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두두 Mar 16. 2022

얻어걸리는 것이 묘미인 이 부부의 여행법

그냥 떠나도 괜찮아

“얻어걸렸다.”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종종 얻어걸렸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밥집이 기가 막히게 맛있거나, 무작정 떠난 번개 여행지가 탁월한 선택이었을 때 우리끼리 했던 말이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여행 계획을 잡아본 적이 없다. 내년 황금연휴에 맞춘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는 대담함은 딴 사람 얘기다. 국내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 주말을 계획하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고, 보통 오늘 얘기해서 내일 떠난다. 1년 후 비행기 티켓을 끊을 용기는 없지만, 내일 당장 떠날 모험심은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도 인적이 드문 멋진 곳이나 흔치 않은 카페가 얻어걸리면,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은 부부인지를 실감한다.     




2월 말 남편과 둘이 다녀온 강원도 영월 여행도 그랬다. 아이를 낳고 9년 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정성 들여 계획했다면 2박 3일도 가능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미리 계획하지 않은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날 밤 와인 한잔 기울이다 여행지를 선택했고, 다음날 아침 8시에 일어나 영월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영월에서의 얻어 걸림은 요선암에서 시작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소요시간이 가장 짧은 곳이라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 요선암 바위 곳곳에는 작은 웅덩이처럼 파인 돌개구멍이 있다. 그 안에 고인 물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어붙어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옛날 선녀님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을 뿌연 온천탕처럼 보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매끄럽게 깎인 바위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구경할 것이 이 곳 뿐인가 싶어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360도 회전 동영상까지 촬영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요선암 돌개구멍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다 ‘요선정’이라는 작은 이정표에 시선이 갔다. 자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호기심이 일어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요선정은 절벽 끝에 세워진 정자였다. 저 아래 S자로 굽이치는 강 줄기가 한눈에 보였다. 탁 트인 절경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우리는 왜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이렇게 좋은 곳이 먼저 나오지 않는지, 이정표를 왜 크게 해 놓지 않았는지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그곳을 우연히 발견한 우리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얻어걸렸다고 느끼는 순간 행복을 느낀다.     


요선정


관광명소를 몇 군데 훑고서 약간의 한기가 느껴질 때 찾아간 전통찻집도 그랬다. 우리 부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꽃피는 산골’이라는 꽤 시골스러운 이름의 카페에 끌렸다. 왠지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듯 한 그 엉성함이 좋았던 것 같다. 손님들이 꽤 많았는데 운 좋게도 딱 4개만 있는 프라이빗한 원두막 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뜨끈뜨끈한 온돌이 깔려 있었다. 포털사이트 리뷰에도 없던 히든카드다. 남편은 말하기 왠지 민망한 야관문차, 나는 십전대보탕을 선택했다.



뜨끈한 아랫목에 두 다리를 뻗고 따끈한 전통차를 마시며, 연애 시절 그때로 돌아간 듯 남편 어깨에 기대어 두런두런 얘기 나누다가 짧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여기 진짜 제대로 얻어 걸렸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만족한 미소를 미소를 나누었다.




충동적인 여행은, 때로는 동선이 꼬이고 식당을 찾지 못해 쫄쫄 굶거나 급하게 예약한 숙소가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모험 중에 만나는 맛집이나 멋집의 얻어걸림은 또 그런대로 괜찮다고 얘기한다. 머리 아프게 투닥거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서로를 옹호하며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탓하지만 않으면 된다. 얻어걸리는 우연이 마치 필연이고 행운인 것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할머니는 원래 내 엄마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