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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리고 낙화

멀어져야 피울 수 있는 것

by 고요

사계절 중 가장 매혹적인 계절을 뽑으라고 하면 단연 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노톤으로 가득 차 있던 차가운 계절을 봄은 형형색색 다양한 온도로 채워간다. 다채로운 색상으로 채워지는 풍경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몽글해지면서 계속 바라보게 된다. 마치 흑백텔레비전만 있던 시절에 컬러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느낀 도파민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계속 티브이 앞으로 몰려들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을 흔들어 놓고, 우리는 그 색감에 매료된 체 화사하게 펼쳐진 채널을 돌린다.


아침드라마처럼 변덕스러운 일교차,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봄나물, 티브이동화 같은 개나리 등 다양한 채널을 방송한다. 그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채널은 아련하게 흩날리는 멜로 벚꽃이 아닐까. 사람들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보며, 찾아오지 않는 현실을 꿈꾸며 본인들도 피어나고 싶다는 듯 벚꽃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떨어지는 꽃잎은 나풀거리며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꽃망울을 터트리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 단막극은 덧없이 떨어져 사라지는 벚꽃잎처럼 부질없이 막을 내리고, 꽃비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헤매던 우리는 꽃이 지고 난 앙상한 가지처럼 공허한 브라운관만을 바라본다. 잡지 못한 꽃잎대신 브라운관에 정전기가 대신 피어 우리의 미련처럼 지지직거릴 뿐이다. 어찌 보면 도파민에 취해 바보상자만 바라봤던 모두에게 당연한 결과이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티브이의 전원을 뽑아버리고, 남은 봄의 여운을 느껴보려 밖을 나선다.


먼발치에서 벚꽃이 피어 있던 거리를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것을 홀리겠다는 자신감으로 분홍빛을 자랑하던 모습은 지고 없지만, 벚나무에 싱그러운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지금 마주하는 새순이 자라 잎이 되어 햇빛을 잔뜩 머금고, 가을에 낙엽이 되어 겨울을 버틸 양분이 되겠지 그리고 진짜 우리가 바라던 꽃을 피울 것이다. 현혹되어 어떻게 하여서든 붙잡으려 했던 것에서 멀어지니 이제야 중요한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잡으려 애쓸수록 멀어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 부질없는 일에 쏟을 열정을 자라나는 새싹에 쏟아 보려 한다. 앞으로 다가올 진정한 우리의 봄의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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