 닭의 행동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가 싶다.


주인 아빠는 물통을 확인하고 사료통을 뒤적여주었다. 그 사이 닭장 지붕에서 울타리 밖으로 몸을 날린 청계 수탉 플리를 몰아 다시 울타리 안으로 넣어주는 일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산란장 문을 연다. 뽀얀 연분홍색의 알을 하나 손에 쥐었다. 자랑하듯 높이 들어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던 나에게 확인시켜 준다. 뭐지? 그 사이에 알을 낳은 건가?


주인 아빠가 알을 손에 쥐고 바쁘게 들어왔다. 산란장 안에서 큐티가 알을 품고 있더란다. 포란기일 리 없는 이 엄동설한에 왜 알을 안고 있었을까? 잠잘 때와 알 낳을 때가 아니면 웬만해선 산란장에 들어가는 일 없는 큐티가 왜 알을 끌어안고 있었을까?


이틀 전 알을 하나 낳았다. 동그스름한 것이 주인 엄마가 보면 또 엄청 기뻐하실 만한 컬러감이다. 그런데 주인 가족은 1박 2일 어디 여행 다녀오겠다며 사료와 물을 수북이 쌓아주고 떠났다. 영하 10도로 내려간 밤을 못 이기고 알이 점점 얼어갔다. 나는 버틸 수 있지만 알이 걱정돼 한숨을 못 잤다. 저 위에 올라가 품을까도 했지만 내 육중한 몸이 행여나 알을 깨뜨릴까 싶어 애써 비켜 앉아 있었다.


다음날 주인 엄마가 따뜻한 물과 등에가 잔뜩 들어간 영양사료 그리고 봄동 특식까지 한가득 가지고 오셨다. 닭장 문이 열리고 마주한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런데 산란장 안을 살피던 엄마가 얼어서 금이 가 버린 '어제 낳은 알'을 발견했다. 실망한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매번 알을 낳으면 주인 엄마가 가져가 버려서 나는 어떻게 알을 지켜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고요. 미안해요 엄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다음엔 더 잘 지켜볼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