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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Feb 07. 2022

이토록 닭이 사랑스러운 이유 5가지

닭 한 번 키워보세요

닭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주제를 정하니 쓰고 싶은 소재의 제목과 소제목이 마구 떠올랐다. 10분도 채 안 걸려 수첩에 생각나는 대로 써댄 것이 약 20개 꼭지다. 진짜 닭 애호가들이 내가 게으르게 닭 키우는 실태를 보면 어디 너 따위가 닭에 대해 글을 쓰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참 오랜만에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쓰게 되는 것이 닭 얘기다.


그래서 이토록 닭이 사랑스러운 이유를 생각해봤다.  




1. 적당한 거리가 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니 누구는 큰 개 한 마리 키우라고 권했다. 전원주택의 상징이 아니냐며. 어렸을 때는 강아지며 고양이며 토끼까지 일단 어딘가에 새끼를 얻어 와 몇 달 키우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다른 집으로 또 보내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자라고 보니 솔직히 애완동물이 귀찮다. 더군다나 나의 사람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또 다른 동물을 입히고 먹이고 재워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다. 애완동물의 애교가 그렇게 힐링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강아지가 나한테 앵기고 비벼대고 놀아달라고 보채는 것이 부담스럽다.


닭이 사랑스러운 이유의 첫 번째가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딱히 내게 놀아달라고 치근덕대지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 때때로 챙겨줄 필요 없이 아침에 물과 사료를 적당히 부어주면 알아서 먹을 만큼 먹고 남길 만큼 남긴다. 크게 아플 일도 별로 없고 병원 갈 일도 없다.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울타리 너머에 있는 닭들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닭들의 움직임을 해석하며 그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를 느끼고, 밥 주러 가면 꼭꼭꼬~하고 쫓아오며 반응하는 모습에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적당한 선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즐겁다.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정여울 작가가 말한 거리를 둘 수 있어야 가능한 부드럽고 관조적인 사랑을 하고 있나 보다.




2. 사료값이 많이 안 든다


물론 주인의 애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닭을 키우게 되면서 매우 친해지게 된 지인이 있다. 그분으로부터 닭이 알을 낳으려면 그만큼 영양분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정말 닭을 사랑하면 아낌없이 과일이며 채소며 닭에게 먹이기 위해서 온전한 식품을 사고, 돼지고기며 심지어 소고기까지 구워서 몇 점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사랑스럽긴 한데 사랑하지는 않는 수준인가 보다. 기본적으로 닭 사료는 얼마 들지 않는다. 6마리 키우는데 25kg 사료를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정도 먹는 것 같은데 농협에서 사면 17,000원이면 산다. 채소는 여름, 가을에 집 뒷 산에 돌아다니며 뜯어먹게 하거나 나의 작은 텃밭에서 나오는 상추, 배추 등을 줬다. 겨울에는 뜯어먹을 풀이 없어 걱정했는데 정말 닭을 사랑하는 그 지인이 닭을 위해 사람 먹는 봄동을 매주 대량으로 주문한 것을 염치없이 얻어 먹였다.


나의 애정 정도를 말하자면, 우리 식구들을 위해 한 수육이나 삼겹살 등이 남았을 때 아깝다며 끝까지 먹으라고 보채지 않고 그냥 아무 말 없이 닭들에게 양보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가끔은 이왕 볶음밥 만드는 거 큰 손인 것처럼 많이 만들고 남게 해서 자연스럽게 꼬꼬들에게 갖다 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내 손으로 키운 농약 1도 안 친 배추를 매일 한 통씩 썰어 닭들에게 기꺼이 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3. 무항생제 신선한 알을 얻는다


닭을 왜 키우겠어. 당연히 알 얻으려고 키우지. 4월이면 닭을 키운 지 약 1년이 된다. 4번의 부화를 시도했고 현재는 6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현재 알을 낳는 암탉은 딱 한 마리다. 8월 중순부터 낳기 시작했는데 첫 달은 아직 닭이 어리기도 하고 알 낳는 것에 미숙하여 여물지 않은 알을 자주 낳았다.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는 그래도 5일 중 3일 꼴로 예쁜 알을 낳았다. 12월 중순부터는 처음 경험하는 겨울 추위에 놀랐던지 한 달 정도 아예 알을 안 낳았다가 적응이 됐는지 1월 중순부터는 낳았다 안 낳았다 자기 맘대로다.


중요한 건 마트에서 달걀을 살 때는 전혀 생각도 못 한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알을 낳으려니 너도 얼마나 힘들겠니. 너의 몸 어디에서 이 알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오늘도 알 낳아줘서 정말 고맙다. 기특하다. 넌 참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직접 키운 닭이 낳은 알을 먹어 본 사람은 하나같이 말한다. "노른자 색깔이 오렌지빛 나지 않아요?" 나름 쾌적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크고 영양분이 있는 밥을 먹은 닭들이 오렌지빛 노른자가 든 알을 낳는다더라. 물론 우리 집 암탉의 노른자도 오렌지빛일 때가 많다. 그래서 더 자부심이 생긴다. 건강한 우리 닭이 낳은 건강한 알. 우리 집 둘째는 큐티 알이라고 하면 너무 좋아한다.

 



4. 가축은 아이들이 부담 없이 친해질 수 있다


우리 집 두 딸들은 강아지나 고양이 등 동물을 무서워한다. 정말 작고 귀여운 요크셔테리어나 몰티즈 강이지도 무서워하고, 집 안에서 키우는 애교 많은 아기 고양이에도 기겁을 한다.


친구네 집에 들렀을 때 봤던 닭도 무서워하긴 했으나 어쨌든 그들은 닭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니 조금은 덜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진으로나 봤던 노란 병아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화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병아리가 알에 숨구멍을 내고 파각을 시작한 시점부터 완전히 태어나고 두 발로 서고 날개를 파닥거리고 점프하고 그렇게 닭이 되어가는 매일을 함께 했다.


그 생활에서 슬며시 만져보기도 하고 풀도 뜯어다 주고 내가 너의 언니 혹은 누나라며 챙겨주기도 한다.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집콕러들이지만 꼬꼬들한테 먹이 주고 오자 하고 꼬시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 번째 수확이다.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닭을 흉내 내고 자기가 부르면 꼬꼬가 대답한다고 자꾸 암탉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 자체가 재미있는 일상이 되는 이 세 번째 수확이다.




5. 닭 멍은 힐링이다


집 거실 창 앞으로 산도 보이고 밭도 보여서 나름 뷰가 좋은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당에 나가면 훤히 펼쳐진 전망을 바라보지 않는다. 휴대용 캠핑의자 하나를 갖고 와 떡하니 자리를 잡는 곳은 닭장을 마주 보는 맞은편이다.


뒷산의 일부를 닭의 뒷마당으로 허용해 울타리를 쳐 줬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흙 목욕을 하기도 하고 나름의 운동을 하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서열싸움을 한다고 머리털을 삐쭉 세우기도 하고 옆 눈으로 레이저 쏘며 한 바퀴 돌기도 한다. 물 한 번 호로록 먹고 목으로 넘기기 위해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도 마냥 귀엽다. 맨땅을 휙휙 파내어 흙을 먹는 건지 벌레를 먹는 건지. 그러다 배부르면 횃대에 올라가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닭은 그의 자리에서. 적당히 분리된 공간에서 바라보는 닭들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멍 때리기 딱 좋은 대상이다. 원래 꼼짝 말고 앉아 생각을 비우라는 명상이 제일 힘들다. 오히려 그냥 자박자박 움직이는 대상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 자연스러운 명상이 되기도 한다. 닭 멍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닭 멍 진짜 좋은데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의식주를 제공하며 적당히 얻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내 가족 외에 다른 존재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던 내가 그래도 다른 존재를 보듬을 여유를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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