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오더를 내린 지 2주 만에 조립식 닭장을 샀다. 1세대 부화한 병아리 두 마리는 토종닭이어서인지 하루하루 남다르게 덩치가 커졌다. 보통 가정에서 부화기에서 태어난 병아리들은 4주 정도 집 안에서 키우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준다. 그런데 3주 차가 채 되기도 전에 이 아이들은 육추기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는 점프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복지를 중요시하는 지인에게서 빌려 온 대형 플라스틱 욕조를 방으로 내어줬건만 이 두 달구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닭장이 시급했다.
하지만 나의 조급함과는 다르게 남편은 왠지 느긋했다. 유튜브와 블로그, 닭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던 그는 일주일 만에 '이건 간단한 일이 아닌데?'라는 결론을 가져왔다.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예상했던 것만큼 돈이 적게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을 꼬우기 시작했다. 부화시켜서 병아리 키워봤으니 다른 집에 보내서 다른 닭들과 즐겁게 지내게 하자고. 닭을 사랑해 마지않는 지인에게도 닭장 고민을 얘기했더니, 얼마나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강연을 듣고 결국 쉽진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도 역시 닭 키워보라고 했던 그 집에 보내라고 했다. 그 집에 물어봤더니 닭장을 직접 짓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닭장의 달인들을 검색해보니 대략 4가지 방법을 알게 됐다.
1. 직접 설계하고 목재상에 가서 방부목을 10만 원어치 사 와 절단기로 사이즈에 맞춰 자른 후 뚝딱뚝딱 만들더라.
2. 아이언맨 가면을 쓰고 아연 각관을 용접해서 뼈대를 만들고 각종 철물 피스로 고정하며 아연 스프레이를 왕창 뿌려 녹슬지 않게도 하더라.
3. 비닐하우스 하나 크게 지어 넓은 운동장을 선사해 주기도 하더라.
4. 폐자재를 트럭에 싣고 와 대충 전동톱으로 자르고 양계 망을 둘러쳐 만들기도 하더라.
조립식 닭장 48만 5천 원. 절대 가성비를 추구하는 비교 쇼핑의 달인인 남편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나름 도시 사람이었던 우리는 그냥 설계되어 있고 방부목을 사이즈에 맞게 다 잘라놨으며 배송되면 뚫린 구멍에 맞춰 못만 박으면 되는 조립식 닭장을 구매했다.
닭장을 본 서울 지인들은 닭장이 참 예쁘다고 칭찬했다. 동네 사람들은 참 비싸게도 지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시 사람이 시골 이사 와서 전원생활도 참 도시스럽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막 시작한 우리로선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고려한 닭장의 기준은
1. 닭장이 마당의 경관을 해치지 않아야 했고,
2. 쥐나 고양이 등 다른 야생동물이 침입하지 않도록 정교해야 했으며,
3. 나름 동물복지를 생각해 쾌적한 공간이 나올 정도의 크기에다가,
4. 무엇보다 남편과 내가 만들 수 있어야 했다.
5. 그것도 일주일 안으로!
다행히 남편과 나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나름 발달돼 있었다. 그래서 결국 돈 쓰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행히 만족스럽게도 우리 달구들은 그 닭장 안에서 안전하게 잘 자라고 있다. 얼마 전엔 석축 사이 틈에서 쥐 한 마리가 얼굴을 쑥 내밀더니 울타리로 쳐 놓은 양계 망을 쏜살같이 통과해서 닭장으로 돌진하길래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다행히 더 구멍이 작은 닭장의 망은 통과하지 못하고 비켜 갔다. 그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때론 현명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